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는 3년째 힘겨운 생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과거 인류 생존에 위협이 되었던 재앙들을 언급하며 이런 역사는 현 시점에서 새로운 관점을 준다고 조언한다. 사진은 유럽 인구의 약 3분 1을 사망에 이르게 한 페스트 질병 당시 상황을 묘사한 바로크 시대의 플랑드르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 미키엘 스위츠(Michiel Sweerts)의 ‘Plague in an Ancient City’. 사진 : Wikimedia
아이슬란드 화산 대폭발 후 기후변화→대기근→흑사병 출현→최강 동로마 제국 멸망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관점을 얻는 것”
세계적 전염병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후 전 세계는 질병의 무서움을 혹독하게 겪어내고 있다. 아직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간을 괴롭히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인간에 의해 크게 훼손된 환경이 더욱 지독한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팬데믹이 선포(2020년 3월 11일)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서는 600만 명 이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런 가운데서 수많은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전염병을 인정하면서 ‘Living with COVID’로 가는 상황에서 유럽에서는 전쟁이 벌어졌다. 이런 점을 보면, “20세기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한 학자는 “역사를 되돌아보면, 실제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COVID-19 팬데믹이 이어지는 현 시점에 비참함을 느낀다면 여러분이 536년에 살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람들을 다독인 이는 호주가톨릭대학교(Australian Catholic University)에서 중세 및 초기 현대사를 연구하는 마일스 패턴든(Miles Pattenden) 박사이다.
인류 생존의 최악의 해
패턴든 박사는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꽤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은 물론 많은 역사가들이 인류 생존에 있어 최악의 해로 꼽은 536년도와 비교할 때 현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닌 일’(a walk in the park)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ABC 전국 라디오(RN)의 ‘Counterpoint’ 프로그램에서 “그때(서기 536년) 적도 부근이나 아이슬란드에서 최소 한 번에서 세 차례의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다”며 “대기 중으로 엄청난 화산재가 뿜어져 나와 태양을 가렸다”고 설명했다. 당시의 상황을 언급한 역사 자료를 보면, 유럽 및 중국에서 기온이 크게 떨어졌고 한여름에도 눈이 내렸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2천여 년의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해로 서기 536년을 꼽는다. 당시의 재앙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말 본격화됐으며, 많은 연구를 통해 아이슬란드에서의 대규모 화산 폭발과 엄청난 화산재가 태양을 가려 기후변화, 이상기온을 초래했고, 이로 인해 대기근과 질병이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사진은 536년 발생한 화산 대폭발로 인해 최악의 해가 되었음을 설명하는 활화산 이미지. 사진 : eologyHub의 유투브 동영상 캡쳐
패턴든 박사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동로마 제국의 수도, 지금의 터키)의 비잔틴 학자 프로코피우스(Procopius)를 비롯해 당시 일부 학자가 남긴 기록을 언급하면서, “이를 보면, ‘태양은 1년 내내 달처럼 밝기가 없는 빛이었다’고 쓰여 있다”고 말했다.
2천 년 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살기 어려웠던 해가 536년이었다는 연구는 지난 2018년 미 하버드 및 메인대학교 연구팀의 공동 연구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사실 역사, 고고학 등 여러 학계에서 서기 540년 무렵의 이상 현상에 대한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대기근과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시기였기에 그 원인을 찾으려는 각 학계의 노력이 1990년대부터 본격화했던 것이다.
그런 노력에 따라 1990년대에는 나무의 나이테를 근거로 해 ‘540년에 지구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는 게 밝혀졌고 2015년에는 그린란드 및 남극의 빙하를 근거로 ‘당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대기 중에 형성된 에어로졸 막이 태양 빛을 차단, 지구 온도를 떨어뜨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버드와 메인대 연구팀의 2018년 연구는 스위스에서 채취한 빙하 코어를 근거로 한 것으로, 연구팀은 그 안에 산소 수소 온실기체 화산재 금속원소 먼지 등을 담고 있음을 알아냈으며 이 가운데 화산암 입자가 아이슬란드에서 날아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정황들을 기반으로 연구팀은 “536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폭발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연평균 기온이 1.5도에서 2.5도까지 떨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이 같은 기후변화가 농업생산은 물론 보건, 환경에 영향을 미쳐 대기근과 질병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호주가톨릭대학교(Australian Catholic University) 중세사 연구 학자인 마일스 패턴든(Miles Pattenden) 박사는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아메리카 도착과 이들이 옮긴 질병은 엄청난 수의 이 지역 원주민들을 사망케 한 '최악의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사진은 아메리칸 원주민과 천연두에 의한 사망을 묘사한 삽화.
미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지난 2018년 11월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발표됐을 당시 한국의 관련 매체인 ‘사이언스 타임스’는 ‘인간 역사상 최악의 해는 536년’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소개했다.
