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사법사상 가장 주목을 받았던 ‘아자리아 실종’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인 마이클 채임벌린(Michael Chamberlain)씨. 32년 만에 무죄로 확정된 사건의 당사자인 그가 금주 월요일(9일) 저녁 급성 백혈병과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딩고에게 물려간 아자리아의 아버지, 30여년 이상 법정 싸움
목사이자 학자로 활동... 9일(월) 저녁 72세 일기로 고스포드 병원서
지난 1980년, 캠프장에서 태어난 지 9주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 아자리아(Azaria) 실종 사건은 호주 사법 사상 가장 관심을 끌었던 케이스 중 하나이다. 북부 호주(Northern Territory) 울룰루(Uluru)에서 휴가를 즐기던 채임벌린씨 가족은 텐트 안에서 자고 있던 딸 아자리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아자리아 가족은 딩고가 물고 간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으나 북부 호주 법정은 아자리아의 어머니 린디(Lindy Chamberlain-Creighton)씨를 자녀살해 혐의로 구속했다.
이 사건의 주인공 중 하나인 마이클 채임벌린(Michael Leigh Chamberlain)씨가 금주 월요일(9일) 저녁, 고스포드 병원(Gosford Hospital)에서 급성 백혈병과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법률대리인인 스튜어트 티플(Stuart Tipple) 변호사가 호주 언론에 공식 발표했다.
딸 아자리아의 실종 이후 아자리아의 가족은 법정에서 맹세코 아이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법정은 아자리아의 어머니 린디씨가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어진 법정싸움은 무려 30년 넘게 이어졌으며, 이 사건은 호주 전국민의 관심을 받은 최대 사법 케이스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2012년 6월, 채임벌린씨 가족의 길고 긴 싸움은 막을 내린다.
휴가지에서 시작된 악몽
1982년 10월29일(금) 밤, 아내인 린디가 생후 9주 된 딸 아자리아 살해범으로 베리마 교도소(Berrimah Jail)에 수감된 이날, 마이클 채임벌린은 다윈(Darwin)의 한 침대에서 정신없는 밤을 보냈다.
아내가 수감된 상황에서 그는 수많은 걱정과 고민, 잡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음을 느꼈다. 아내가 살인죄로 구속된 상황에서 자신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질 것이며, 자신마저 구속 수감될 경우 어린 두 아들인 에이단(Aidan)과 리건(Reagan)은 누가 돌봐야 하나, 린디의 뱃속에 있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어떻게 되나... 이런 혼란으로 그는 악몽 같은 밤을 보내야 했다.
그에 대한 법정 선고는 3일 후인 월요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채임벌린은 담당 판사인 노던 테러토리 법원의 제임스 뮤어헤드(James Muirhead) 판사에게 다음 날이라도 판결을 내리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고 호소했고, 뮤어헤드 판사는 채임벌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채임벌린은 총살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법정 심판대 앞에 섰다. 그리고 뮤어헤드 판사는 그에게 살해 공범 혐의로 18개월의 징역형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비록 교도소에 가는 것은 피했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딸의 실종과 아내의 수감... 그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평생 채임벌린을 괴롭혔다. 1980년 8월17일, 가족의 캠프 텐트 안으로 침입한 딩고(dingo. 호주에서 서식하는 늑대의 일종)가 갓난 딸 아자리아를 물고 가면서 그의 가족의 삶은 사정없이 찢겨졌다.
사건 발생 이후 판결이 나기까지 6주간 살해(검찰)와 무죄라는 전혀 상반된 주장을 들어온 제임스 뮤어헤드 판사는 개인적으로 채임벌린 커플의 무고를 믿었다고 밝혔으며, 그렇기에 마이클 채임벌린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는 것을 후에 털어놓았다.
9주된 딸의 감쪽같은 실종
뉴질랜드 태생으로 호주 제7 안식일 교단의 ‘Avondale College’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타스마니아에 배정돼 목회를 하다 미디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노스 퀸즐랜드로 이주한 그의 가족은 북부 호주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한 뒤 휴가차 다윈을 다녀오기로 하고 먼저 울룰루를 둘러보기로 했다.
