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 앨리스 스프링(Alics Springs)를 여행했던 한 미국인이 소장하고 있던 호주 원주민 예술가들의 다수 소장품이 반세기 만에 공개됐다. 이 소장품들은 최근 시드니에서 경매가 진행됐으며, 일부를 남부호주 박물관(South Australian Museum)이 구입했다. 사진은 남부호주 박물관의 구매 작품 중 하나인 에노스 나마찌라(Enos Namatjira)의 수채화. 사진 : Aboriginal Artists Agency Ltd
한 미국인의 소장품, 최근 남부호주(SA) 박물관이 17점 사들여
1900년대 중반, 호주 내륙 앨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은 호주 현대미술에 큰 이름을 남긴 다수 원주민 화가들의 활동 중심이었다. 이곳에서 약 120킬로미터 거리, 맥도넬 산맥(MacDonnell Ranges) 지대에 있는 허먼스버그(Hermannsburg)는 원주민 가운데 최초로 현대미술을 선보인 작가이자 호주 역사는 물론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알버트 나마찌라(Albert Namatjira)의 고향이며, 그의 아들 에노스 나마찌라(Enos Namatjira)가 아버지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내던 곳이었다. 또한 알버트의 명성에 버금가는 가브리엘 나마찌라(Gabriel Namatjira)도 이 지역 출신이다. 원주민 말로 은타리아(Ntaria)로 불리던 이곳은 1877년 독일 루터파 선교사가 원주민 공동체를 설립하면서 허먼스버그라는 지명으로 불려 왔다.
앨리스 스프링 호텔 앞에서의 루시 프레드릭슨(Lucy Fredrickson)씨와 가브리엘 나마짜라(Gabriel Namatjira)씨. 그녀는 이 호텔의 바(Bar)에서 일하며 인근 지역 다수의 원주민 예술가들과 친구가 됐고, 이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게 됐다. 사진 : Oscar Fredrickson Junior 제공
원주민 예술가의 작품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사연은...
1966년, 미국의 한 작은 도시 출신인 루시 프레드릭슨(Lucy Fredrickson)씨가 중년의 나이로 세계여행을 하던 중 앨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에 도착했을 당시, 이 지역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하고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호주 연방 총리는 해롤드 홀트(Harold Holt)였고, 노던 테러토리는 자치정부가 된 지 12년째였으며, NT의 원주민들이 합법적으로 주류를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지 2년이 되던 해였다.
앨리스 스피링 호텔의 동료와 함께 한 프레드릭슨씨. 1966년 촬영된 것이다. 사진 : Oscar Fredrickson Junior 제공
또한 이 지역 구린지(Gurindji) 부족 출신의 원주민 권리운동가 빈센트 링기아리(Vincent Lingiari)가 웨이브힐 목장(Wave Hill Cattle Station)에 고용된 구린지 부족민들에 대한 차별대우, 열악한 근로조건, 낮은 임금에 항의해 목장에서 이들을 데리고 나옴으로써 사회적 시선이 집중된 해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모험심이 강했던 프레드릭슨씨는 미 국무부에서 일했던 남편 오스카 프레드릭슨 시니어(Oscar Fredrickson Senior)와 함께 세계여행을 즐겼다.
그녀의 아들인 오스카 프레드릭슨 주니어(Oscar Fredrickson Junior)는 최근 호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1965년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다 시드니로 간 뒤, 앨리스 스프링의 아웃백 마을에서 개척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어머니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일자리까지 얻었다”고 말했다.
원주민 현대미술 작가로 명성을 쌓은 알버트 나마찌라(Albert Namatjira)의 장남 에노스(Enos Namitjira)의 스케치. 스케치 한 날짜를 보면 그가 14살 때 그린 것이다. 사진 : South Australian Museum
호텔 바에서 일하며
나마찌라 고향의 예술가들과 교분
오스카 프레드릭슨 주니어의 말처럼 프레드릭슨씨는 앨리스 스프링 호텔의 바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알버트 나마찌라의 장남을 비롯해 허먼스버그 출신의 원주민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었고, 이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게 됐다.
