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최악의 사건인 ‘Black Summer’ 산불로 호주 야생동물이 입은 피해 규모를 알아보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호주 각 대학 소속 과학자 10명이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30억 마리의 동물이 피해를 입었다. 사진 : ABC 방송
‘WWF Australia’ 조사, 파충류 피해 가장 커... 일부 동물종, 멸종위기도
지난여름 무려 7개월 여 이어진 산불은 호주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 내내 이어진 가뭄 속에서 각 지역은 급속도로 번지는 산불에 속수무책이었다.
호주 사상 최악의 산불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Black Summer’로 명명된 당시 화재로 현재까지 집계된 인명피해는 사망 33명이며 3천 채의 가옥 손실, 1천200만 헥타르에 달하는 삼림이 초토화됐다. 여기에다 호주 부시(bush)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 또한 수억 마리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까지 ‘Black Summer’에 대한 사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산불로 호주에서는 약 3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불에 타 죽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고 지난 7월 28일(화) 호주 공영 ABC 방송이 관련 연구 자료를 인용해 전했다.
이 조사는 호주 세계자연기금(WWF Australia)의 의뢰로 관련 전문가 팀이 실시한 것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 야생동물들에게 있어 지난여름 산불은 최악의 단일 사건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이다. 또한 일부 동물종은 이 산불로 인해 멸종에 처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사를 주도한 시드니대학교 크리스 딕만(Chris Dickman) 교수는 “한 번의 산불로 이렇게 많은 수의 동물이 피해를 입은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Black Summer’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던 지난 1월, 딕만 교수는 지난해 2018년 7월 시작된 산불로 1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사망하거나 서식지를 옮겼을 것으로 추산함으로써 그 엄청난 피해 상황이 전 세계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바 있다.
당시 추정에 대해 딕만 교수는 “NSW 주에서의 산불로 인한 피해 동물 및 특정 동물종에 국한된 수치하고 말했다.
딕만 교수 연구팀은 이번 WWF Australia의 의뢰로 산불 피해가 특히 극심했던 빅토리아(Victoria) 북동부, 이스트 깁스랜드 지역(East Gippsland region), 남부호주 캥거루 아일랜드(Kangaroo Island, South Australia), 그리고 지난 1월 이후 추가로 산불이 확대된 NSW 주 지역의 피해 상황을 업데이트 했으며, 피해 동물 또한 박쥐와 개구리 등 더 많은 종을 분석했다.
딕만 교수는 거북이나 물고기를 포함한 동물들의 밀도에 대한 기초 데이터가 부족하기에 이번에 추정한 수치 또한 제한적인 자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딕만 교수는 “이번 조사를 통해 제시한 것은 최소한의 추정치”라며 “우리는 그 수(피해동물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 동물은 파충류
호주 전국 각 대학의 과학자 10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지난여름 산불이 포유류, 파충류, 조류 및 개구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각 동물 수백만 마리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분석됐다. 동물종별로 보면 △포유류 1억4,300만 마리, △파충류 24억6천만 마리, △조류 1억8천만 마리, 그리고 5,100만 마리의 개구리가 산불로 죽었다.
연구팀이 계산한 이 수치는 산불 피해 지역의 동물 밀도를 추산하고 이를 피해 면적에 곱한 것이다.
‘Black Summer’ 산불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 조사는 ‘WWF Australia’이 의뢰해 진행된 것으로, 이 조사에 참여한 호주 전국 대학의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산불위험이 더욱 높아지는 상황에서 지난여름의 참혹한 결과는 ‘미래에 대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사진 : Gena Dray 제공
연구팀은 얼마나 많은 동물이 산불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서식지를 옮겼는지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점을 밝혔다. 딕만 교수는 산불 지역의 동물 90% 이상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딕만 교수는 사망 동물의 수를 알아보기 위해 산불 발생 전후의 각 면적 당 개체수를 파악한 자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잠재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에 특정 지역의 동물 개체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먹이사슬의 하단에 있는 동물의 경우 야생 고양이나 여우 등 포식자에 발견되어 잡혀 먹히거나 또는 먹이가 부족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몇 주 또는 몇 개월에 걸쳐 이루어지기에 서식동물 수를 파악하는 게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시드니대학교 릴리 반 이든(Lily van Eeden) 박사는 “산불지역 밖의 동물 또한 그 영향으로 죽었을 수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산불이 발생한 곳에서 떨어져 있더라도 화상으로 죽은 동물 또한 상당한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런 한편 딕만 교수는 ‘Black Summer’ 산불이 일부 동물종을 멸종위기로 내몰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 변화에 따른 피해와 관련,
장기적 기초 연구 필요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 반 이든 박사는 “호주에서 이처럼 많은 동물이 영향을 받았던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Black Summer’ 산불만큼 야생동물에 영향을 준 사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동물에 대한 대량 학살이라는 측면에서 ‘Black Summer’ 산불 사건과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딕슨 교수는 야생동물이 피해를 입은 다른 유형의 재앙으로 1989년의 ‘Exxon Valdez’ 기름 유출, 2010년 ‘Deepwater Horizon’ 기름 유출 사고와 비교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Exxon Valdez’ 사건은 1989년 3월 24일 엑손해운(Exxon Shipping Company) 소속 유조선‘ 엑손 발데즈’ 호가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 롱비치(Long Beach, California)로 향하던 중 프린스 윌리엄 해협(Prince William Sound)에서 기름이 유출된 사건이다. 이 사고로 며칠 동안 원유 1,080만 갤런(3,7000톤)이 바다로 쏟아졌으며, 이는 환경피해 측면에서 세계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로 꼽힌다.
지난여름 산불로 검게 변한 시드니 남부, 서던 하일랜드(Southern Highlands)의 삼림지대. 연구원들은 전 세계적으로 한 번의 사건이 ‘Black Summer’ 산불처럼 야생동물에 막대한 피해를 준 사례는 없다고 말한다. 사진 : ABC 방송
‘Deepwater Horizon’(Gulf of Mexico oil spill로도 불림) 또한 기름 유출 사고로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 만에서 석유시추 시설이 폭발함에 따라 이후 5개월 동안 대략 7억 7천만 리터의 원유가 유출된 사고이다.
딕만 교수는 “이 사건들로 인해 야생동물이 입은 피해 규모를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 수치 면에서는 ‘Black Summer’ 산불과 비슷한, 엄청난 재앙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과학자는 이 같은 사건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도 있는 기초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딕만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이 같은 기초 조사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이 축소되어 연구는 물론 장기적인 감시 프로젝트 또한 진행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WWF Australia’의 더모트 오고먼(Dermot O'Gorman) CEO는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산불의 미래와 치명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창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딕만 교수는 “우리는 지난여름, 우리가 본 산불보다 더 큰 재앙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기후변화에 악마를 풀어놓은 것 같다”는 말로 ‘Black Summer’ 산불을 설명하면서 “이런 재앙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경고했다.
한편 연구팀은 이번 보고서에 대해 “동료 연구진의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발표된 것으로, 부분적으로는 해당 분야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딕만 교수는 “추정치를 개선하는 방법이 있다면 피해 수치는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전반적으로 피해 규모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