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부문에서 호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올해 ‘마일스 프랭클린 문학상’(Miles Franklin Literary Award)은 원주민 작가 타라 준 윈치(Tara June Winch)씨에게 돌아갔다. 사진은 <The Yield>를 집필하던 와가와가(Wagga Wagga) 근교, ‘Booranga Writers' Retreat’에서의 윈치씨. 사진 : Bryan Charlton 제공
수상작 <The Yield>, ‘Wiradjuri’ 부족의 사랑-역사-언어에 대한 이야기
올해 ‘NSW Premier's Literary Awards’서도 ‘Book of the Year’ 등 차지
올해 ‘NSW Premier's Literary Awards’에서 <The Yield>로 ‘Book of the Year’ 등 3개 부문을 수상한 바 있는 여성 작가 타라 준 윈치(Tara June Winch)씨가 같은 작품으로 호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마일스 프랭클린 문학상’(Miles Franklin Literary Award)까지 차지했다.
이 문학상을 주관하는 ‘마일스 프랭클린 사업회’(Estate of Miles Franklin)는 지난 7월 17일(금) 올해 수상자로 <The Yield>의 작가 타라 윈치씨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마일스 플랭클린 문학상’은 1901년 출간, 호주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My Brilliant Career>의 작가 스텔라 마리아 사라 마일즈 프랭클린(Stella Maria Sarah Miles Franklin. 1879-1954)씨의 유언에 따라 제정돼 1957년 시작됐다. 상금 6만 달러를 수여하는 이 상은 최고의 문학적 가치와 함께 호주인의 삶을 다룬 작품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윈치씨는 NSW 주 내륙을 기반으로 살아온 호주 원주민 위라주리(Wiradjuri) 부족 후손으로, 원주민 작가의 이 문학상 수상은 <Too Much Lip>의 멜리사 루카센코(Melissa Lucashenko. 2019년 수상), <Benang>과 <That Deadman Dance>로 2000년과 2011년 이 상을 차지한 킴 스콧(Kim Scott) 작가에 이어 세 번째이자 작품으로는 네 번째 수상이다.
지난 2011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윈치씨는 수상자로 선정된 후 호주 국영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큰 상을 혼자서 받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며 “지금과 같은 경제적 불안정 시기에 이런 상은 최종 후보 작가들과 나누어야 한다(should be split down the longlist)는 생각”이라는 말로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그녀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긴 <The Yield>이 출간되었을 때 호주 문학계에서는 “심오하고 감동적이며 정교한 묘사로 그려낸, 한 부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서술”이라며 “이는 그들만의 것을 축하하는 일로 원주민 토착어, 이야기,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재조명이기도 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원주민 언어, 식민지 시대의 원주민들의 삶, 집단의 해체, 이들 거주지의 파괴되는 환경, 후세대들이 가진 트라우마 등을 다루고 있으며, 이 같은 소재는 지난해 수상자인 멜리사 루카센코의 <Too Much Lip>이 담고 있는 것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윈치씨는 또 “지난해 루카센코씨가 수상한 데 이어 올해 이 상을 차지한 것은 참으로 의외”라며 “이 문학상의 수상 주기를 보면 원주민 작가가 수상한 이후 수년이 지나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출간된 <The Yield>는 올해 4월 ‘NSW Premier's Literary Awards’에서 ‘Book of the Year’,‘Christina Stead Prize for Fiction’, ‘People's Choice Award’ 등 3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은 10년째 프랑스 북서부 항구도시 낭트(Nantes)에 체류하고 있는 윈치씨. 사진 : Tara June Winch 제공
원주민에 대한 존중 요구 담아
올해 ‘마일스 프랭클린 문학상’ 선정 과정에서는 1957년 첫 수여 이후 처음으로 2명의 원주민 작가 작품이 6편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윈치씨는 최종 후보작 중 하나인 원주민 작가 토니 버치(Tony Birch)씨의 <The White Girl>에 대해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우리(호주인) 모두 우리(원주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능한 미래를 위해 변화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그녀는 이를 ‘존중’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우리 부족(Wiradjuri) 언어로 ‘Yindyamarra’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말이다. 