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이 식료품 및 가정용품 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필요 이상의 물품 구입은 적절하지 않다며 다만 공급망 차질을 대비해 약간의 음식물 등을 비축해 놓은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사진은 시드니 지역 한 울워스(Woolworths) 매장의 텅 빈 가정용품 진열대.
‘코로나 바이러스’ 불안감, 바이러스처럼 확산되나
식료품 ‘사재기’ 현상 ‘꿈틀’… 대형 슈퍼마켓, “공급망 이상 없다” 강조
시드니 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주부 밀리(Milly)씨는 최근 여분의 방을 식료품 저장실로 만들며 ‘마치 최후의 심판일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호주에서도 확진 환자가 늘어나면서 그녀는 통조림 콩과 야채 및 과일, 화장지, 고양이 먹이, 반려견 사료 등 식료품들과 생활필수품들을 집에 비축해 놓기 시작했다.
5살짜리 아들이 천식을 앓고 있기에 그녀가 미리 준비하는 물품 중에는 관련 의약품도 있다. 그녀의 아들은 지금 아동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번 바이러스가 특히 신경 쓰인다”는 밀리씨는 “병원을 방문하다 보면 아들이 감염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밀리씨의 아들은 두 가지 종류의 천식 예방제와 매주 2회 구강 스테로이제를 복용하고 있다. 또 매일 4-6시간마다 호흡기를, 또 거의 매일 밤 의료용 분무기(nebuliser)를 사용해야 한다.
밀리씨가 필요 물품을 비축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호주 국내에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커져가면서 식품 및 생필품을 비축해 놓으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울워스(Woolworths), 콜스(Coles) 등 대형 슈퍼마켓의 식료품 및 생필품 진열대 물품들이 금세 동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는 60개 이상 국가에 전파됐으며, 호주의 경우 3월 4일(목) 현재 41명의 확진자들이 나온 상태이다. NSW 주에는 60대 한인 여성을 포함하여 총 16명을 기록했다.
콜스(Coles) 슈퍼마켓의 가정용품 진열대에 붙어 있는 공지문. “수요 급증에 따라 항박테리아 손 세정 제품이 동이났다“는 안내문 내용은 소비자들이 관련 제품들을 가장 많이 사재기(panic-buying) 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전문가들 대다수,
“‘사재기’ 할 필요는 없다”
퀸즐랜드대학교(University of Queensland) 바이러스 전문가인 이안 맥케이(Ian Mackay) 교수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최소 몇 주에서 수개월가량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맥케이 교수는 “하지만 현 시점에서 필요 물품을 사재기(panic-buying) 할 필요는 없다”며 “단지 쇼핑을 할 때 평소와 달리 트롤리에 약간의 물품을 추가하는 정도가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약간의 건조식품류, 말린 과일 등을 비축해 놓는 정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만약 의약품 처방전이 있다면 미리 구매해 놓을 것”을 권했다. 맥케이 교수는 이어 “이 같은 ‘준비’는 식료품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예를 들어 식료품 트럭 기사의 감염으로)를 대비하는 수준”이라며 “다만 이런 ‘준비’가 너무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전문가들의 조언과는 달리 일반 시민들의 바이러스 불안감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울워스에 따르면 일부 장기 보관이 가능한 식품류 및 가정용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이와 관련, 울워스 대변인은 “유통업체의 재고 수준은 양호하며, 공급회사와 긴밀하게 협력해 식료품 및 생활용품 공급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필수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현상은 콜스 슈퍼마켓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콜스 측 대변인은 “현재 일부 항박테리아 손 세정제 및 손 소독제 등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을 덜어주고자 매장 품목들의 진열 양을 늘렸으며, 향후 원활한 물품 공급을 위해 유통회사와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NSW 주 북부, 알디(Aldi) 슈퍼마켓의 한 직원은 손 세정제와 화장지를 진열대에 놓자마자 금세 동이 나는 목격담을 전하기도 했다.
천식환자는 필요 약품
사전 준비 ‘중요’
브리즈번 북부 교외의 GP인 마리아 불턴(Maria Boulton) 박사 또한 자신이 돌보는 환자나 친구들로부터 “많은 이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비축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불턴 박사는 “아직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천식을 앓는 환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경우 늘 사용해야 하는 흡입기와 관련 약품이 있으며, 이것들이 제대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독감 시즌이 다가오면서 환자들은 충분한 흡입기가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녀의 조언이다.
김지환 객원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