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이어진 최악의 산불, 지울 수 없는 상처 남겼다”
2천 채 이상 가옥 파손-23명 사망-1천100만 헥타르 삼림 초토화
12억5천만 마리의 야생동물 사망 추정, 코알라 멸종 위기 진단도
역대 최악의 호주 산불이 5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이미 국가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신년 1월 11일(토) 현재까지의 피해 규모를 보면 산불로 초토화된 삼림(농장지대 포함)은 1천100만 헥타르(남한 면적)가 넘으며 2천 채 이상의 가옥이 전소됐다. 사망자 숫자도 23명으로 집계된 상황이며, 코알라와 캥거루, 주머니쥐, 박쥐 등을 포함한 12억 5천만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세계자연기금 WWF 호주지부 발표). 이런 가운데 특히 야생 코알라 서식지역 피해가 커 코알라가 멸종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호주 정부는 산불로 야생동물 약 10만 마리 정도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는데 정부의 관측을 크게 뛰어넘은 것이며, 실제로는 피해 정도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여름 산불 시즌은 예년에 비해 일찍 시작됐다. 산불은 지난해 10월 퀸즐랜드(Queensland)와 NSW 주 중북부 일대에서 발생됐으며, 11월 둘째 주 들어서면서 본격 확산됐다. 지난해 계속 이어진 가뭄과 이전과는 다르게 높은 이상 기온이 이어지면서 쉽게 불길을 잡지 못했고, 크리스마스와 연초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이는 기온이 오르는 평년 여름 시즌의 자연발생적인 산불과는 분명 달랐으며, 이에 따라 기후변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호주 전역의 전직 소방 책임자들은 미디어 컨퍼런스를 갖고 “보다 심각해진 호주의 산불 및 가뭄은 기후변화에 따른 것”이라며 정치권을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소방 관계자들도 관련 시민단체들은 산불로 피해를 입은 삼림 및 가옥은 재건되겠지만 해당 지역민들이 겪었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극히 이례적’인 이번 여름 시즌 산불은 호주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남긴 채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월 11일(토) 현재까지 사망자는 23명, 황폐화된 삼림(농장 지대 포함)은 남한 면적인 1천100만 헥타르에 달하며 12억5천만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서부 호주(WA)의 에어 하이웨이(Eyre Highway) 상에 자리한 유클라(Eucla. 서부 호주와 남부 호주 경계 지점)에서 산불 진압을 벌이는 지역 소방대원들. 사진: Department of Fire and Emergency Services / Evan Collis
▲ NSW 중북부= 지난해 10월, 일찍 발생된 산불은 11월까지 계속 번지면서 70여 곳으로 확산됐으며 700여 가옥을 비롯해 1천300여 농장 건축물을 파손시켰다. 당시 사망자도 6명에 달했다. 특히 고스퍼스 마운틴(Gospers Mountain), 카지노(Casino) 남쪽 보라 릿지(Bora Ridge) 지역의 피해가 컸다.
12월 들어 산불은 남부 지역으로 확산, 광역시드니 인근 까지 번졌고, 산불로 인한 연기가 바람을 타고 시드니 상공을 뒤덮으면서 올 들어 가장 심각한 대기오염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일) 현재 시드니 북부 지역의 산불은 130곳으로 확대됐다. 사망자 숫자도 17명으로 늘어났고 1천365채의 주택이 전소됐다.
1월 첫 주말인 지난 4일(토) 현재 NSW 주와 빅토리아(Victoria) 주의 산불 발생 지역을 보여주는 그림. NSW 주 동부 해안 및 해안에서 가까운 내륙의 산불 발생 지역은 130여 곳에 이른다.
▲ NSW South Coast=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38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코바고(Cobargo)는 1820년대 농장지대로 개발이 시작된 곳이며 당시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올드타운으로 시드니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아 왔던 여행지이다.
