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들의 가장 일반적인 기호음료인 커피는 그 어느 음료보다 앞선 소비량을 보인다. 최대 무역 물량에서도 커피는 원유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이탈리아 나폴리(Naples)의 한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들(사진).
여행 작가의 기준으로 본 전 세계 유명 커피는...
몸살 기운이 느껴지거나 할 때, 호주의 전통적인 치료법은 ‘한 잔의 티와 편안한 잠자리’였다. 그러나 이는 ‘한 잔의 커피로 활기를’이라는 말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19세기를 통틀어 호주인들을 사로잡은 음료, 기품 있는 여성들이 약간 검은 빛깔이 나는 주석 머그잔에 즐겨 마시던 차(tea)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 원인으로는 미국의 제국주의 문화 탓도 있지만 또한 이탈리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1955년 호주에 에스프레소(espresso) 커피머신이 소개되면서 사람들은 차보다 더 자극적인 커피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로 선포된 이후 반세기 이상, 호주의 농장 노동자들이 매주 식료품을 배급받을 때 정량으로 외치는 구호가 있었는데, 바로 ‘Ten, Ten, Two and a Quarter’라는 구호였다. 10파운드의 밀가루와 역시 10파운드의 고기, 2파운드의 설탕, 그리고 4분의 1파운드의 차(tea)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이 구호 내용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차 소비를 보면, 19세기 모든 호주인들은 1년에 6킬로그램의 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03년, 호주를 방문한 영국의 방송해설가인 퍼시 로우랜드(Percy Rowland)는 ‘자비하신 하느님은 호주에 차가 잘 자랄 수 있게 되기까지 호주의 발견을 지연시켰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지금도 호주인들 중에는 오전 breaktime(업무 중간에 차나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커피 대신 홍차에 적당량의 우유를 넣어 즐기는 이들이 많다.
호주인들의 기호음료 역사에서 결정적인 해는 1979년이다. 이 해에 호주인들이 한 해에 마시는 음료 가운데 커피 소비가 차 소비와 같아진 것으로, 전체 호주 1인당 1.7킬로그램의 차와 역시 1.7킬로그램의 커피를 소비했다. 이후 커피는 빠르게 이 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더욱 폭넓게 소비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이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커피의 발견은 세 가지 설이 있는데, 아무튼 처음 발견 당시 사람들은 커피 열매를 그대로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맛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이후 물을 넣어 마시거나 약처럼 달여 마시기도 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무역거래 상위를 차지하는 커피는 전 세계인의 기호음료가 되었으며, 각 나라마다 다양한 이름의 커피를 만들어 즐기고 있다.
벤 그라운드워터(Ben Groundwater)씨는 호주를 기반으로 전 세계 다양한 여행지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추한 부분들을 나름의 독특한 글쓰기로 보여주는 여행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호주 여행작가회(Australian Society of Travel Writers)에서 지난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올해의 여행 작가’(Travel Writer of the Year)로 선정된 그는 최근 시드니 모닝 헤럴드 여행 섹션에 자신의 기준으로 전 세계 10개의 커피를 소개,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 달 전, 같은 섹션에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빼어난 호주의 아름다운 해변(beach) 10곳을 선정, 소개하기도 했다(본지 1178호 참조).
맛을 느끼는 것은 개인의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의 영역이지만 특정 커피에 대해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면 이는 충분히 보편성을 얻을 수 있을 터. 과연 그가 자신의 기준으로 선정한 커피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본다.
1. 에스프레소(Espresso), 이탈리아
이탈리아 ‘국민 음료’라 할 에스트레소는 대개 ‘데미타세’(demitasse)라는 작은 잔에 담아 마신다.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이탈리아 커피로, 곱게 갈아 압축한 원두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낸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커피이며, 대개 ‘데미타세’(demitasse)라는 작은 잔에 담아 마신다. 높은 압력으로 짧은 시간에 커피를 추출하므로 카페인 양이 적고 커피 자체의 순수한 맛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다. 마시는 사람에 따라 시럽이나 유류, 초콜릿을 넣기도 하는데, 벤 그라운드워터씨는 에스프레소를 설명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는 전통적으로 바(bar)에 서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이 소비된다”고 언급했다.
참고로, 에스프레소는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순수한 에스프레소를 ‘카페 에스프레소’라고 하며 ‘솔로’는 에스프레소 1잔, ‘도피오’는 2잔 분량을 말한다. ‘룽고’는 에스프레소를 오래 뽑는 것을 말하며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는 가장 진하게 추출되는 순간 뽑아낸 커피로 ‘카페 에스프레소’보다 더 진하다.
