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ABS)이 지난 한 해 근로자 임금상승을 집계한 결과 실질임금이 거의 3년 만에 인플레이션 수치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퇴근시간 무렵, 시드니의 한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 사진 : 김지환 기자 / The Korean Herald
ABS 자료, 12월까지 이전연도 대비 4.2%-지난해 마지막 3개월 사이 0.9% 성장
다수 기업들, 고용계약에 ‘non-compete' 또는 ‘no-poaching clauses’ 적용 ‘우려’
호주 근로자 실질임금이 거의 3년 만에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알바니스(Anthony Abanese) 정부의 가계 생활비 절감 노력이 효과를 거두었지만 대부분 호주 가구가 위축된 가계재정을 회복하는 데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이 이달 넷째 주 내놓은 지난해 12월까지의 근로자 임금은 이전연도 대비 4.2% 상승해 201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마지막 3개월 동안의 임금 성장은 0.9%였다.
이 같은 연간 임금 증가율은 12월의 물가상승률 4.1%보다 0.1%포인트 높은 수치로, 이는 실질임금을 기준으로 호주 근로자 소득이 2021년 3월 이후 처음으로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임금이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분야는 보건 및 사회서비스 부문으로 연간 5.5% 증가했으며 교육 부문이 4.8%로 뒤를 이었다. 근로자 임금이 비교적 높은 금융 및 보험 서비스 부문은 3.2%로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연방 재무부 짐 찰머스(Jim Chalmers) 장관은 ABS의 데이터 공개된 후 “노동당의 선거 공약이었던 실질임금 상승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장관은 “호주 근로자들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음을 뜻하며, 우리(정부)는 세금감면으로 각 가계에 더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임금이 인플레이션보다 빠르게 성장한 때는 2021년 3월이었다. 이후 물가는 14.6%가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임금은 8.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실질임금 성장 데이터와 관련해 야당 내각에서 재무를 담당하는 앵거스 테일러(Angus Taylor) 의원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수년간 후퇴한 실질 소득이 3년 동안의 전염병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약간의 인구 증가로도 호주 가계가 겪는 재정적 고통을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일러 의원은 “우리(호주)는 영어권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계 생활수준이 가장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을 경험했다”면서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한 정부의 산만함으로 인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최대 고용주 단체인 ‘Australian Industry Group’(Ai Group)의 이네스 윌록스(Innes Willox) 최고경영자는 높은 임금상승에 대해 “매우 위험한 쐐기의 얇은 가장자리(the thin edge of a very damaging wedge)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시 말해 ‘지금은 반가운 일일지 모르지만 더 위험 한 일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암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윌록스 CEO는 “임금상승에 대한 경제 전반적 측정 외에도 특정 영역에서 나타나는 상당 폭의 임금 성장은 정부의 새로운 노사관계 협정에 따른 임금 방향에 추가적인 우려를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8년 이후 호주 근로자 실질임금과 소비자 물가를 보여주는 그래프. Source: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반면 웨스트팩(Westpac) 은행의 저스틴 스머크(Justin Smirk) 경제연구원은 “공공 부문 임금인상의 경우 개별 합의가 더 일반적인 다른 부분에 비해 뒤처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미 해당 부분 임금상승률이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 부문 임금이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올해까지 분기별 임금 결과는, 또 다시 크게 상승하는 것을 볼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근로자 이직 제한하는
고용계약 많아
한편 임금 성장과 관련해 점차 커지는 문제는 기업이 직원과의 고용계약에 ‘non-compete clauses’(직원이 일하던 회사를 떠날 때, 일하던 회사의 고용주와 경쟁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고용주-고용자 사이에 일반적으로 체결하는 공식 계약. 다시 말해 사직하는 직원이 같은 업종의 경쟁 회사로 이직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 또는 ‘no-poaching’(동종 기업 사이에 논의하는 것으로, 한 회사에서 일하던 직원을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가 고용하지 않기로 하는 두 회사 간의 합의)를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조항으로 인해 동종업계 이직이 불가능하게 되고 젊은 근로자가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ABS가 처음으로 집계, 최근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거의 절반의 호주 기업이 이 같은 금지 조항을 사용했다.
가장 일반적인 제한 조항은 ‘non-disclosure agreement’(NDA)로, 45.3%의 기업이 이 계약을 사용했다. NDA는 기밀 관계를 설정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계약으로, 이에 서명하는 직원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민감한 정보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업체에 제공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일명 ‘기밀유지 계약’이라고 한다. 또 ‘non-compete clauses’은 20.8%의 업체가, ‘no-poaching’은 25.4% 기업이, ‘no-poaching of co-workers’는 18%의 업체가 사용했다.
ABS의 조사 내용을 보면 최소 1,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대기업은 ‘non-compete clauses’를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으며, 실제로 40% 업체가 사용했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 이 비율은 20.2%였다.
아울러 금융회사의 약 40%가 이 조항을 사용한 반면 부동산 업계는 약 3분의 1이 사용했으며 소매(12.7%), 접객서비스(14.4%), 예술 및 레크리에이션(13.7%) 업계의 이 조항 사용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독립 경제연구소 ‘e61 Institute’의 댄 안드레스(Dan Andres) 선임 정책연구원은 이 수치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금지 조항을 적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비난하면서 “non-compete 또는 no-poach clauses를 사용한 기업의 80%는 4명의 직원 중 3명에게 해당 계약을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non-competes 및 기타 제약을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이 같은 조건에 대해 협상할 교섭력이 부족한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이와 관련, 짐 찰머스 장관은 ‘non-compete clauses’의 사용은 사실상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다. 장관은 “우리(정부)는 근로자들이 더 나은 급여를 포함해 새로운 기회가 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기를 원한다”며 “이런 조항이 사용되는 업체에서 의도한 대로 적용되는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