이는 서로 평등하다는 뜻이고 두 해안 사이를 오간다는 것이며 친절과 온화함, 존경심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 말은 초기 식민지 시절, 백인들의 원주민 지배 역사에서 원주민들에게 행한 과거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주 언어(영어)에서 이런 의미의 ‘존경’을 뜻하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don't go past the teeth) 빈말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윈치씨는 얼마 전 호주 대형 광업회사인 리오 틴토(Rio Tinto) 사가 서부호주 필바라(Pilbara, Western Australia) 지역, 오로지 ‘채굴’을 위해 무려 4만6천 년 전의 원주민 유적이 담긴 암석지대를 무분별하게 폭파시킨 일과 함께 과거 백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원주민 학살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호주인으로서 우리는(원주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소위 ‘공정하고 행운이 있는 국가’(so-called fair and lucky country)의 진정한 역사를 배우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호주의 축소판 그려내
<The Yield>는 지난 4월 ‘NSW Premier's Literary Awards’에서 ‘Book of the Year’(상금 $10,000), ‘Christina Stead Prize for Fiction’($40,000) 및 ‘People's Choice Award’ 등 3개 부문을 차지하며 타라 윈치 작가에게 큰 영광을 안겼다. 앞서 이 작품은 매년 2월 시상하는 호주 여성작가 대상의 문학상인 ‘Stella Prize’ 및 ‘Victorian Premier's Literary Awards’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The Yield>는 원주민 부족 장로인 알버트 곤디윈디(Albert Gondiwindi, ‘Poppy Albert’로 묘사)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던 알버트의 손녀 어거스트 곤디윈디(August Gondiwindi)는 할아버지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고향을 찾는다. 그녀의 고향은 과거 학살의 평원이라는 의미의 ‘Massacre Plains’로 불리는 곳이다.
알버트는 조만간 자신에게 죽음이 닥칠 것임을 알고 손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매서커 플레인(Massacre Plains)의 프로스퍼러스(Prosperous)에 있는 머럼비 강(Murrumby River) 언덕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죽음을 예견한 그는 자기 부족의 언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물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의 언어가 바람에 실려가는 것을 알았다.
10년간 집을 떠나 있던 어거스트는 장례를 위해 집으로 왔고,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 집을 떠났던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런 한편 그녀는 친척들의 따뜻한 사랑에 기분이 나아지면서도 고향 마을인 프로스퍼러스가 광산회사에 압류될 것이라는 소식에 씁쓸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녀는 고향과 부족을 떠났던 심적 부담을 덜어내고자 부족의 토지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할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쓰고 있던 그들 부족의 사전(dictionary)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목소리, 부족 사람들의 이야기, 강의 비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머럼비 강’, 500에이커에 달하는 ‘매서커 플레인’ 일대는 작가가 호주 역사의 지층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공간이며, 이는 호주 전체를 의미한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
<The Yield>의 이야기 설정은 작가 자신의 고향인 NSW 주 북서부 내륙, 위라주리 부족의 터전에 대한 경험이기도 하다.
윈치씨는 시드니 남부의 해안도시 울릉공(Wollongong) 인근에서 성장했다. 언젠가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친척을 만나고자 지금의 라이트닝 릿지(Lightning Ridge) 지역을 방문했다.
윈치씨는 부족의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내가 가보지 않은 곳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Penguin Books’에서 출간한 소설 <The Yield>의 표지. 사진 : Penguin Books
이 작품은 윈치씨가 작품을 구상한 뒤 거의 10년에 걸쳐 완성한 소설이다. 작품을 쓰기 위해 그녀는 위라주리 부족의 기반인 라이트닝 릿지 인근 지역을 자주 방문했다. 울릉공 인근 또는 몇 시간이 걸리는 내륙 먼 지역의 농장까지 찾아가곤 했다. 농장주나 인부들로부터 자신이 구상한 작품 속 농사일에 대한 취재를 위해서였다. 윈치씨는 “이 소설에는 농사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너무 미흡했다”고 말했다. 구상과 관련한 취재, 위라주리 부족의 언어 등에 대한 자료 수집을 마친 후 그녀는 NSW 주 남서부 내륙 도시 와가와가(Wagga Wagga) 근교의 ‘Booranga Writers' Retreat’에서 이 작품 집필에 몰두했다.
