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실패다
‘백년에 한번 나올 당 대표’라는 이준석 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한국 집권 여당이 지리멸렬 혼조를 거듭하고 있다. 윤리위가 성비위 논란으로 대표의 당원권을 정지하더니, 대통령은 ‘내부총질이나 하는 대표’라며 확인사살 ‘총질’을 했다. 이 총질이 공개되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여당은 돌연 비상 상태를 선포하고 비대위를 만들었고 당원권이 정지된 대표는 자동 해임됐다. 이준석은 비대위 전환이 불법이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한편,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대통령을 직격하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각종 언론을 종횡무진하며 대통령과 ‘윤핵관’을 상대로 전방위 파상공격을 펼치고 있다. 집권 초기에 여당을 강타한 유례가 없는 대내홍이 아닐 수 없다.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으나 이준석이 다시 국힘당의 대표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설사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그가 대표직에 복귀해도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여지는 사라졌다. 이미 갈가리 찢어진 당심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도 완승이나 완패가 어려운 싸움이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다음 총선을 통해 공멸을 맞이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한 사상 초유의 30대 당 대표가 이제는 자기 당을 온통 전쟁터로 만드는 인간 흉기가 된 격이다.
이준석 대표를 보면 한때 야구해설가로 이름을 떨쳤던 허구연 감독이 생각난다. 그는 해설가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34세의 젊은 나이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후신인 청보 핀토스의 감독으로 깜짝 발탁된다. 해박한 야구 지식과 전문성으로 프로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개막 7연패를 포함 극도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1년만에 감독 지휘봉을 놓았다. 해설과 평론으로는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을 보였던 허감독이 실전에서는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론과 실제뿐 아니라 관전과 실전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아무리 유능한 관전자도 실전에서 발생하는 우연과 변수에 대한 대처 능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준석 역시 허구연처럼 오랫동안 정당 생활을 했으나 정치인보다는 논객이나 평론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고 비대위원 등 당 지도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른 생각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통합해서 이끌어가는 지도자라기보다는 당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단기필마’ 인사에 가깝다. 그는 보수 진영에서는 드문 탄탄한 논리, 통찰, 흥미를 버무린 토론 능력을 기반으로 정치적으로 급부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어떤 주장과 논리를 펴든지 이치에 맞게 설명하고 이를 통해 반대자들에게도 최소한 혐오감을 주지는 않는다. 내용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으나 표현 방식과 스타일이 현대의 상식과 감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난 국민들, 특히 청년층은 이준석의 부상에 아낌없는 환호와 지지를 보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오직 승리에 목말랐던 국힘당은 무조건 변화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압도적인 지지로 이준석을 당 대표로 선택했다. 여의도 문법을 무너뜨리고 신세대 감각을 반영하는 그의 전략과 아이디어는 속속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국힘당을 그나마 지지할 수 있는 정당으로 변모시켰다.
그럼에도 그가 한 정당의 대표로서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대선 기간 동안 2번의 ‘가출성’ 돌출행동이나 논쟁력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통합력 등은 거대 정당을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당 대표가 아니라 최고위원 정도였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당 대표가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끄는데 반대로 당심은 상처를 받고 점점 멀어진다면 그런 체제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준석은 허구연이 감독직을 떠나 해설가로 복귀한 것처럼 다시 방송과 언론에 등장해 상대하기 곤란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개고기 논란’은 말할 것도 없고, ‘민생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의 발언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발언을 ‘정당 민주화에 매진하다보니 불경하게도 듣지 못했다’고 비꼬는 식이니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이준석은 사안과 형편에 따라 탄력적으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피해 호소인’이기도 하다가, 상대의 헛발질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냉소적인 평론가가 되기도 한다. 아군이라면 이보다 더한 칼이 없겠지만 적이라면 이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가 없다. 물론 가장 최악은 현 집권 여당처럼 집안싸움에서 이준석이라는 칼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극심한 내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준석을 두고 ‘여의도에 먼저 온 미래’라고 했다. 다른 이는 ‘흑화된 젊은 정치인’이라고 불렀다. 어떤 경우든 그가 철저하게 실패한 정당의 대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단지 그 실패의 책임을 두고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