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비만의 날'(10월11일)을 기해 멜번 소재 빅토리아대학교 보건정책 전문가가 내놓은 호주인 비만 연구 결과 18세 이상 3명 중 2명은 과체중 또는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거주 지역에 따라 비만인구 비율은 다르게 나타났다. 사진: World Obesity Federation
호주인 ‘비만’ 비율 상승, 거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
빅토리아 대학 보건 전문가 조사... “더 이상 개인의 문제 아니다”
‘만약 당신이 호주에서 성인이 되었다면 과체중이거나 비만일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은 사실이다. 호주의 비만에 대한 가장 최근 집계에 따르면 국내 18세 이상 성인 3명 중 2명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다. 하지만 이 냉정한 조사 결과는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주 수도인 퍼스(Perth)의 이너시티(inner city)나 혹은 시드니 북부 어퍼노스쇼어 지역(upper north shore region) 거주민들에게는 놀라운 뉴스가 될 수도 있다. 시드니 어퍼노스쇼어 지역, 쿠링가이(Ku-ring-gai) 카운슬 주민들의 경우 비만으로 진단된 이들은 14%를 약간 상회할 뿐이다. 이들은 호주 전역에서도 가장 마른 허리둘레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NSW 주 북서부 내륙, 시드니에서 자동차로 약 4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웰링턴(Wellington)으로 가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NSW 주 내륙의 이 작은 도시는 대도시 주변, 또는 지방 지역 타운들과 마찬가지로 성인 인구의 거의 절반이 비만이며, 이로 인한 당뇨, 암, 심장질환 및 치매 위험도가 매우 높다.
지난 10월1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 예방을 강조하고자 정한 ‘세계 비만의 날’(World Obesity Day)이었다. 올해로 10년째가 되는 이날 빅토리아대학교(Victoria University. VU) 공공보건 정책 전문가가 비만 문제 해결 방안의 재설정을 촉구하고 나선 사실을 ABC 방송이 전했다.
VU의 로즈마리 칼더(Rosemary Calder) 교수에 따르면 호주인은 점차 뚱뚱하고 비활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동 대학교 공공 보건 조사 자료 ‘Australian Health Tracker’에 따르면 호주인 비만은 거주 지역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특정 지역 간 300%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
칼더 교수는 “호주인 비만 비율은 지난 10년 사이 27%가 증가했다”면서 “비만은 거주 지역의 영향, 해당 지역의 사회-경제적 위상 등 여러 관련 요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호주 내, 국가 복지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지역이나 공동체(disadvantaged communities)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비만 비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비만은 지역에 따른 문제로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취약한 지역사회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정부가 이해하는 것”이라는 게 칼더 교수의 주장이다.
보건 분야 전문가들은 사회-경제적으로 혜택 받지 못하는 지역 거주자의 경우 패스트푸드 이용이 많을 수밖에 없고 또 신체 활동을 할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부유층 지역 거주민,
허리둘레는 ‘정상’
VU 조사에 따르면 호주에서 비만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suburb)은 멜번과 퍼스 도심 및 도심과 가까운(inner city) 지역이었다.
칼더 교수는 “도시의 부유층 지역 거주민 비만 비율이 낮은 것은 넉넉한 건강관리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나무가 무성한 녹색지대이며 공원과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갖춘 공간이 많다. 대중교통 기반은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직장과도 가까워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다. 결국 신체활동이 많고 이것이 주민들의 비만 비율을 낮춘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신선한 과일과 야채 판매점이 많은 반면 패스트푸드 매장은 적다.
대조적으로 사회-경제적 형편이 취약한 지역, 인구 증가로 급격하게 만들어진 대도시 외곽의 경우, 거주민의 건강을 지원하는 물리적 인프라가 상당히 빈약하다. 칼더 교수는 “소득이 낮은 지역의 경우 이 같은 기반이 적으며 대중교통 시스템 또한 원활하지 못해 먼 거리를 승용차로 이동해야 하기에 신체 활동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또한 패스트푸드 아울렛이 많은 반면,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구매할 수 있는 슈퍼마켓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비만은 선택이 아니다”,
보건 전문가들 지적
바로 이런 점에서 공공보건 전문가들은 비만에 대해 “개인의 선택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칼더 교수는 “더 이상 ‘개인의 책임’이라는 말로 ‘비만 프레임’을 주장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의 이 같은 프레임으로 인해 우리는 비만자들의 행동 방식이 바뀌기를 너무나 오래 동안 기다려 왔다”는 것이 그녀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칼더 교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환경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는 비만을 줄이려는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ABC 방송이 전국 시청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전국 조사 ‘Australia Talks’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1은 (체중을 줄이고자 하는)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칼더 교수는 “저소득층의 경우 패스트푸드는 가장 저렴하고 편리한 음식 옵션”이라며 “자녀가 있는 홀부모(single parent) 가정의 경우 야채와 육류로 식사를 하는 것보다 양이 많은 감자 칩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개인의 음식 선택은 꼭 ‘좋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주변 자원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비만 관련 단체인 ‘Obesity Policy Coalition’의 제인 마틴(Jane Martin) 대표는 칼더 교수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비만은 호주인 전체의 문제이지만 정책 초점은 저소득 계층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틴 대표 또한 비만 문제를 당사자가 관리하도록 하거나 개인적 문제로 돌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비만 해결책은 개인에게 있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는 게 그녀의 말이다.
014-15년 통계에 따르면 뚱뚱하거나(Overweight) 비만(Obese)인 호주 남자들이 여자들 보다 71%와 56%로 더 높다. 그러나 어쨌든 비만 현상은 높은 편이며 매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출처: 호주 건강 복지 협회, Australian Institute of Health and welfare)
개인적 문제 아닌
공동체 전체의 책임
지난 6월 연방 보건부 그렉 헌트(Greg Hunt) 장관은 영양과 비만에 중점을 둔 국가 건강전략인 ‘National Preventative Health Strategy’ 계획을 수립했다.
칼더 교수는 “거주 지역의 환경적 요소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방영해 정부 정책이 결정된다면,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단계”라고 전제한 뒤 “비만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흡연율 또한 높고 신체 활동은 적으며 만성질환 발생률이 높았다”며 “이 지역은 대체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아 빈곤이 건강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바로 이를 바꿔야 한다”며 “우리는 이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칼더 교수는 건강한 식습관, 신체 활동을 장려하는 환경 조성 외에도 가공식품에 첨가되는 소금 및 설탕 함량에 대한 정부 정책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틴 대표 또한 식품 첨가물 표시 및 정크 푸드 광고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그녀는 “정크 푸드 광고는 저렴한 가격으로 젊은이들을 파고 든다”며 “무분별한 광고 내용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마틴 대표는 비만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비만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하는 ‘개입’ 이상의 효과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하며 “저렴한 주택, 올바른 교육은 건강 증진을 위한 중요한 선구적 조치”임을 강조했다.
한편 연방 정부의 첫 번째 비만 전략은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이며 2020년 6월에 열리는 호주정부협의회(Council of Australian Governments) 보건회의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지환 객원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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