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반란과 지혜
솔로몬 제도는 ‘솔로몬’이라는 이름 말고는 특별한 구석을 찾기 힘든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이다. 전체 인구가 70만 명 안팎으로 남서쪽으로 약 2천km 떨어진 이웃 ‘대국’ 호주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있어 왔다. 이러한 솔로몬 제도가, 현지 중국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질서유지 등을 위해 중국군을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안보협정을 중국과 체결하면서 순식간에 국제정치계에서 태풍의 눈이 됐다. 당사국들은 극구 부인하지만 협정에 포함된 몇몇 포괄적 조항은 중국이 솔로몬 제도 내에 해군기지까지 설치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중국 해군 기지’가 현실화한다면 호주로서는 악몽과 같은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적성국가나 다름없는 중국이 바로 머리 위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격이나 마찬가지이다. 21일 총선을 앞두고 야당인 노동당은 이 안보협정을 막지 못한 정부의 외교적 무능력을 비판하고 나섰다. 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최고위직인 외교부 장관이나 총리가 앞장서서 이를 막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호주는 땅덩어리는 크지만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나라이다. 하지만 솔로몬 제도, 피지, 파푸아뉴기니 등 남태평양에 산재한 섬나라들에게는 강대국 못지않는 위상을 갖고 있다. 호주 정부도 '태평양 가족'(The Pacific Family)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뉴질랜드를 포함해 이들 섬나라들의 맹주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태평양 가족’은 가장이나 장자는 당연히 호주의 몫이고 다른 국가들은 그 주도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를 담고 있다. 솔로몬 제도가 끝내 중국과 안보협정을 체결한 것은 호주가 주도하는 ‘태평양 가족’ 체제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다. 중국을 뒷배로 작은 섬나라가 호주의 헤게모니를 전면 부정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마나세 소가베레 솔로몬 제도 총리는 이번 안보협정을 반대하는 호주와 미국을 빗대어 “마치 우리를 45구경 권총을 갖고 노는 유치원 학생처럼 모욕적으로 대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호주의 지원에 의존해 눈치를 보는 위성국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만약 태평양 지역의 다른 섬나라들도 솔로몬 제도를 따라 친중 노선을 걷는다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자체에 심각한 균열이 초래될 위험성이 있다. 중국은 이들 섬나라를 징검다리 삼아 마침내 남중국해를 벗어나 태평양 지역으로 팽창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호주와 미국 입장에서는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하찮은 돌 하나가 바둑판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미중 패권전쟁 와중에 호주는 기존의 ‘라이프스타일 강대국’ (Lifestyle Superpower)이라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으로 정치, 경제, 군사, 안보는 물론 코로나19 발원지 조사 등을 두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중국이 남태평양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할수록 호주는 ‘라이프스타일’을 버리고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이미 향후 10년에 걸쳐 2천700억 호주달러(약 243조원) 규모의 국방예산을 책정했고, 영국, 미국과 새롭게 ‘오커스’(AUKUS) 동맹을 맺고 전격적으로 핵추진 잠수함도 도입하기로 했다. 현 정부의 대표적인 반중 인사인 피터 더튼 국방장관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전쟁 불가피론을 전파하고 있다.
호주가 아무리 군사력을 증강해도 미국과 중국의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솔로몬 제도가 중국을 믿고 독자노선을 추구한다면, 호주는 미국과 연합해 반중 노선을 걷고 있을 뿐이다. 이 두 나라는 큰 틀에서 보면 미중 패권 다툼에 각자 참전한 변방 세력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이 외부적으로 강경한 군사적 대립을 추구하는 동안 국민들은 팍팍한 삶을 강요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안보가 명분이 되면 정부가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고 국민의 자유를 침해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석탄, 축산, 수산업 분야에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나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 정말 전쟁이 나면 더 나은 삶을 위해 호주를 선택한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과 총을 들고 나서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어느 당이 집권을 하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친어머니를 가려내는 동시에 아기의 생명도 보호한 솔로몬 왕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