인구 770명의 이 작은 타운에 화마가 번진 것은 지난해 마지막 날(31일)로, 이로 인해 중심가의 멋진 숍들은 금세 불길에 휩싸였고 63세의 농부 로버트 솔웨이(Robert Salway)씨와 그의 아들 패트릭(Patrick)이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번진 불로 사람들은 다급하게 마을을 벗어나야 했다. 타운 중심가를 휩쓸어버린 화마에 대해 소방관들은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대피했던 주민들이 돌아왔을 때, 코바고의 이전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날, 코바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바일 대피 경고가 내려진 몇 분 후 코바고 북쪽 해안, 인구 300여 명의 모고(Mogo) 거주민들은 주택과 숍들을 삼키는 화염을 망연히 바라보아야 했다.
모고 인근의 클라이드 마운틴(Clyde Mountain)에서 시작된 산불은 곧바로 모고 북쪽, 베이cm먼스 베이(Batemans Bay)를 검은 연기로 뒤덮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빔버라말라 국립공원(Bimbermala National Park)의 쿠로완(Currowan) 산불과 합쳐지면서 보다 넓은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쿠로완, 모고 등 각 타운 거주민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다급히 베이트먼스 베이로 대피해야 했다. 해변 휴양 타운인 베이츠먼스 베이는 수십 가구의 피난처가 됐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산불을 “전쟁”이라 묘사했다.
코바고를 황폐화시킨 산불은 곧바로 내륙으로 번져 브레이드우드(Braidwood)를 위협했고, 베이cm먼스 북쪽 레이크 콘졸라(Lake Conjola)에서도 새로운 산불이 시작됐다. 거주민들을 비롯해 NSW 남부 해안에서 휴가를 보내던 이들은 다급히 안전한 대피처로 이동해야 했다.
이 산불로 콘졸라 호수와 면해 있는 작은 마을 콘졸라 파크(Conjola Park)의 주택은 모두 전소됐다. 생존자들은 너무 짙은 연기로 1미터 전방조차 보이지 않았다며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NSW 남부 해안 및 내륙 지역은 지난해 연말 발생된 산불이 급속히 번지면서 피해가 컸다. 사진은 사우스코스트(South Coast) 지역의 휴양 타운인 베이cm먼스 베이(Batrmans Bay) 중심가. 한 소방대원이 불길을 막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사진 : Supplied
▲ East Gippsland= 빅토리아(Victoria) 주 동쪽, NSW 주와 경계를 이루는 이스트 깁스랜드(East Gippsland)에서는 지난 해 12월 초 발생된 산불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됐다.
스노위 리버 국립공원(Snowy River National Park) 인근에서 시작된 산불은 한낮 최고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이상기온과 변덕스러운 바람을 타고 빅토리아 주 동부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빅토리아 주 당국은 동부 깁스랜드 지역의 산불이 최소 몇 달 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빅토리아 주의 산불은 11월로 접어들면서 일부 다른 지역에서도 산불이 시작됐지만 이스트 깁스랜드처럼 순식간에 대규모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빅토리아 주에서 여름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인 11월에 산불이 발생하는 것은 거의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12월 말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스트 깁스랜드 지역에서 시작된 한 산불이 이상기온으로 순식간에 네 배 이상 확대되면서 빅토리아 주 당국은 3만여 명의 해당 지역 주민 및 여행자들에게 대피를 촉구했다. 12월 30일(월)에는 NSW 주에서 이스트 깁스랜드 지역을 거쳐 빅토리아로 이어지는 A1 도로의 베언스데일(Bairnsdale) 동부 지역이 전면 폐쇄됐다. 불길은 베언스데일 남쪽, 말라쿠타(Mallacoota)로 확대됐다. 또한 동쪽으로 번져 사스필드(Sarsfield)와 클리프턴 크릭(Clifton Creek) 농장지대를 모두 황폐화시켰다.
