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필드 유나이팅 교회(Ashfield Uniting Church)에 세워진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이 교회 빌 크루즈(Bill Crews) 목사는 ‘시소추’의 ‘소녀상’ 건립을 적극 지지해 왔다.
호주 내 일본 커뮤니티, ‘갈등 조장’ 등 사유로 소송 제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성노예로 강제 동원된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참혹한 사건을 기억하고자 호주에서 최초로 건립된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일본 커뮤니티가 연방 인종차별법 18C조항(section 18C of the Racial Discrimination Act)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금주 수요일(14일) A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호주-일본인 커뮤니티 네트워크’(AJCN, Australian-Japanese Community Network)는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이 인종간 분열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며 건립을 추진한 한인 단체(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시소추’)와 제막식을 허가한 애쉬필드 유나이팅 교회(Ashfield Uniting Church) 회장 스튜어트 맥밀란(Stuart McMillan) 및 빌 크루즈(Bill Crews) 목사를 고소했다.
AJCN의 야마오카(Yamaoka) 회장은 오전 7시 30분 호주인권위원회(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에 불만사항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하고 도쿄에서 “시드니 지역의 부모들이 제기한 우려에 대한 정치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지난해 ‘한일 군 위안부 합의‘ 이후 개선의 조짐을 보이던 양국 외교 관계가 다시 경색되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과 한국 정부는 ‘군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 피해자 보상, 일본 정부 예산을 활용한 지원 재단 설립을 골자로 한 협정문을 발표했다.
소녀상은 올해 8월 시드니 지역 ‘시소추’ 주도로 한인회관에서 제막식을 가진 뒤 애쉬필드(Ashfield) 소재 ‘애쉬필드 유나이팅 교회’에 안치했다.
AJCN이 이들이 근거로 내세운 연방 인종차별법 18C조항은 ‘인종, 피부색, 국적, 민족에 기반해 사람을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애쉬필드 유나이팅 교회(Ashfield Uniting Church)에 세워진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야마오카 회장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해외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들이 호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평화의 소녀상은 지역 내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아침 같은 시각, 크루즈 목사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소송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소녀상을 제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AJCN의 조치에 대해 “터무니없는 행동”이라며 AJCN 측에 “마음대로 하라”고 맞섰다.
이어 “소녀상으로 지역간 갈등이 생긴다면 그것이 더 슬픈 일”이라며 “소녀상은 아픈 과거가 다시 반복되지 않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숫자를 둘러싸고 논쟁이 분분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성노예 피해자는 한국인 또는 중국 여성 약 2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에미코(Emiko)라는 이름의 한 AJCN 회원은 이날 오전 인터뷰에서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은 2만명에 불과하며 강제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연방 인종차별법 18C조항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있다. 연립당의 팀 윌슨(Tim Wilson) 의원은 “이 조항이 ‘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위협한다”며 개정 또는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국회는 현재 인종차별법(RDA)의 개정을 검토 중이며, 이를 위해 이번 ‘소녀상 소송’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안 구디너프(Ian Goodenough) 자유당 의원도 이날 오전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사건에 인종차별법 18C조항을 이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