한편 에스프레소 커피를 뽑으면 ‘크레마’(crema)라는 옅은 갈색의 크림층이 생기는데, 이는 커피 원두에 포함된 오일이 증기에 노출되어 표면 위로 떠오른 것으로 커피 향을 담고 있다. 따라서 ‘크레마’의 정도로 에스프레소가 잘 추출되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는 먼저 향을 먼저 느끼고 크레마를 맛 본 다음 두 번에 나누어 마시거나 단번에 마시는 게 에스프레소를 맛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2 카페수아다(Ca Phe Sua Da),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카페수아다’(Ca Phe Sua Da) 커피. 진하게 추출한 커피에 얼음덩어리를 넣어 마시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커피 생산국 하면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또는 아프리카라고 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국가별로 볼 때 베트남은 전 세계 커피 생산 두 번째 국가로, 다양한 종류의 쌀국수만큼이나 사실 베트남 커피도 유명하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카페수아다’(Ca Phe Sua Da)라는 이름의 커피. 벤 그라운드워터씨는 “미니 퍼컬레이터(percolator. 가운데 있는 관으로 끓는 물이 올라가서 위에 있는 커피 가루 속으로 들어가 커피가 삼출되게 하는 방식의 커피 끓이는 기구)에 뜨거운 물을 부어 추출한 커피에 얼음덩어리를 넣어 마시자 금세 기운을 차리게 한다”고 묘사했다. 베트남 현지의 카페에서 ‘카페수아다’를 시키면 아예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주문한 사람에게 얼음이 담긴 컵과 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컵을 따로 주어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3. 카피(Kaapi), 남부 인도
인도 남부지역에서 재배된 커피로 추출한 ‘카피’(Kaapi). 진하게 추출하여 거품이 인 우유를 넣어 마시며, 둘레가 좁고 깊은 컵에 주로 담아 마신다.
인도 남부는 습한 남서계절풍의 열대 몬순형 기후로 커피 재배에 적합한 강수량과 배수가 잘 되는 비옥한 고원지대를 갖추고 있다. 바로 이런 습한 계절풍을 이용해 커피를 건조시킨 몬순커피(Monsooned coffee)가 유명한데, 실질적으로 인도의 대표적 커피라 할 수 있다. 독특한 향미를 가지고 있으며 강하고 깊은 쓴맛으로 대개는 에스프레소 블렌딩 용도로 사용된다. 대개 필터를 사용해 커피를 추출한 다음 우유 거품을 넣어 마시는데, 인도 남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직접 이 커피를 즐겨 마셨던 벤 그라운드워터씨는 “일단 맛있다”라고 표현했다.
4. 누스 누스(Nous-Nous), 모로코
커피와 우유를 절반씩 넣은 모로코 커피 ‘누스-누스’(Nous-Nous). 강한 머피향이 한결 부드럽고 마신 후에도 편안함을 준다.
저녁시간, 하루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지 않는 이상 대개는 펍(pub)이나 바(bar)에서 한잔 하는 것이 전 세계 직장인들의 보편적인 여흥이다. 하지만 모로코에서는 이런 분위기보다 카페가 더 활기 넘친다. 하루 일을 마친 이들이 카페에 모여 맥주보다는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인 듯한데, 그러다보니 모로코 스타일의 커피도 각국 사람들이 즐기는 형태가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커피가 ‘누스 누스’(Nous-Nous)이다. 아랍어로 ‘반-반’(half-half)이라는 의미. 그야말로 커피 반, 우유 반 들어간 커피이다. 프랑스의 카페처럼 모로코에도 옥외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은 카페들이 즐비한데, 그만큼 커피 문화가 잘 자리잡혀 있음을 의미하는 것. 그라운드워터씨는 ‘누스 누스’에 대해 “피콜로 라테(piccolo latte)와 유사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5. 카페 코르타도(Cafe Cortado),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카페 코르타도’(Cafe Cortado). 이들은 아침에 식사용 빵인 ‘메디알루나’(medialuna. 파리크라상과 유사하다)와 함께 이 커피를 마신다.
남미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커피는 단연 ‘카페 코르타도’(Cafe Cortado)이다. 아침 시간,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카페 코르타도에 식사용 빵으로 파리크라상과 유사한 모양의 ‘메디알루나’(medialuna) 빵을 먹는 것이다. 출근에 쫓겨야 할 시간, 도시 거리의 카페는 대부분 이렇게 아침을 먹는 이들로 가득 차곤 한다. ‘카페 코르타도’는 진하게 추출한 뜨거운 커피에 우유 거품을 작은 컵에 담아 마시는 커피이다. 그라운트워터씨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의 아침, 카페에서 느긋하게 카페 코르타도와 메디알루나로 아침을 먹는 이들을 보며 “우리네 삶이 대개 그러하듯, BA(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바쁘게 쫓길 필요는 없다”고, 마치 득도(?)의 경지에 이른 여행자처럼 결론 냈다.
