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호주 각 산업계가 기술인력 부족을 호소하지만 이미 호주 국내에 체류하면서 엔지니어링 분야 자격을 갖춘 인력들 가운데 절반은 미취업 상태이거나 해당 직종의 일자리를 얻지 못해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 : Pixabay / StockSnap
‘Settlement Services International’, “이들 활용으로 기술인력 부족 일부 해결 가능”
레티시 마하토(Ritesh Mahato)씨가 지난 2017년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경력을 이어가고자 호주로 이주했을 당시,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우수한 대학 성적표, AutoCAD 자격 증명서, 인도 난방-냉동 및 공조학회(Indian Society of Heating, Refrigeration and Air Conditioning) 이사회 회원, 2013년에 취득한 로봇 공학 2급 자격증이 포함되어 있었다.
네팔에서 태어난 그는 호주로 건너온 뒤 센트럴퀸즐랜드대학교(Central Queensland University)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호주 엔지니어링 학회인 ‘Engineers Australia’에서 그가 이미 취득한 해외 자격증을 인정했지만 호주에서 관련 분야 취업에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지금, 대형 하드웨어 체인인 ‘버닝스’(Bunnings)와 도요타 자동차 영업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NSW 주에 기반을 둔 비영리 기구 ‘Settlement Services International’의 조디 라즈카니(Joudy Lazkany) 대표에 따르면 마하토씨는 해외에서의 자격에 대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인증을 받았음에도 해당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50%의 이주 엔지니어에 속한다. 즉, 호주 내 해외 엔지니어 인력의 절반가량이 전공 분야 구직에 실패했다는 의미이다.
라즈카니 대표는 “엔지니어링 분야의 모든 자격 서류, 경험을 가진 이들이 호주로 건너온 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경우 해외에서의 자격을 인정받기까지 최대 9개월에서 1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호주에서 필요한
엔지니어 인력, 3만 명
어느 국가에서 해당 분야의 경력을 갖고 있는지도 성공적 취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라즈카니씨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이나 일부 중동국가에서의 20년 경력은 큰 의미가 없다.
마하토씨는 “각 엔지니어링 분야의 자격만 있는 것으로 호주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전공 분야 일자리가 나오면 계속 지원하고 있다. 취업이 거절당하더라고 실망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라즈카니씨는 이런 인력들이 있음에도 호주 각 산업계가 기술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해당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 다수는 소위 ‘생존 직업’(survival jobs)이라 하는 분야에 종사한다. 소매업, 접객 서비스, 위생, 승차공유 등은 특별한 자격이나 경력을 요하지 않으며 종종 독립성과 어느 정도 재정적 안정을 주는 일자리이다.
2030년까지 약 10만 명의 엔지니어 부문 인력 수요가 예상되며, 현재 이 분야 일자리에 3만 개의 공석이 발생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호주 엔지니어 학회인 ‘Engineers Australia’의 로밀리 매듀(Romilly Madew) 최고경영자는 국가 에너지 전력 변화뿐 아니라 팬데믹 기간 동안의 대학등록 감소, 인프라 활성화 및 국경 폐쇄로 호주 내 엔지니어 인력 부족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호주 엔지니어 학회(Engineers Australia)의 로밀리 매듀(Romilly Madew. 사진) 최고경영자. 그녀는 “정부와 산업계가 ‘고용 경로’(pathways to employment)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들 기술인력 활용을 촉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 : Australian Academy of Technological Science and Engineering
라즈카니 대표는 “현재 호주 각 산업계가 엔지니어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성 문제가 발생하고 경제 전반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면서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뿐 아니라 이미 호주 내에 거주하는 숙련 이주 엔지니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호주에서 기술 인력을 유치할 때 호주가 진정 필요로 하는 분야의 인력인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각 분야 엔지니어 인력들,
SNS 그룹서 정보 공유
현재 지속적으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마하토씨는 ‘Nepalese Engineers in Canberra’라는 이름의 ‘페이스북’(Facebook) 계정에 가입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있다.
이 계정을 만든 라이우 아디카리(Raju Adhikari)씨는 약 560명에 이르는 회원들을 멘토링 하며 취업 안내, 지원서 작성 워크숍, 모의 인터뷰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 온 기술 이민자의 경우 호주 현지에서의 채용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디카리씨 역시 지난 2005년 호주로 이주한 기술 인력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캔버라에서 엔지니어링 일자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하고 회원들과 교류를 시작했을 때 특정 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직업을 구하지 못한 엔지니어들이 많았고, 이들의 질문은 ‘엔지니어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 ‘엔지니어링 직업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사항들’이었다”며 “이런 질문들을 보면서 보다 협력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디카리씨는 SNS 계정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정보를 제공했고 임시직으로 일하는 엔지니어들의 정규직 전환에도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은 Engineers Australia와 협력하여 구직 네트워킹 및 이력서 쓰기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우리가 이해한 장벽 중 하나는 소프트 기술에 대한 불일치”라는 Engineers Australia의 매듀 CEO는 “그것은 현지 국가에서의 경력, 네트워크, 또는 현재 호주의 표준이나 시스템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는 말로 해외 이주 엔지니어들이 쉽게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이유의 한 부분을 설명했다.
해외 이주 엔지니어와
호주 고용주 간 인식 차이
이주 엔지니어 회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페이스북 운영자 아디카리씨, Engineers Australia의 매듀 CEO는 한 목소리로 “정부와 산업계가 ‘고용 경로’(pathways to employment)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들 기술인력 활용을 촉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달 정부가 주도한 ‘Jobs and Skills Summit’에서는 기술 인력 유치가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다루어졌지만 이 안건의 초점은 해외 숙련기술자 유치에 모아졌다. 즉 올해 회계연도 기술 인력 영주이민 한도를 3만5,000명에서 19만5,000명으로 확대하고 비자발급 대기시간을 크게 단축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아디카리씨는 “해외 인력유치도 좋지만 이미 호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해당 분야에 고용되지 못한 이주 엔지니어를 활용하는 데에도 집중하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마하토씨도 이에 동의하면서 “현지 고용주와 이주 엔지니어 사이에 인식 차이를 해결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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