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내 우파 극단주의 세력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테러 사건으로 극우 세력 문제가 이슈가 되는 가운데 호주의 한 극단주의 전문가는 “우익 극단주의자들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이들을 받아들이는 광범위한 호주 사회에 문제가 있으며, 호주가 보다 더 반이슬람 정서를 받아들이고 또한 반이민 담론을 용인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 이어지면서 호주 극우 단체 활동, '점차 조직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무슬림 교회에서 호주 국적의 한 우파 극단주의자가 저지른 총기테러 사건으로 호주 내 과격 우파 단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 1월 멜번(Melbourne)의 인기 주거지역인 세인트 킬다(St Kilda)에서 멜번 우익단체들이 또 다시 유색인종 거부를 주장하는 랠리를 벌이면서 이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찰스스터트 대학교(Charles Sturt University) 테리리즘 전문가인 크리스티 캠피언(Kristy Campion) 교수가 인터넷 매체 ‘The Conversation’에 호주 우익 단체의 역사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Conversation’은 학술연구, 사회정치 분석 등 제반 분야를 분석, 진단하는 비영리 학술 매거진이다.
캠피언 교수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의 “총기 테러를 받아들이는 첫 단계는, 그것이 호주 및 전 세계 우익 극단주의에 의해 시행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번 총기 테러는 이민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우익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이슬람 공동체와 같은 소위 외부에서 들어온 이민자 그룹과는 무관하다”는 캠피언 교수는 “우익 극단주의자들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이들을 받아들이는 광범위한 호주 사회에 문제가 있으며, 호주가 보다 더 반이슬람 정서를 받아들이고 또한 반이민 담론을 용인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의 저항군을 뜻하는 ‘Antipodean Resistance’, ‘Lads Society’와 같이 우익 신념을 전파하는 단체들은 최근 수년 사이 종종 호주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고 전제한 캠피언 교수는 “하지만 이들 단체는 호주 내 극우파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다만 이들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복적인 호주 우익 문제를 드러내는 최근의 징후”라며 호주 극우의 역사를 조명했다.
1930년대,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ist Socialist German Worker's Party)를 이끌었던 요하네스 프렉(Johannes Frerck)의 신분증. 사진 : 호주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of Australia).
우파 극단주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것은...
우파 극단주의는 복잡한 일련의 이데올로기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포괄적 용어이다. 핵심 구성 요소는 권위주의, 반민주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파시스트, 국가 사회주의,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 특히 민족국가와 단일 문화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는 우파 극단주의자들의 임무 안에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와 함께 종종 등장하는 인종차별주의, 외국인 혐오증, 동성애 혐오증은 부수적인 것이다.
이에 동조하는 세력은 사회가 타락하거나 타락할 위험이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그리하여 이들은 그 위험에 대한 책임을 특정 소수민족 그룹이나 다른 이념을 가진 커뮤니티에 돌리는 것이다.
우익 세력은 위험에 대한 감정을 키우고 사회 제반 문제가 전적으로 외부 집단 탓이라는 잘못된 내러티브를 추진한다. 그리고 이 사회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적 행동으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호주 우파 극단주의의 뿌리
극단적 성향의 우파 역사학자들은 1920년대 호주에서 활동하던 ‘Old Guard’로 총칭되는 보수적이며 급진적 단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공산주의 위협에 대해 우려를 표했고 1917년 볼셰비키(Bolshevik)가 주도한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은 세력이었다. 당시 이들은 무기를 갖고 있었음에도 폭력적 행동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공식적인 파시스트 운동에 대한 지원도 있었다. 파시즘계는 멜번에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를 지지하며 생겨났다. 1932년 초반에는 국가 사회주의의 거점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비록 독립적으로 형성됐지만 ‘Auslands Organisation’이라는 조직으로 나치 당(Nazi Party)이 직접 관리하게 된다. 이 조직의 회원들은 반유대주의에 파시스트적이며 독일-아리아(German-Aryan) 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극우파의 또 다른 두드러진 목소리는 알렉산더 러드 밀(Alexander Rud Mills)이었다. 그는 현대 기독교가 소위 ‘유대인 숭배’(Jew-worship)로 변질되었다고 믿었고, 이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리안의 이상을 지향하는 오디니즘(Odinism. 고대 노르웨이 이교도의 한 형태)에 대한 인종적 해석을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라이스트처치 무슬림 예배당에서 총기 테러를 벌인 가해자가 노르웨이의 타락한 영웅들의 홀인 발할라(Valhalla)를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1941년에는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주의 일부 극우단체 회원들이 호주 저명인사 암살, 취약 지역 파괴, 호주 침략자 일본을 환영하는 연설문 초안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런 정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정치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 와중에 ‘호주 권리연맹’(Australian League of Rights)과 그 지도자 에릭 버틀러(Eric Dudley Butler)는 한순간 유명 인물이 됐다.
1946년, 우파 언론인이었던 버틀러는 ‘The International Jew: 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시오니스트 점령 정부(Zionist Occupation Government)가 존재하며, 다양한 인종의 노예화를 위해 나치 독일을 포함해 세계 정부를 통제하는 데 부(wealth)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호주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를 지지하는 노래책자 'MARCH of the GREAT WHITE POLICY'. 사진 : 호주 국립도서관(National Library of Australia).