2년 뒤,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프레드릭슨씨는 이들의 수채화 작품을 갖고 갔으며, 이 작품들은 반세기 동안 남부 캘리포니아, 롱비치(Long Beach)에 있는 그녀의 집 침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버지 알버트 나마찌라(Albert Namatjira. 오른쪽)와 함께 한 에노스(왼쪽). 이들 부자는 종종 작품 여행을 함께 했다. 사진 : South Australian Museum
1998년, 87세를 일기로 프레드릭슨씨가 사망하자 가족들은 어머니가 모아놓은 미술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프레드릭슨 주니어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떨치기 직전인 3월 초, 이 작품들을 갖고 호주로 왔다. 어머니가 모아 놓았던 이 소장품은 갤러리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시드니의 한 미술품 거래회사를 통해 경매가 실시됐다.
라이카트(Leichhardt) 소재 미술품 경매회사 ‘Theodore Bruce Auctioneers and Valuers’ 관계자에 따르면 프레드릭슨 주니어가 내놓은 소장품들은 높은 관심을 끌어 3만4,500달러에 낙찰됐다.
침실 보관에서 박물관으로
프레드릭슨 주니어가 경매에 올린 작품들 중 17점은 ‘남부호주 박물관’(South Australian Museum)에서 구입했다.
동 박물관 인문학 책임자인 존 카티(John Carty) 교수는 “박물관이 구매한 작품들 가운데는 나마찌라 후손의 완성작만 있는 게 아니다”며 “가브리엘 나마찌라, 안타나시우스 티투스 렌카랑카(Athanasius Titus Renkaranka)의 정말 아름다운 그림은 물론 오일 페인팅의 실험적 작품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알버트 나마찌라와 비슷한 시대의 화가였다.
앨리스 스프링 소재 ‘Iltja Ntjarra Many Hands Art Centre’ 원주민 작가 허버트 파에룰짜(Hubert Pareroultja)씨. 그는 1960년대 허먼스버그를 기반으로 활동했단 원주민 작가들을 기억하고 있다. 프레드릭슨씨의 소장품 가운데는 그의 형 헬무트 파에룰짜(Helmut Pareroultja)의 작품도 있다. 사진 : 사진 : Japingka Aboriginal Art
알버트의 장남 에노스 나마찌라(Enos Namatjira)의 작품 또한 프레드릭슨 주니어의 소장품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남부호주 박물관이 구매했다.
카티 교수는 “우리는 에노스 나마찌라에 대해 조사했고, 우리 박물관 기록에서 그의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최근 경매에서 동 박물관이 구매한 수채화가 그것이다.
카티 교수는 “에노스 나마찌라는 1934년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14살의 소년이 아버지(알버트)와 함께 허먼스버그 주변 지역을 여행하면서 스케치한 그림들은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
‘술 한 잔’에 작품 팔기도
프레드릭슨씨의 소장품들이 약 50년 만에 공개된 것과 관련, 앨리스 스프링 소재 ‘Iltja Ntjarra Many Hands Art Centre’의 원주민 작가 허버트 파에룰짜(Hubert Pareroultja)씨는 “당시 앨리스 스프링 호텔에 모여들던 원주민 예술가들의 이미지에는 어두운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1966년, 앨리스 스프링 호텔의 바(Bar)에서 일하던 당시, 이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한 프레드릭슨(가운데)씨. 사진 : Oscar Fredrickson Junior 제공
프레드릭슨씨가 소장하게 된 그림들 중에는 그의 형 헬무트 파에룰짜(Helmut Pareroultja)의 작품도 있다. 허버트 파에룰짜씨에 따르면 자신의 형을 비롯해 다수의 원주민 예술가들은 술을 마시기 위해 프레드릭슨씨가 일하던 호텔에 가곤 했다. 가진 돈이 없었던 이들은 한 잔의 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팔았다.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넘기거나, 현장에서 그림 하나를 ‘후딱’ 그려주고 술을 얻어 마셨던 것이다.
이는 프레드릭슨씨가 원주민 작가들의 다수 그림을 소장하게 된 배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어머니의 소장품을 다시 호주로 전한 오스카 프레드릭슨 주니어는 “이 작품들을 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어 기쁘다”며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