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타(叱咤) 대통령

 

150명이 넘는 젊은 목숨들이 눌림 죽음을 당한 참사로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인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 후진국에서도 보기 힘든 사건이 효율 일등국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니 믿기 어렵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문제는 실제로 일어났다. 참사를 둘러싼 여러 정황들이 이치에 맞지 않아 갈수록 ‘미스터리’만 쌓인다. 기어코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려는 군상들의 몸부림과 온갖 사특한 혀놀림이 뒤엉켜 복잡한 미로를 만들었다. 난마처럼 꼬인 이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누군가에 대한 갈증이 타오르던 참이었다. 드디어 깜깜한 어둠을 뚫고 폭죽 터지듯 권력 서열 1위 대통령이 나와 논리 정연하고 위엄 가득한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해 대통령이 35분간 경찰의 안이와 무능을 질타(叱咤)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에서 대통령은 경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자주 격정과 분노를 담아 말을 이어갔다. 이미 현장에 있던 100명이 넘는 경찰관들이 “왜 4시간 동안 쳐다만 봤나”는 추궁은 정곡을 찌른 ‘칼말’이다. 석고대죄를 해도 부족한 경찰청장은 무차별 쏟아지는 융단폭격을 고스란히 맞을 밖에 없었다.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경찰의 한심한 행태에 혀를 차면서도 대통령의 질타를 오랜 가뭄 끝에 내린 시원한 소나기처럼 느꼈을 것이다.

 

대통령이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질타하는 장면이 공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대변인이나 비사관을 통해 어떤 사안에 대해 대노했다거나 또는 누군가를 질책했다는 전언을 듣는 게 고작이다. 질타 영상을 공개한 것은 대통령실과 정부가 이번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럼에도 꼭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의 분노와 경찰의 무능을 드러냈어야 했는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참사의 예방과 대처에 실패한 경찰을 대통령이 닦달하는 것과 이런 장면을 여과없이 공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앞에 것은 대통령과 경찰이 국민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내부에서 잘잘못을 가리는 성격을 갖고 있다. 뒤에 것은 대통령이 정부의 최고책임자가 아니라 국회의원처럼 국민을 대신해서 경찰의 잘못을 지적하는 모양새이다.

 

한심한 경찰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치는 대통령을 보며 국민의 답답함이 조금은 풀렸을 수는 있다. 그러는 사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리에서 행정관청인 경찰에게 책임을 묻는 자리로 슬그머니 이동한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 아닌가? 자신보다 하위직이라도 타인의 잘못을 공개 비판하는 것은 아무리 양보해서 좋게 보려고 해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이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거대한 실패 앞에서 힘없는 부하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려는 영리한 상사의 얼굴이 겹쳐 씁쓸하다.

 

경찰을 공개 비판한 대통령은 체계를 무시한 ‘월권’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위계질서는 ‘아랫것’뿐 아니라 ‘웃전’도 서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 파출소장, 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이라는 직위 체계를 존중해야 한다면 위에서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웃전’이라고 이런 질서를 무시하고 몇 계단 불쑥 내려와 만기친람(萬機親覽)하겠다고 나서면 건강한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손수 회초리를 치는 모습까지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싶다는 것이다.

 

절대 권력을 갖고 있어도 한 사람이 만사(萬事)를 효능감 있게 처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혼자서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 성공한 지도자 여부는 자신을 대리할 여러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쓰는 능력에 달려 있다. 아랫사람이 잘하면 그를 뽑은 윗사람의 공이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허물이 된다. 이번 참사처럼 일선 경찰이 잘못하면 관리뿐 아니라 인사 결정을 내린 상급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렇게 대통령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인사권을 갖고 있으면서 아랫사람의 잘못에 대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떼는 이들은 공직을 맡을 자격이 1도 없다. 사람을 잘못 쓴 죄만큼 큰 죄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수령의 현장지도라는 것이 있다. 무한 권력을 가진 수령이 현장에 몸소 내려가 인민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은혜를 베푼다.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봉건군주의 미담처럼 진한 젖비린내가 난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나서야만 인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수많은 공무원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수령도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털끝만큼도 없는 인물로 전락한다. 그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인민이 마주한 태산 같은 문제에 비하면 먼지 한점도 되지 않는다. 진정한 수령의 능력은 자신의 권한을 위임받아 나라 곳곳에서 인민을 위해 헌신 봉사할 인재를 발탁, 양성, 배치하는 인사(人事)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만사를 좌우할 인사를 ‘망사’(忘事)로 만든 무능력한 지도자일수록 카메라 앞에 홀로 나와 내용 없는 말잔치로 찬사를 독점하는 영웅 놀이를 즐긴다.

 

최상급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최하급 북한의 유치 찬란한 지도방식을 따라하는 어리석음만은 피할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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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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