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를 용기 내어 고발한 엠마 헌트(Emma Hunt) 학생(사진). 대학 내 성 범죄가 시드니뿐 아니라 멜번 등에서도 상당히 폭넓게 행해지는 것으로 추정돼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시드니 이어 멜번서도 드러나... 대학들, 적극적 대책 마련 필요
엠마 헌트(Emma Hunt)의 대학 생활 첫 기억은 잔인하기만 했다.
멜번(Melbourne) 소재 모나시 대학(Monash University)에 입학한 지난 2014년, 오리엔테이션 캠프 참석 중 성폭행이라는 씻지 못할 치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춤을 추고 있었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나를 겁탈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 생활의 첫 활동이자 새로운 학우를 사귈 좋은 기회로 포장되었던 오리엔테이션은 이제 막 20살에 접어든 새내기 여학생에게 지울 수 없는 끔찍한 흉터를 남겨놓았다.
사건 이후 엠마는 학교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지를 호소하고 이에 대한 조치 강구 및 안전강화 등을 외치는 여학생들의 목소리에 동참해왔다.
전 빅토리아 주 경찰관 4명으로 구성된 대학 내 안전 보안대(Safer Community Unit)를 찾아 도움을 구했을 때 그들이 그녀에게 해준 것은 경찰서 신고 권유뿐이었고, 법정에서 겪어야 할 또 다른 고난을 원치 않았던 그녀는 망설였다.
그녀는 “학교 측은 경찰이 관여하기 전까지는 도와줄 수 없다고 했고 또한 내가 교내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대안도 마련해주려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남학생과 침대에 함께 누워있던 엠마를 처음 발견했던 학생은 그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술에 너무 취해 ‘잠자리를 함께 하기로 합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엠마가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결국 학생들은 그 남자를 엠마에게서 강제로 떼어놓았다.
최근 시드니대학 내에서의 성 폭력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멜번에서도 이 같은 일이 드러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금주 월요일(23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보도했다.
신문은 성폭력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대학은 이에 적극 대처하기보다는 ‘학교 명성’에 누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보여 비난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한 대학 학생들은 ‘성폭력 피해자 탓하기’(slut shaming) 내용을 담은 책자를 발행하는가 하면, 시드니 대학에서는 교내방송 시설을 통해 학생들의 성관계 상황이 중계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엠마는 지금도 끔찍했던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상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얼마 전 캠퍼스 내에서 자신을 덮쳤던 성폭행 학생과 마주치게 되었고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봐 두려움에 떤 일도 있다. 그녀는 “대학 내 성폭행 사건을 다룬 미국의 다큐멘터리 ‘The Hunting Ground’ 상영과 같은 대학 측의 일부 조치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합의’에 대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막 미성년을 지난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을 했고, 이들은 원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라는 엠마는 “때문에 성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도 호주 대학 내에 만연한 성폭력 관련 범죄에 대해서 크게 드러난 바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전국 대학생 연합(National Union of Students, 이하 NUS)의 조사 결과 응답자 중 53%가 학교 행사 중 교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이중 단 6%만이 학교 당국에 신고했으며 경찰에 직접 신고한 경우는 겨우 5%에 그쳤음을 보면 그 심각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모나시 대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NUS 자료에 의하면 교내 스포츠 캠프에서 공격 받은 멜번 대학 학생과 심지어 강사 개인 차량 안에서 성폭행을 당한 22살의 디킨 대학(Deakin University) 학생 사례도 있다.
지난해 말, 성폭력 대응 센터(Centre Against Secual Assault)는 익명의 제보 3건을 받았는데, 모두 한 대학 학생이 함께 술을 마시던 여학생의 술잔에 약을 넣은 뒤 자기 집으로 데려가 폭행을 저지른 내용이었다.
이름 노출을 꺼린 한 여학생은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11년 제법 인기가 있고 교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한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건 당일 몇 시간에 걸친 성적 치근거림을 견디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지만 따라온 남학생이 택시 앞자리에 탄 뒤 운전기사에게 자기 부모집 주소를 주면서 그곳으로 가 달라고 했고, 결국 그 집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남학생은 교내에서 다른 여성도 성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가 학교 당국이나 경찰의 조사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피해 학생은 “또다시 공격받을까 두려워 이 일을 꺼낼 수 없었다”면서 “성폭행을 저지른 당사자는 물론 그의 친구들이 온라인 상에서 나를 공격할까봐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NUS 여학생부의 하이디 파글리아(Heidi Paglia)씨는 “학교 당국이 피해 학생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이 가해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 학교 책임자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으며 사건을 신고한다 해도 피해자들이 학교 상담사를 만나기 위해 6개월이나 기다려야 했다”고 지적했다.
파글리아씨는 이어 “학교 당국은 논문 표절처럼 학칙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포함, 즉각적인 대응 절차들을 가지고 있지만 왜 성폭행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
올해 초, ‘Universities Australia’는 성관련 범죄 예방을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하고 현재 만연해 있는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자료 작성을 위해 호주 인권위원회(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가 주관하는 범국가적 조사에 약 10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모나시 대학 대변인은 “2014년 이후 당 대학에 접수된 성범죄 신고는 단 4건의 교내 성폭행과 20건의 학교 외 발생 사건뿐”이라고 전하며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리는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격리 및 가해자들의 행적 감시 등 대학 차원의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또 지지해주어야 하며, 이들이 신고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선택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우리 대학(모나시)은 지속적으로 피해 학생에 대한 개인적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가해자들과의 접촉 가능성도 차단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세영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