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연방 의회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가결하기 이전, 동성커플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ACT 준주 정부가 이번에는 LGBTQI 친화 도시 (LGBTQI - friendly city) 조성 계획의 일환으로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 금지를 발표했다. 이는 개인의 성적 지향을 포함해 동성애-양성애 취향을 치료한다는 것이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사이비과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이론이다.
사진은 캔버라 도심에 있는 레인보우 라운드어바웃(rainbow roundabout). 사진: Luton Projects
전체 가구의 1.4% 비율, ‘동성커플에 대한 ACT의 열린 정책 때문’ 분석
‘LGBTQI’ 위한 제도적 정치 앞장... 이번에는 ‘Conversion Therapy’ 금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그리고 시드니... 이 도시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세계 최대 동성애자 축제가 열린다는 점이다. 1978년 동성애자들에 대한 제도적 탄압에 반발, 작은 규모의 시위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그 이후 매년 퍼레이드가 벌어진 것에서 시작된 시드니 마디그라(Sydney Mardi Gras)는 오늘날 NSW 주의 대표적 관광 상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이 축제 하나만으로 매년 수십 만 명의 여행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이 축제는 시드니를 호주의 대표적 동성애자 도시로 인식시켰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호주에서 동성커플 거주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시드니가 아닌 캔버라(Canberra)이다. 시드니의 동성애 비율 또한 주요 도시 중 높은 편이지만 캔버라는 거주자 가운데 동성커플일 가능성이 다른 도시에 비해 최대 50% 이상에 달하며, 여성 동성애 커플(lesbian)은 남성(gay)에 비해 0.2%포인트 많다.
매 5년마다 인구조사(Census)를 실시하는 호주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ABS)은 각 개개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지만 다른 인구조사 항목을 통해 동성커플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는 동성 인구의 보수적인 추정이기는 하지만 일부 비교는 가능하다.
‘LGBTQI’ 도시가 된 요인은?
‘LGBTQI’는 모든 동성 취향(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or Questioning, and Intersex)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캔버라인가?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추정적 이론은 가능하다.
인구조사를 실시, 각 부문별 집계자료를 분석하는 ABS는 “동성커플의 경우 각 지역의 주변 도시보다는 주 수도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연방 수도인 캔버라 거주 동성커플이 애들레이드(Adelaide, SA)나 브리즈번(Brisbane. QLD)에 비해 높은 거주 비율을 보이는 것에 대한 통계적 차이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근래에 호주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동성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기 이전(호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것은 2017년 12월 7일이다), 다른 주(State)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을 때 ACT 준주(Territory) 정부는 동성의 커플들에게도 일반(이성간 결혼) 커플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ACT 의회는 지난 2006년 ‘합법적 동성 결혼’(civil unions)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2013년에도 다시금 동성결혼 허용 입법화를 시도했다.
특히 호주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듯, ACT에는 준주 정부의 수석장관(다른 주의 총리에 해당)으로,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공표한 앤드류 바(Andrew Barr) 의원이 있다. 2011년부터 2014년, ACT의 노동당 준주 정부 부장관을 거쳐 2014년 11월 수석장관에 선출된 그는 ACT 의회 시절 동성커플의 권리를 위해 많은 활동을 펼쳐오면서 호주 동성커플들의 진정한 리더 역할을 했던 인사이다.
지난 11월1일 A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바 수석 장관이 캔버라를 ‘LGBTQI 친화 도시’(LGBTQI-friendly city)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 금지를 발표했다. 이는 개인의 성적 지향을 포함해 동성애-양성애 취향을 치료한다는 것이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사이비과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이론이다.
