2017년 4월 17일, 457 취업비자의 폐지 발표와 함께 도입된 중장기(Medium-Long term)와 단기(Short term) 직종 명단은 많은 이들에게 영주권으로 가는 길이 ‘원천봉쇄’ 당했다는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전문직과 기능직 등 중장기 직종이 아닌, 식당 매니저, 미용사, 요리사, 마케팅, 일반 관리 등 단기직종 종사자들에게는 아예 고용주지명이민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57 비자를 대체한 482 취업비자로 아무리 오랜 시간 호주에서 근무해도 단기직종은 임시비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천형’(天刑)과 같았다.
작년 중반 호주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초래된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직종 명단을 하나로 통합하고 고용주 스폰서와 경력 그리고 영어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영주권으로 전환하도록 이민법을 바꾸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로 인해 457 비자 폐지 이후 위축 일로를 걷던 호주 이민의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이 있다’는 말처럼 이민 확대라는 큰 방향은 설정됐으나 정작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법규 개정은 지지부진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오미크론 확산, 대홍수,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상승, 총선 등으로 여유가 없기는 했다.
그러던 참에 최근 발표된 코로나 기간(2020.2.1~2021.12.14)에 1년 이상 호주에 체류한 이들에게는 올 7월부터 단기직종 482 비자로도 영주권 신청을 허용한 조치는 오랜 가뭄에 시원한 한 바가지 물이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영주권 길이 막혔던 단기직종 482 비자로도 3년 근무, 나이(45세 미만), 영어(IELTS 6.0) 등의 조건만 충족하면 TRT(Temporary Resident Transition) 고용주지명영주권(ENS) 신청이 가능하게 됐다. 코로나 확산과 장기 봉쇄의 어려움을 호주 내에서 함께 극복한 외국인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취업 이민 문호를 확대한 것이다.
물론 획기적인 정책 변화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감질 나는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6~7년간 호주 정부는 이민 문호를 확대할 때는 천천히 점진적으로 하는 한편, 반대로 축소할 때는 신속하고 급격하게 시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거기다 호주 주류 사회가 지지 정당을 가리지 않고 신규 이민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권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칫 경제회복을 한답시고 대규모 이민 유입을 티가 나게 시도하다가는 표심 이반을 불러올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소사업자들이 인력부족으로 아우성을 쳐도 5월 총선을 앞두고 큰 변화가 있기 어렵다.
그럼에도 제한적으로 ‘단기직종’ 종사자들에게 고용주지명이민 가능성을 열어준 이번 개정안은 마중물로서의 의미가 있다. 지금은 소수에 대한 예외 적용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혜택의 대상이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존에 호주에 체류하고 있는 임시 비자 소지자들을 모두 영구 노동력으로 흡수해도 현재의 일손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든 경제 정상화를 위해 기술 인력이 절대적인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호주 정부는 이민 반대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조금씩 문호를 여는 방식을 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이민법 개정을 둘러싸고 호주 정치권이나 이민부 주변에서 논의되는 모든 이슈에 대해서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칫 아무 생각 없이 방심하고 있다가는 정작 영주권의 기회가 주어지는 새로운 변화를 까맣게 모르고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격변의 시대가 도래하는 가운데 호주 이민과 이민법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