6. 이포 와이트커피(Ipoh White Coffee),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이포(Ipho) 지방에서 나는 커피로 만들어낸 ‘이포 와이트 커피’(Ipoh White Coffee). 크림이나 우유를 많이 넣어 ‘와이트’(White)라는 이름이 붙은 이 커피는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말레이시아의 가장 대중적 커피로 ‘이포’(Ipho)는 말레이시아 커피 생산지이다. ‘이포 와이트 커피’(Ipoh White Coffee)는 바로 이 지역에서 시작된 커피 스타일로, 원두를 팜 오일 마저린과 함께 커다란 솥에서 직접 볶아 만들어낸다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맛이 특징이며, 크림 또는 우유를 많이 넣어 마시기 때문에 ‘와이트’(White)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라운드워터씨는 “말레이시아의 어느 커피숍을 가든 뛰어난 맛의 이포 와이트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언급했다.
7. 플랫와이트(Flat White), 호주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플랫와이트(Falt White)는 호주, 뉴질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커피이다.
전 세계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커피로, 사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선보인 커피이자 가장 즐겨 마시는 커피이다. 간단하게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것으로 보면 된다. 라떼(latte)처럼 우유를 듬뿍 넣지 않아 커피 향이 그대로 유지되며 또한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없애 부드럽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플랫와이트’에 가루로 된 초콜릿을 뿌리거나 시럽을 넣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플랫와이트’ 본연의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플랫와이트’에 대해 ‘오리지널은 뉴질랜드’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벤 그라운드워터씨(그는 호주 사람이다)는 이에 대해 “키위(Kiwis)들이 자기네 것이라 우기지만 신경 쓸 것 없잖아!”(Forget about the Kiwis trying to claim it, this thing is ours)라고 잘라 말했다.
8. 세레모니얼 커피(Ceremonial Coffee),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커피는 매우 중요한 음료로 친구나 손님을 접대하는 기반으로 동양의 차 문화처럼 소중한 의식으로 자리잡은 에티오피아 문화 중 하나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다(茶) 문화로 보면 될 듯하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커피는 애초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는 게 일반화되어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커피는 친구가 찾아오거나 어떤 의식을 행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접대 또는 행사용으로, 에티오피아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손님이 오면 즉석 차를 대접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손님 앞에서 커피 원두를 볶고 물을 끓여 커피를 추출, 손님에게 내놓는다. 그라운드워터씨는 에티오피아에서 이 커피를 마신 후 “(커피 맛이) 완벽하다”면서 “커피를 추출하고 만들어내는 그 의식에 감명받았다”고 썼다.
9. 카페 콘레체(Cafe Con Leche), 콜롬비아
전 세계 커피 생산의 12%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 콜롬비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커피이다. 영국의 밀크커피, 이탈리아의 카레 라테와 같이 커피에 우유를 많이 섞은 것이다.
에스프레소처럼 강한 맛이 나는 ‘띤또’가 가장 유명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전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커피 왕국’ 콜롬비아의 ‘카페 콘레체’는 사탕수수 주스와 함께 전 국민의 보편적 음료이기도 하다. 커피에 우유를 반반씩 또는 커피의 3분 1 정도 우유를 넣어 마시는 것으로 영국의 밀크커피, 이탈리아의 카페 라테와 같은, 콜롬비아 사람들이 즐기는 커피의 한 종류이다. 물론 스페인에서도 ‘콘레체’를 즐겨 마신다.
10. 카베(Kahve), 터키
터키 커피인 ‘카베’(Kahve)는 곱게 분쇄한 커피가루를 ‘제즈베’(Cezve)라는 커피 주전자(사진)에 담아 물을 넣고 끓여 마시는 커피로 커피의 깊은 향을 느낄 수 있다.
커피가 맨 처음 발견된 것은 에티오피아라는 게 정설이다. 이것이 인근 예멘으로 전해진 뒤 아랍 국가로 번져나갔고 터키에도 소개됐다. 이때 사람들은 커피를 ‘가화’(Gahwha), ‘카화’(Qahwha)라고 불렀으며, 사막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소수민족 베두인(Bedouin)족들이 마시는 ‘가화사다’(Gahwa Sada), 터키 사람들이 마시는 ‘가화시커피’는 이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커피의 첫 명칭인 ‘가화’ 또는 ‘카화’는 ‘W’ 발음이 없는 터키로 전해진 후 ‘카베’(Kahve)로 불렸고 이것이 프랑스에서 ‘카페’(Cafe), 영어권에서 ‘커피’(Coffee)가 됐다.
따라서 터키의 ‘카베’는 그야말로 ‘커피’(미국 영국의 coffee, 프랑스의 café, 독일의 kaffee, 이탈리아의 Caffè, 네덜란드의 koffie, 노르웨이의 kaffe, 아이슬란드의 kaffi, 핀란드의 kahvi처럼)인 셈이다. 다만 이들은 원두를 곱게 갈아 ‘제즈베’(Cezve)라는 커피 주전자에 담아 물을 넣고 끓이는 방식, 다시 말해 ‘달여서’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커피 본연의 깊은 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으며, 여기에 제각각 적당한 양의 설탕을 넣어 마신다.
그라운드워터씨는 터키의 커피인 ‘카베’에 대해 “필터링하지 않고 만들어낸 블랙의 커피가 강한 향기와 함께 황홀한 맛을 준다”고 언급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b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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