빅토리아 주 말라쿠타(Mallacoota) 지역의 산불로 긴급히 대피한 주민과 여행자들이 말라쿠타 와프(Mallacoota Wharf)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 travelling_aus_family
▲ Mallacoota= 이스트 깁스랜드에서 통제되지 않은 산불은 순식간에 20만 헥타르 이상의 삼림을 태웠으며, 약 200킬로미터 지점의 해안 지역 말라쿠타(Mallacoota)까지 번졌다.
말라쿠타는 빅토리아 주 동부의 인기 있는 휴양지 중 하나로, 지난해 마지막 날(12월 31일) 불길이 시작되면서 수천 명의 거주민과 여행자들이 대피해야 했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번진 산불을 피해 주민들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대피하거나 일부는 물속으로 뛰어들기까지 했으며, 호주 해군은 긴급히 군함을 출동, 주민들에게 대피처를 제공했다. 그리고 새해 첫날, 말라쿠타는 황폐하게 변한 풍경으로,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베언스데일 북쪽, NSW 주 경제 지점 인근의 코리용(Corryong)과 컷지와(Cudgewa) 또한 지난해 마지막 날, 극심한 산불에 시달려야 했다. 베인스데일 북쪽으로 이어진 산불 라인은 이 두 곳의 타운에도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산불이 휩쓴 말라쿠타(Mallacoota)에서 지역 주민 패트릭 보일(Patrick Boyle)씨가 살아남은 코알라를 발견, 구조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 Snowy Mountains= 이스트 깁스랜드 산불의 엄청난 위력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연초에는 이스트 깁스랜드 북쪽 내륙, 빅토리아 주 경계 인근의 NSW 주 소재 스노위 마운틴(Snowy Mountains)에서 산불이 새로 시작됐다. 이 지역 던스 로드(Dunns Road)에서 시작된 산불은 배틀로(Batlow)와 코지어스코 국립공원(Kosciuszko National Park)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겨울 시즌, 스키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리조트 숙소들이 이 화마로 완전히 파괴됐다.
지역 대기 질 또한 크게 악화됐다. 산불 시즌 초반, NSW 주 중북부의 산불이 광역시드니 경계 인근까지 번지면서 시드니 전역까지 극심한 공기오염에 시달린 것 이상으로 스노위 마운틴 일대의 공기 오염은 최악으로 진단됐다.
스노위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Snowy Hydro 2.0 project’ 구역에서 바라본 스노위 마운틴 지역. 산불로 인해 한낮의 대기는 온통 붉은 색으로 변했다. 사진: Supplied / Snowy Hydro
지난 연말, 남부 호주(SA)의 캥거루 아일랜드(Kangaroo Island) 산불은 단 며칠 만에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의 절반에 달하는 20만 헥타르를 뒤덮었다. 사진은 농장 지역을 집어 삼키고 있는 화마. 헬리콥터 조종사 트렌트 로손(Trent Lawson)씨가 촬영한 것이다. 사진: 인스타그램 / Trent Lawson(tmanadventure)
▲ Kangaroo Island= 지난해 11월 중순, 요크 반도(Yorke Peninsula)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11채의 가옥을 전소시킨 뒤 며칠 만에 진화된 바 있는 남부 호주(South Australia)에서는 지난 연말,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캥거루 아일랜드(Kangaroo Island)에서 산불이 발생해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새해 첫 주말인 지난 1월 4일(토), 캥거루 아일랜드와 고스(Gosse)를 잇는 플레이포드 하이웨이(Playford Highway) 상의 한 자동차에서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됐으며, 인근에서 또 한 명의 사망자가 발견돼 안타까움을 주었다. 이들은 딕 랭(Dick Lang)씨와 아들 클레이튼(Clayton)으로, 관계자들은 급속히 확대되는 산불에 쫓기다가 결국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남부 호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달 10일(금)까지 캥거루 아일랜드의 농장지대를 포함한 삼림피해 규모는 20만 헥타르에 달한다. 이는 캥거루 아일랜드 전체 면적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섬 야생 동물들의 피해는 엄청난 것으로 추정된다.
김지환 객원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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