주류 정치에 진입하려는 시도
‘호주 권리연맹’ 회원들은 민주주의 전복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채택했다. 이중 가장 주목할 전략은 엘리트를 침투시키는 것으로, 회원들이 주류 정당에 가입한 뒤 그 정당의 핵심 가치와 아이디어를 뒤집고 정당 내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지난해 국민당(Nationals)의 청년 조직인 ‘Young Nationals’를 파고든 우파조직 ‘Lads Society’의 전략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또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테러범이 우익 동료들에게 독려한 ‘Lightning Blitz’(게임기의 하나)의 지배적 지위’와도 같은 맥락이다.
1960년대 들어 우파 극단주의는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하위문화 네트워크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64년, 극우를 표방하는 ‘Stormtrooper’ 잡지와 ‘Hitler was right’라는 스티커 등 독일 나치(Nazi) 관련 자료들이 수입됐다. 또한 그해 ‘호주 민족주의 사회당’(Australia Nationalist Socialist Party)이 결성됐다(이 정당은 실패로 끝났다). 이는 신나치주의 정당(neo-Nazi party)으로, 같은 이념을 가진 이들을 당원으로 유치, 당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해 이 정당 지도부가 폭발물과 기폭장치, 그 외 다른 무기를 소지한 것이 적발됐으며 이들은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 수감됐다.
이 정당은 지도부의 대거 수감 후 ‘호주 사회주의당’(National Socialist Party of Australia)으로 다시 만들어졌고 전형적인 나치즘에서 벗어나 호주 중심의 새로운 우파 스타일로 거듭나려 시도했다. ‘유레카’(Eureka) 기를 채택하고 헨리 로슨(Henry Lawson. 호주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의 글을 인용한 이 우파 조직은 ‘백인계 호주’와 ‘반공이념’을 취함으로써 어느 정도 지지를 얻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루머도 나돌았다. 이들이 100명의 호주 유명인 살명부(kill list)를 작성했다는 게 그것이었다.
총기난사와 폭발물 시도까지
1976년으로 오면서 변화를 일궈내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외면하고 대신 폭력을 사용하려는 또 다른 극우단체들이 나타났다. 이 가운데 ‘Safari 8’, ‘Legion of the Frontiersmen of the Commonwealth’, ‘Australian Youth Coalition’이라는 이름의 극우단체는 호주 정보기관인 ASIO(Australian Security Intelligence Organisation)의 지속적인 감시 대상이었다. 이들은 결국 폭력적 행동을 실행하지 못했고 얼마 뒤 해산됐다.
하지만 시드니를 기반으로 했던 ‘National Action’이라는 조직은 수차례에 걸쳐 ‘drive-by shooting’(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총기를 난사하는 행위)을 감행했으며 서부 호주(WA) 퍼스(Perth)에서는 ‘호주 민족주의운동’(Australian Nationalist Movement)이라는 극우단체 회원들이 아시아 출신 기업인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화염병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사법당국의 강력한 단속으로 이후 극우 조직들이 침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하위문화 네트워크와 ‘스킨헤드’(skinhead. 폭력적 인종차별주의자 그룹을 일컫는 말)로 극우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인종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우파 세력의 이념적 토대는 ‘Southern Cross Hammerskins’, ‘Combat 18/Blood and Honour’, ‘Women of the Southern Legion’이라는 이름의 단체에 의해 지속됐다.
지난 2015년 멜번의 극우단체 랠리에서 'United Patriots Front'(UPF), 'True Blue Crew' 회원들이 빅토리아 주 의사당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당시 반 이민, 반 유색인종을 주장한 우파 극단주의 조직들의 랠리는 시드니와 브리즈번에서도 개최됐다. 사진 : aap
우파 극단주의의 국제적 부상
지난 2009년부터는 실제 위협인 지하디즘(jihadism. 극단적 이슬람주의 사상)을 비롯해 서구사회 내의 광범위한 무슬림 공동체에 대응하여 우파 극단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해 이들 극우 세력의 등장은 지하드(jihad. 이슬람 시아파의 과격 테러 활동 조직)에 대한 실질적인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민을 통한 이들의 유입으로 백인문화, 백인사회의 유산과 가치에 제기되는 위협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때 호주 내에서는 ‘Australian Defence League’, ‘Right Wing Resistance’ 등 국제적 연대를 가진 우파 단체가 등장했다. 여기에 ‘Reclaim Australia’가 부상하면서 ‘True Blue Crew’, ‘United Patriots Front’ 등 새로운 극우 단체들이 뒤이어 조직됐다.
이들 두 극우단체와 연관이 있던 필립 갈레아(Phillip Galea)는 지난 2016년 테러를 기도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United Patriots Front’ 조직은 ‘Lads Society’에 합류했다. 이는 외견상 민족-사회주의 그룹인 ‘Antipodean Resistance’에 의해 가입된 것이다. ‘Antipodean Resistance’는 외부인, 즉 이민자를 좌익세력, 유태인, 동성애자들로 간주하며 서로 다른 인종간 커플, 성 문란을 비난하는 우파 단체이다.
호주 우파 극단주의 생성과 전개를 이와 같이 설명한 크리스티 캠피언 교수는 이어 “지난 10년 사이에도 이념이 혼합된 여러 극우 세력들이 나타났다”면서 ‘Nationalist Australian Alternative’, ‘Proud Boys’, ‘Soldiers of Odin’, ‘Identity Australia’, ‘Australian Traditional’, ‘Australian Liberty Alliance’, ‘New National Action’, ‘Patriotic Youth League’, 이외에도 많은 세력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가해자가 이처럼 무수한 우파 극단 세력들의 이념을 공유하고 그것을 악용했다는 것은, 호주가 직면한 극우의 위협을 해결하는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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