역사적으로 일부 교회 단체에서 이용했던 이 불명예스러운 관습은 당사자에게 정신적 해악을 끼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바 수석장관은 “최근 수년 사이에도 이 같은 관행이 있었던 사례를 알고 있다”면서 “캔버라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12월,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이 나오기 전, 이에 대해 찬반을 묻은 우편투표 당시 찬성을 호소하며 캔버라에 등장했던 레인보우 버스. 사진: 페이스북 / Tara Cheyne MLA
수석장관은 캔버라에 많은 동성커플이 거주하는 배경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거주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동성애자를 비추는 스펙트럼의 끝으로 가면 극히 편협한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영역이 있다”며 “거주민의 교육 수준이 낮은 지역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동성커플들에게 있어 캔버라는 가장 안전한 도시이며 다른 도시에 비해 이들을 수용하는 열린 자세가 있다는 소문이 (입을 통해) 확산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캔버라에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이곳에서 직장을 얻을 기회가 있다면, 이 도시는 ‘LGBTI’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캔버라 토박이인 이사벨 머드포드(Isabel Mudford)씨는 현재 캔버라 시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동성의 커플을 만나 사귀는 중이다. 26세의 그녀는 ‘LGBTQI’ 취향을 가진 이들이 준주 정부의 성 평등 정책에 끌려 캔버라에 정착한다고 믿고 있다.
“연방 의회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남다른 시각이 존재하지만, 캔버라 자체만을 보면 ‘LGBTQI’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아주 훌륭한 도시”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어 “캔버라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역사회 활동, 고용 지원 등 평등 정책으로 호주의 다른 도시들과 다른 거주 환경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캔버라 토박이로 동성애자인 이사벨 머드포드(Isabel Mudford, 26)씨. 그녀는 캔버라 준주 정부 수장으로 동성애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앤드류 바(Andrew Barr) 수석장관실의 동성애자 정책 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Isabel Mudford 제공
“데이터는 겉핥기 일 뿐...”
ABS가 조사하는 호주인의 성 취향 자료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센서스 당시 동성커플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답변자들만을 집계하고 있으며, 또한 개인 정보 수집의 법적 민감성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ABS는 다음 인구조사에서는 성별, 성적 취향을 묻는 항목을 조사 설문에 포함시킴으로써 보다 구체적인 통계를 확보하는 것을 고려한 바 있다. 하지만 통계청의 데이빗 칼리쉬(David Kalisch) 청장은 최근 연방 의회에서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민감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 같은 검토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바 수석장관은 “안타까운 결정”이라며 정부 입장에서 전반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칼리쉬 청장에게 “이를 재고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 정보는 고령자 요양 서비스 등 정부의 향후 정책 입안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수석장관의 의견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상황에서 이제 이들 커플이 요양원에 의지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며, 그 준비 차원에서도 신뢰할 만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머드포드씨 또한 수석장관의 말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녀는 개인의 성적 취향을 묻는 센서스 설문이 ‘민감한’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사실 두려움이 내재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성애는 당연한 것이며 이성애자들은 거리에서 당연히 만나고 공개적으로 이성애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성애, 양성애, 트렌드젠더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오명이 되는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에 실제로는 오명과 차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더 많은 이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공식적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머드포드씨 지적이다.
1978년 6월24일 달링하버에서 호주 역사상 최초로 개최된 마다그라 행진. 당시 행진 슬로건은 ‘국제 게이 연대의 날(International Gay Solidarity Day)이었으며, 호주 언론은 이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았고, 시드니 경찰은 이들을 체포하고 해산시켰다. 사진: 마디그라 홈페이지
■ 호주 각 도시별 동성커플 거주 비율
(도시 : 남 / 여 -%)
-Canberra : 0.6 / 0.8
-Sydney : 0.8 / 0.5
-Darwin : 0.7 / 0.6
-Melbourne : 0.6 / 0.5
-Brisbane : 0.5 / 0.6
-Hobart : 0.5 / 0.6
-Darwin : 0.5 / 0.5
-Townsville : 0.4 / 0.6
-Newcastle-Maitland : 0.3 / 0.5
-Central Coast : 0.4 / 0.5
-Adelaide : 0.4 / 0.5
-Perth : 0.4 / 0.4
-Gold Coast-Tweed Heads : 0.4 / 0.4
-Geelong : 0.3 / 0.5
-Sunshine Coast : 0.3 / 0.4
-Wollongong : 0.2 / 0.4
-Toowoomba : 0.2 / 0.3
*The ABS's same-sex couple indicator (only cities with 25,000+ couples).
(Source: Census 2016)
김지환 객원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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