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양봉업계 및 시골 지역에는 가족에게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 누군가의 죽음이나 출생, 결혼 등에 대해 꿀벌에게 말해주는(elling the bees) 오랜 관습이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날, 버킹엄 궁의 양봉 담당자 또한 궁에서 관리하는 꿀벌에게 여왕의 죽음을 말해주고 검은색 리본을 달았다. 사진 : Pixabay / PublicDomainPictures
영국 양봉업계-민간의 오랜 전통이자 관습, 사후세계 중재자라는 켈트 신화서 유래 추정
지난 9월 8일(영국 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소식은 전 세계에만 전해진 게 아니다. 영국 왕실에서 기르는 꿀벌들에게도 이 슬픈 소식을 알렸다. 영국의 일부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을, 버킹엄 궁의 공식 발표가 아닌, 궁전 양봉 담당자로부터 먼저 들었다.
가족의 일원이 사망할 경우 ‘꿀벌에게 알려주기’(telling the bees)라는 미신적이고 다소 흥미로운 이 전통은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영국 시골 지역 민속의 일부였다. 평범한 사람들뿐 아니라 영국 최장수, 최장 재임 군주가 사망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 여왕의 벌들에게 알려준 것은
버킹엄 궁(Buckingham Palace)의 양봉 담당자인 존 채플(John Chapple)씨는 최근 영국 ‘Mail Online’(영국 일간지 Daily Mail 온라인판)과의 인터뷰에서 여왕이 서거한 금요일(9월 8일), 클레어런스 하우스(Clarence House)와 버킹엄 궁을 찾아가 7개의 벌통에 여왕의 사망 소식을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올해 79세인 그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벌통에 가서 잠시 기도를 하고 벌통에 검은 리본을 다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 풍습”이라며 “검은 리본을 활 모양으로 만들어 벌통에 달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플씨는 “두 곳(클레어런스 하우스와 버킹엄 궁)의 모든 벌통에 조용한 어조로 여왕의 사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꿀벌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궁에는 양봉을 담당하는 관리자가 있으며, 이곳에서 채취한 꿀은 궁 요리사들이 조리를 했고 남은 것은 판매하여 자선단체에 기부해 왔다. 사진 : Facebook / The British Monarchy
▲ ‘telling the bees’는 얼마나 오래된 풍습인가
영국은 물론 유럽 각지에 남아 있는 18, 19세기의 많은 잡지나 일기, 그림을 보면 ‘꿀벌에게 말하기’에 대한 관습이 언급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학자들에 따르면 이 관습은 벌이 인간과 사후 영의 세계 사이의 중재자라는 켈트 신화(Celtic mythology)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 꿀벌에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죽음뿐 아니라 출생, 결혼 등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요한 일들에 대해 꿀벌에게 전했다. 이는 양봉을 하는 이들이 꿀벌과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 시인 존 그린리프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가 1858년 쓴 시 ‘Telling the Bees’의 두 번째 연은 양봉가들의 중요한 관행을 묘사한다.
Before them, under the garden wall,
Forward and back
Went, drearily singing, the chore-girl small,
Draping each hive with a shred of black.
Trembling, I listened; the summer sun
Had the chill of snow;
For I knew she was telling the bees of one
Gone on the journey we all must go!
"Stay at home, pretty bees, fly not hence!
Mistress Mary is dead and gone!
집에서 기르는 꿀벌에게 가족의 죽음을 이야기해 주는 한 미망인과 어린 아들을 묘사한 그림. 사진 : Wikimedia Commons
▲ 벌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누군가의 죽음이 발생하면 벌들에게 조용히 이야기 해주고 검은 천으로 벌통을 감싸며, 장례 음식을 벌통 옆에 두기도 한다. 민속학자들에 의하면 벌들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꿀벌들이 죽거나 벌통에서 떠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또는 꿀을 만들어내지 않고 양봉가를 침으로 쏘기도 한다고 여겼다.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꿀벌들
여왕은 꿀벌 애호가였으며 오랜 기간 동안 궁 부지에 많은 벌통을 놓고 벌을 길렀다.
왕실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왕실 요리사들은 궁의 양봉 벌통에서 채취한 꿀을 요리에 사용했으며, 남은 꿀은 판매하여 자선단체에 기부해 왔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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