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29일) 이른 새벽 사형이 집행된 ‘발리나인’ 두 멤버 앤드류 찬(Andrew Chan. 왼쪽)과 무란 스쿠마란(Myuran Sukumaran. 오른쪽). 호주 언론은 이들의 사형을 다시 조명하면서 이들의 마지막 바람은 이번 사형을 계기로 사형제도 폐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 대상으로 ‘사형제도 폐지’ 촉구 재개
전 세계적 비난 속에서 인도네시아 당국은 지난 주 수요일(29일) 이른 새벽 ‘발리나인’을 포함한 8명의 마약사범에 대한 사형을 전격 단행했다. 호주 정부는 ‘발리나인’ 두 사형수의 감형을 위해 인도네시아 당국과 지속적으로 접촉해 왔으나 마약사범에 대한 선처는 없다고 천명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발리나인’ 사형수가 총살형으로 집행된 이틀 후 금요일(1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발리나인’ 멤버인 앤드류 찬(Andrew Chan)과 뮤란 스쿠마란(Myuran Sukumaran) 두 사형수의 마지막 바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도 폐지 운동이 재개되기를 원했다.
오랜 시간 이들의 법적 문제를 맡아온 법률팀의 줄리안 맥마흔(Julian McMahon) 변호사는 앤드류 찬이 총살 직전 다른 사형수들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등 두 사형수의 마지막 순간을 자세히 언급하면서 이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냈다.
사형 집행 후 자카르타의 한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던 이들의 시신은 지난 주 토요일(2일) 오전 9시30분 가루다 항공(Garuda Airlines)편을 통해 시드니로 운구됐다.
맥마흔 변호사는 “찬과 스쿠마란은 사람들에게 사형제도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일깨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형에 대해 많은 대중적 관심이 있었고 단지 자신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형이 더 많은 목적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 기뻐했다”면서 “다른 장소에서 사형에 처해질 사형수들을 돕고자 했다”고 전했다.
맥마흔 변호사의 말은, ‘발리나인’은 자신들의 사형 집행이 이 제도를 폐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맥마흔 변호사는 ‘발리나인’ 등에 대한 사형이 집행될 당시 누사캄방간(Nusakambangan) 섬에 있었다. 사형이 집행된 후 형장의 증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는 그는 “두 호주인 사형수는 사형 직전 찬송가를 불렀고 다른 사형수들을 위로했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앤드류는 다른 사형수들의 이름을 불러 이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고 다른 사형수들도 모두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호주인 사제 찰리 버로우스(Charlie Burrows) 신부는 한 아일랜드 라디오 RTE와의 인터뷰에서 “굴라트(Rodrigo Gularte)는 자신의 감옥을 떠나면서 ‘내가 지금 사형장으로 가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버로우스 신부는 이어 “굴라트의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면서 “그 사실을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찰리 버로우스 신부는 이전에도 누사캄방간에서 실행된 사형장의 증인으로 참석한 바 있으며, 이번 사형 집행 전에는 브라질 사형수 로드리고 굴라트의 영적 지도자로 봉사해 왔다.
맥마흔 변호사는 또한 사형이 집행되기 전, 이들의 생애 마지막 날 이들은 호주 안작부대(ANZAC)의 갈리폴리 작전(Gallipoli campaign)과 세계 1차대전 당시의 유명한 호주 군인 존 모나시 장군에 대한 전기를 읽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안작 100주년을 기념한 날로부터 72시간 후 이들은 형장으로 가야 했다.
이날(29일) 사형이 집행된 8명 중 2명은 당일 장례가 치러졌다. 8명의 사형수 중 유일한 인도네시아인인 자이날 아비딘(Zainal Abidin)이 그 중 하나로, 그는 사형이 집행된 누사캄방간 섬의 해안도시 실라캅(Cilacap)의 묘지에 묻혔다.
자이날은 사우스 수마트라(South Sumatra)에 있는 고향 팔렘방(Palembang)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그의 바람은 당국에 의해 거부됐다. 이는 당국이 그의 시신 운구에 대한 비용 지불을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전했다.
자이날은 아주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형이 집행되던 날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한 가족은 동생인 이완 세티아완(Iwan Setiawan)뿐이었다.
세티아완씨는 “모든 것이 끝났다. 내 형은 죽었고, 이제 우리가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할 것이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마약밀매 사범 오쿠딜리 오야탄제(Okwudili Oyatanze)는 센트럴 자바(Central Java) 인근 암바라와(Ambarawa)에 있는 ‘Gita Eklesia Foundation’이 고아원에 안장됐다.
오야탄제는 생후 7개월만에 고아가 되었고 이후 그는 가혹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아원의 리나(Rina) 원장은 자카르타 포스트(Jakarta Post)와의 인터뷰에서 “오야탄제가 교도소에 있을 때 종종 면회를 갔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리나 원장은 “교도소에서 딜리(오쿠딜리)는 다정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찬과 스쿠마란과도 자주 만났다”면서 “재소자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모범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은 오쿠딜리의 시신이 고아원에 도착하자 고아원 측은 ‘Welcome Home, Uncle Dili’라고 글과 함께 그를 반겼다고 전했다.
맥마흔 변호사는 “8명의 사형수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족이나 여자친구,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있어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는 맥마흔 변호사는 “따스함과 사랑을 드러내는 이들을 사형시킨다는 발상, 국가 차원에서 죄수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