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학자금 대출 제도의 취약점을 보안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의 ‘소득공유’(income share) 시스템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멜번 소재 RMIT대학교 마이크 라퍼티(Mike Rafferty) 교수는 이 같은 의견을 내놓으면서 ‘소득공유’는 채무자의 소득에 상관없이 학자금 대출 상환이 보장되어 있어 채무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고 정부의 교육재정 위험요소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시드니 소재의 한 대학. 사진 : aap
RMIT 경제학 교수 제안, 채무자 책임감 제고-정부 위험요소 해소
현대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채무의 굴레’ 및 ‘인간주식 거래’ 경고도
“집 사고 싶으면 아보카도 토스트 사먹지 말라”
호주의 치솟는 집값으로 내 집 마련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인 이슈로 자리 잡은 가운데, 2016년 인구통계학자이자 전국 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안’(The Australian)과 헤럴드 선(Herald Sun)의 칼럼니스트인 버나드 솔트(Bernard Salt)씨가 호주 젊은이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이에 대해 SNS에는 ‘아보카도 토스트를 48년 동안 안 먹고 아껴야 겨우 계약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비난의 여론이 일며 일명 ‘아보카도 논쟁’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높은 부동산 가격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에 이어 학자금 대출은 호주 젊은이들 뿐 아니라 정부가 짊어진 또 다른 골칫거리다. 취업 후 소득이 일정금액을 넘지 않을 경우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학자금대출 HECS(Higher Education Contribution Scheme)와 HELP(Higher Education Loan Program)의 정책적 취약점이 원인이다. 이와 관련, 재정 문제가 호주의 일상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 ‘Risking Together’의 공동저자 마이크 라퍼티(Mike Rafferty) RMIT 교수가 ABC 방송 ‘Opinion’ 코너를 통해 미국의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인 ‘소득공유 협약’(income share agreement)을 제안했다.
‘소득공유 협약’,
채무자 책임감 높여
정부 조사에 따르면 ‘HELP’ 부채를 가진 사람은 2015-16년에만 2500만 명 가까이에 달한다. 2016-17년 회계연도에는 학생 한 명 당 평균 ‘HELP’ 대출금액이 19,100 달러에 달했으며, 이를 갚는 데에는 약 9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이 1.5조 달러에 달해 문제가 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은 ‘소득공유 협약’이라는 새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학생이 졸업 후 취업해 돈을 벌기 시작하면 소득의 일정부분이 학비로 자동 상환된다. 이를 통해 몇 년간 자신의 첫 소득을 일정기간 동안 포기하는 졸업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취업을 해도 연봉이 일정금액을 넘지 않으면 채무를 상환하지 않아도 됨으로써 정부가 아예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호주의 학자금대출 제도와는 달리, 미국의 ‘소득공유’ 제도는 대출액 상환이 보장되어 있어 사실상 대출금 출자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라퍼티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학자금 채무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고 정부 입장에서는 교육재정 위험 요소를 낮출 수 있는 ‘소득공유 협약’을 호주에도 적용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호주가 ‘소득공유’(income sharing)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조세의 일부가 민영화되고 금융기관에 혜택을 주면서 정부는 고등교육 학자금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더불어 현재 ‘소득공유’는 미국에서만 행해지고 있으며 학생들의 학비에만 적용되지만, 호주는 이를 응용해 HELP 및 HECS와 같은 ‘소득 대비 상환 대출’을 건강보험이나 육아 및 주거지 등과 같은 다른 주요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데에 확대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채무의 굴레,
‘현대 노예제’로 부상
라퍼티 교수에 따르면 ‘소득공유’에는 한 가지 문제가 따른다. 학생들이 ‘채무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UN과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는 이를 ‘현대사회의 노예’(modern day slavery)라 칭하기도 한다.
‘소득공유’ 상태에서는 채무자의 일부 소득을 소유한 고용주(여기서는 주주라고 할 수 있다)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갖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일정 지분(소득의 일부)만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주주는 주주권을 행사하게 마련이다. 상업적 거래에는 업적기준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만약 고용주가 압류 및 대금 회수의 권한이 없다면, 취업한 피고용인에게 기대되는 성과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소득공유’ 시스템에서 재정은 돈을 버는 수단임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라퍼티 교수는 ‘학생 소득공유’가 주택담보 대출처럼 판매됨에 따라 회사의 지분과 같이 인간의 삶에도 가격이 책정될 수 있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따르게 된다고 덧붙였다. 즉, ‘소득공유’ 시스템은 일명 ‘인간 주식거래’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언제나 수익의 흐름에 관심을 둔다. 이 과정에서 투자상품의 불편 요소(사람 및 이들의 근무능력)에 값이 매겨지게 되면서 결국 인간 주식거래가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돈이 생산되는 곳에는 언제나 재정거래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20세기에는 산업화에 대한 집단적인 대응의 일환으로 노동조합이 발전하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는 개인의 재정적 취약성을 노린 또 다른 재정거래가 나타나고 있다.
라퍼티 교수는 “앞으로는 정책적 체제 형태의 더욱 막강한 권력이 현대인들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