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일자리, 좁아지는 취업 문턱, 늦은 임금성장... 이런 현실 속에서 대학 학위는 이제 더 고수입의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호주 교육산업 성장 속,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학력 실업’ 우려도
갈수록 일자리 불안정이 확대되는 가운데 오늘날 대학 졸업자는 또 하나의 ‘잃어버린 세대’가 되는 것일까.
지난 2일(화) 연방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조기 발표한 새 회계연도 예산 계획에는 은퇴한 이들, 특히 크게 상승한 부동산 가격으로 경제적 여유를 가진 ‘베이비부머’(2차 세계대전 전후 출생자로 현재 은퇴시기에 있는 사람들) 계층이 다음 세대의 세금 납부로 은퇴 이후의 보조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연금 제도 관련 부분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평가이다. ‘총선용’ 예산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이다.
그런 반면 호주의 미래를 위한 교육 관련 정책 계획은 빠져 있다. 고등교육 시스템을 달러 중심의 수출산업에서 본래 목적, 즉 미래를 위한 호주 젊은이들의 고등교육 기관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교육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번 예산안에서 대학분야 예산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지방 소재 대학 또는 직업훈련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4년간 9,370만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을 내놓기 몇 개월 전, 집권 여당은 회계연도 중반기의 예산 업데이트에서 박사학위(PhD) 과정 장학금 동결을 비롯해 대학 연구자금으로 지출되는 자금 중 3억2,850만 달러를 향후 4년에 걸쳐 삭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수치상으로 보면, 호주의 고등교육은 완전히 성공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호주의 교육산업은 철광, 석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 분야이다.
지난 한 해에만 호주 전역의 대학에는 54만8천 명의 해외 유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22만 명은 기술훈련 교육 기관에 적을 두고 있다.
이들은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호주 대학’이라는 특권을 사려고 한다. 전체적으로 호주 내 해외 유학생들은 한 해 320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1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들 유학생의 거의 3분의 1은 중국 출신이며 인도, 말레이시아 뒤를 잇는다.
물론 호주가 글로벌 교육 중심지로 급성장하기까지 비용 소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국제 학생 유치를 위한 경쟁, 유학생을 졸업시키고자 하는 대학 측으로부터 강사들이 받는 압박감, 전공과목에 대한 강의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언어능력을 가진 학생 문제에서 교수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난도 있었다. 게다가 학업 능력이 기준에 못 미치는 학생을 낙제시키는 교육자의 경우에는 대학 강단에서 소외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뿐 아니라 호주 대학에 입학하는 많은 유학생들이 호주 영구 정착을 위한 한 방법으로 활용하며 단기 일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국내 대학생들의 대학 생활에 압박감을 더하는가 하면, 대학 재학 중 서비스 업종에서 시간제 노동을 하다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전공 분야에 취업하면서 임금 수준을 떨어드린다는 비난도 꾸준히 제기된 게 사실이다.
호주의 고등교육은 철광, 석탄 수출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업'으로 자리잡았지만 정부의 소극적 지원으로 이조차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학교육, 경제적 부? 아니면
부채만 짊어지게 될까?
금주 월요일(8일) ABC 방송은 ‘Higher education is failing our youth, leaving them overqualified and underemployed’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통해 호주의 고등교육 계획과 대학졸업자들의 고용 문제를 진단, 눈길을 끌었다.
방송은 “이제 대학 학위는 더 이상 ‘직업’으로 가는 자동 출구가 아니다”고 전했다. 학업을 이어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면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 일을 계속할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선택한 분야 또는 전문직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대학 학위를 가진 이들의 약 85%가 졸업 후 4개월 이내 직장을 구했다. 하지만 최근 관련 조사를 보면 이 비율은 73%로 떨어졌다. 얼핏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풀타임과 파트타임 일자리 비중이다. 대학졸업 후 4개월 이내 직장을 구한 이들 가운데 남성 32%, 여성 41%는 파트타임 직장이었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 현황을 조사한 최근 자료는 고등교육 이수자의 취업 후 소득 등에 대한 긍정적 부분을 부각하고 있는 반면 결정적으로 학위 비용과 관련된 지출, 그로 인한 부채 부분은 비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정 대학 학위가 가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많은 수의 호주 젊은이들이 법, 저널리즘, 심리학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있지만 이들을 흡수할 일자리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법률을 공부하고 ‘배리스터’(barrister. 법정 변호인)가 되려 하다 ‘바리스타’(barista)가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1년 전, 당시 호주 총리로 재임하던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은 호주 젊은이들에게 본인의 전공인 법학을 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유명 변호사 출신인 턴불 전 총리는 당시 캔버라 라디오 ‘2CC’와의 인터뷰에서 “변호사가 되려면 법학 학위를 받아야 하고 그 학업에 매진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법학을 선택하려는 젊은이들 가운데는 마치 변호사를 흥미로운 배경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호주 각 대학의 법학 학위 배출은 매년 1만5천 명에 이른다. 현재 호주 전국적으로 등록된 변호사(solicitor)는 6만6천여 명이다. 빼어난 실력이 아니면 이 분야의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게 만만치 않다.
매년 많은 법학 전공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변호사로서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여기에는 호주에서의 학업으로 인한 빚을 질 수밖에 없는 해외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다.
10년 전만 해도 대학졸업자의 85%가 졸업 후 4개월 이내 취업을 했지만 지금은 73%로 낮아졌으며 그나마 남성 32, 여성 41%는 파트타임 일자리였다. 사진은 한 대학의 강의실.
대학교육 시스템 문제도...
호주 고등교육은 지난 반세기 이상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을 이어 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9년 노동당 러드(Kevin Rudd) 정부 당시 교육부 장관을 맡았던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가 두 가지 주요 정책을 발표하면서 획기적 전환기를 맞았다.
첫째는, 공립대학의 등록학생 수 상한을 없애고 대학이 원하는 만큼 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며, 둘째는 직업교육 학교 재학생들에게도 정부가 보조하는 학자금 대출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약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두 번째 정책은 거의 재앙으로 간주되고 있다. 학교는 실력이 낮은 학생들조차 높은 학비가 소요되는 과정으로 유인했고, 이들은 결국 전공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서 너무 많은 비용을 초래한 것이다.
대학들이 단순히 학교 수입을 위해 가능한 많은 학생을 유치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유사한 논란이 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교육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해외 유학생 유치를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의 대학순위 조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 기관인 ‘타임즈고등교육’(Times Higher Education. THE)과 ‘Quacquarelli Symonds’(QS) 등은 그 대표적 조사기관으로 꼽힌다.
이들로부터 매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NSW대학교, 멜번대학교, 시드니대학교, RMIT(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모나시대학교는 많은 해외 유학생을 유인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호주의 지방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들이 대학 순위를 매기는 중요한 기준은 대학의 연구 업적이다. 하지만 호주의 경우 연방 정부의 계속되는 연구비 지원 삭감으로 위기를 맞고 있으며, ‘수출산업으로서의 고등교육’ 진흥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함은 자명한 일이다.
ABC 방송은 현재 호주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 높은 학비와 대학 졸업자의 갈수록 어려워지는 구직 문제를 언급하면서 “젊은이들이 선택한 대학의 전공 분야에서 일할 가망성이 줄어드는 것, 불안정한 고용과 정체된 임금 등은 이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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