‘지구 곳곳에는 재난이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한여름에 눈이 쏟아졌고, 농작물이 얼어 죽었으며,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유럽의 아일랜드에서도 536년부터 539년까지 대기근이 이어졌다. 빵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러다 541년에는 흑사병의 일종인 선페스트(bubonic plague)가 로마 치하에 있던 이집트 북동부의 펠루시움을 강타했다. 유스티니안 역병(Plague of Justinian)이라 불리는 이 흑사병은 이후 급속히 확산돼 동로마제국 절반에 이르는 인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로 인해 동로마제국의 세가 급격히 약해지고, 얼마 안 있어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이후 한동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패턴든 박사도 “화산 활동이 전체 사건을 연쇄적으로 촉발했다”고 말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전 세계 농작물 생산이 실패했다. 그 시기 아일랜드의 한 기록에는 ‘빵이 부족했음’(a failure of bread)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빵과 같은 필수 식량 부족은 심각한 기근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사망했고, 그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지역갈등도 격화됐다. 여기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해도, 이번에는 질병에 맞닥뜨려야 했다. 이미 여러 질병에 취약해진 상태에서.
536년의 사건은 인류에게 있어 끔찍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패턴든 박사는 “문제에는 일종의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 특성 유지를 위해 입력 처리 출력 입력 등의 순으로 결과가 자동적으로 재투입되도록 설정된 순환 회로)가 있다”면서 “현대 이전 시기의 역사를 보면, 한 가지 종류의 재앙이 발생하면 다른 재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Saint Sebastian)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Plague of Justinian)이라 불리기도 한 페스트에 의해 사람들이 죽어가자 예수님께 이들을 매장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간청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같은 성인의 이름을 자신의 예명으로 사용했던 네덜란드 화가 호세 리페린시(Josse Lieferinxe)의 작품이다. 사진 : Wikimedia
이어 그는 “우리는 유라시아 역사상 최초로 선페스트(bubonic plague. 또는 림프절 페스트) 중 하나가 541년 지중해 지역에 번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잔틴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이름을 따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Justinian Plague, Plague of Justinian)는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 수많은 이들을 사망케 했고 정치,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다.
비잔틴 학자 프로코피우스는 당시 그의 도시를 휩쓴 이 전염병에 대해 ‘피를 토하는 사람들, 시체 더미, 죽음의 악취’라며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일련의 재난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패턴든 박사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536년 여름, 당신이 근심 없이 사는 평범한 18세였다면, 어린 시절의 기억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80년에서 100년의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당시 시대수명은 30~35년 정도였기에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좋지 않은 시기는 많았다
인류 역사에서 서기 536년은 아주 좋지 않은 해로 인식되지만 패턴든 박사는 “역사를 보면 ‘결코 살고 싶지 않은 시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14세기에 발생한 선페스트는 특히 심각했다. ‘Black Death’(흑사병)라 불리기도 하는 이 질병에 대해 패턴든 박사는 “지난 천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에서 발생한 최악의 재앙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며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거주민이 이 병으로 사망해 마을 자체가 사라진 곳도 많다. 영국의 수도사 토마스 월싱엄(Thomas Walsingham)은 당시 상황에 대해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도시는 주민들의 죽음으로 터 비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주검들이 너무 많아 모두 묻을 수가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스페인 독감(Spain flu)이 발생했던 1918년 미국 캔자스 캠프 펀스턴(Camp Funston, Kansas)에 있는 응급 병원. 한 병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 분대에서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12명 가운데 7명이 쓰러졌다"고 회상했다. 사진 : 미국 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
패턴든 박사는 “역사의 많은 부분을 보면, 인류가 전염병과 같은 질병을 겪었을 때 사망자 비율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1492년 아메리카에 도착하면서 이 지역에 번진 질병 또한 ‘최악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원주민 90%가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패턴든 박사는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의 경우, 때로는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시기에 기록된 문서 외에도 나무의 나이테(tree rings)를 근거로 특정 시기의 기후를 확인하는 수목기후학(dendroclimatology) 등의 과학적 도구가 있다.
그에 따르면 나무가 더 많이 자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습한 날씨와 따뜻한 기온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기후재앙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나무의 나이테 성장이 아주 많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패턴든 박사는 이어 케임브리지대학교 환경시스템 분석 학자 울프 벤트겐(Ulf Büntgen) 교수의 연구를 언급하면서 “과학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536년과 이후 몇 년 동안 발생했던 화산폭발의 증거를 찾았다”고 말했다.
하버드대학교 역사가이자 고고학자인 마이클 매코맥(Michael McCormick), 메인대학교 빙하학자인 폴 마예프스키(Paul Mayewski) 교수가 스위스의 얼음 코어를 분석, 화산암 입자를 확인한 것도 바로 이 현대적 도구 덕분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for the better’로 바뀌었다
패턴든 박사는 “이 같은 논의(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돌아보는 것)는 오늘날 인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필요한 관점을 얻는 것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호주가톨릭대학교(Australian Catholic University)에서 중세 및 초기 현대사를 연구하는 마일스 패턴든(Miles Pattenden. 사진) 박사. 역사적으로 많은 시간과 재앙이 있었지만 536년의 재앙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사진 : Australian Catholic University
그는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었었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대부분은 잊어버린 것 같다”며 “2,000년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기대수명이 20년에서 30년 또는 35년이었음을 감안하면 현재의 우리는 크게 연장된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패턴든 박사는 “또한 아주 최근(역사적 용어로)까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어 갔는지를 보면 상당히 충격적”이라면서 “이런 연구를 하다 보면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엄밀히 말해 얼마나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 왔는지를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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