언어가 주는 위안
윈치씨가 <The Yield>를 구상한 것은 2004년, 그녀의 데뷔작인 <Swallow the Air>를 쓰던 때였다. 당시 그녀는 위라주리 부족의 터전에서 열린 언어 워크숍에 참석한 바 있다. 그때 그녀는 위라주리 부족 장로인 스탠리 버나드 그란트 시니어(Stanley Vernard Grant, Sr.) 삼촌과 존 러더(John Rudder) 박사가 편찬한 위라주리 부족 언어 사전 복사본을 얻었다.
윈치씨는 위라주리 부족 언어를 접한 그 때를 “매우 뜻 깊은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 언어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하나의 문화적 연결고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게 그녀의 회상이다.
이 언어는 윈치씨에게 ‘원주민들의 훌륭한 재활도구’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 호주 연방 및 각 주 정부가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혈 아이들을 ‘호주화 또는 백인화’한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부모에게서 강제로 분리해 백인 가정에 입양시킨 정책으로, 지난 1905년부터 1969년까지 지속됐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를 위한 치유의 도구로써, 그리고 그들의 가족-그들의 땅과 다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호주의 주류사회가 흑인(원주민)의 역사에 관여한 방식은 정말 불편한 부분이 많다. 백인과 원주민은 결코 공동체가 되지 못했다.” 그러면서 윈치씨는 “원주민 언어는 백인들을 이해시키는 정말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The Yield>를 구상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의도가 담겨 있다.
윈치씨는 “모든 호주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원주민 언어를 공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분명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며 상호 이해와 소속감을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새 작품 집필 중
10년째 프랑스 북서부 항구도시 낭트(Nantes)에 거주하고 있는 윈치씨는 현재 스위스 알프스(Swiss Alps)에 머물며 <The Yield>다음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그녀는 새 작품에 대해 “백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야기이지만 ‘인종문제’에 대한 주제”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 <Swallow the Air>(University of Queensland 출판국)을 선보인 윈치씨는 10년 만에 두 번째 소설 <After the Carnage>(University of Queensland 출판국)를, 3년 뒤인 지난해 <The Yield>(Penguin Books)를 출간했다.
그녀는 “앞으로 보다 생산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내가 소설을 내놓지 못한 10년의 시간을 앞으로는 갖지 않을 것”이라는 윈치씨는 “지난 10년(2006년-2016년)간 갖지 못했던 시간이 있고 책상이 생겼으며 재정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윈치씨는 전업 작가가 느끼는 재정적 불안감을 잘 알고 있다. 스물 두 살 당시,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서빙과 주방 설거지 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첫 소설을 출간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녀는 오랜 시간 자질구레한 일로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다.
“글쓰기에 있어 가장 창의적이지 못했던 시기는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이지 않던 시기였다. 하지만 가난해지는 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작가이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이제 보다 생산적인 글쓰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시기를 겪었기 때문일 터이다.
올해 Miles Franklin Award 최종 후보에 오른 6편의 소설들.
▲ 2020 Miles Franklin Literary Award 최종 후보작/작가
-The Yield / Tara June Winch
-The White Girl / Tony Birch
-Exploded View / Carrie Tiffany
-No One / John Hughes
-Islands / Peggy Frew
-The Returns / Philip Salom
▲ Miles Franklin Literary Award 핵심 설명
-1957년 제정, 그해 첫 시상. 수상작은 패트릭 화이트(Patrick White)의 <Voss>
-호주 여성 작가 스텔라 마일스 프랭클린(Stella Maria Sarah Miles Franklin)의 유언에 따라 제정
-선정 기준은 ‘호주인의 삶을 제시하는 주제로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함
-역대 수상자 중 유명 인사 : Patrick White(1973년 호주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Ruth Park, Thea Astley, Tim Winton, Peter Carey, David Ireland
-올해 심사위원단 : Richard Neville(NSW 주립도서관장), Bernadette Brennan 박사(작가 겸 문학평론가), Murray Waldren(전국 일간지 ‘The Australian’ 문학전문 기자), Melinda Harvey 박사(작가 겸 문학평론가), Lindy Jones 서점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