울룰루(Uluru)의 캠프장 텐트에서 실종되기 직전의 아자리아 채임벌린(Azaria Chamberlain)과 어머니 린디(Lindy)씨. 린디와 마이클은 딩고가 물고 간 것 같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은 린디씨에게 자녀살해 혐의를 주장했다.
그런데 그날(1980년 8월17일) 저녁, 울룰루의 캠핑장 텐트에 잠들어 있던 아자리아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딸을 잃은 슬픔과 함께 이들 가족의 또 다른 비극은, 부부가 딸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린디와 마이클은 “야생 딩고가 딸아이를 물고 간 것 같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이 진술이 경찰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피만 묻었을 뿐 멀쩡한 상태의 아이 옷이 텐트 근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이들 부부에게 아이 살해 의혹이 쏟아졌고, 린디와 마이클은 아자리아 실종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로 피소됐다.
이듬해 1차 재판이 시작됐다. 이와 때를 맞춰 당시 호주 언론이 무분별한 기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전문가 의견을 인용, ‘딩고는 결코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과 함께, ‘딩고가 옷을 찢어버리지 않고 아이만 빼내어 갈 수 있는가’라는 의혹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사건은 호주 사회의 커다란 뉴스로 부각됐고, 방송은 재판 과정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딩고’(Dingo)는 호주 야생에서 사는 늑대이다. 유기된 개들이 야생에 적응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자나 호랑이, 표범처럼 강한 육식동물이 없는 호주의 야생에서 먹이사슬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딩고는 빠르게 번식, 개체수가 늘어났다.
딩고는 종종 사람을 공격해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아자리아 사건 당시만 해도 딩고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호주 언론은 아자리아 사건을 다루면서 딩고의 야생성 등에 대한 규명은 외면한 채 확실하지 않거나 증명되지 않은 전문가(?) 의견을 받아 아자리아 부모에게 불리한 흥미 위주의 선정적 기사를 이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1차 재판은 이들 부부에게 ‘무죄’를 판결한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아자리아 사건을 여기서 종결하지 않았다. 검찰은 지속적으로 아자리아 부부의 아이 살해 증거를 찾아나갔다. 1차 재판이 열린 이듬 해 검찰은 린디의 차 뒷좌석에서 아자리아의 혈흔과 가위를 찾아냈다. 이로써 2차 재판이 시작됐고, 검찰은 린디가 가위로 아자리아의 목을 찔러 살해한 뒤 가방에 넣어 버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 주장에 문제가 있는 부분은, 살인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시신이 없는 상태에서 ‘정황’만으로 살해혐의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들 부부의 살해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갔고, 결국 배심원들은 검찰이 제기한 정황증거만으로 린디에게 살인혐의를 적용해 종신형을, 남편이자 아자리아의 아버지인 마이클에게는 살인방조를 선고한다.
결정적 반전은 4년 뒤...
2차 재판에 따라 린디가 교도소에 수감되고 4년이 흐른 후인 1986년, 결정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사건이 발생했던 울룰루의 한 계곡, 딩고가 서식하는 굴에서 흙더미에 반쯤 묻혀 있던 아자리아의 유아용 재킷(matinee jacket)이 발견된 것이다.
이로써 노던 테러토리(Northern Territory) 주 정부는 수감 중이던 린디를 석방했고, 호주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는 2차 재판의 린디에 대한 유죄 판결을 폐기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자리아의 사인을 판명하기 위해 린디가 석방된 후 10년간을 끌다가 1995년 3차 재판이 벌어지고, 여기서 ‘사인 불명’이라는 판결이 내려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3차 재판이 열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져가던 아자리아 사건은 몇 년 뒤 또 한 번의 결정적인 흐름을 맞는다. 2001년과 2003년, 10세 미안의 어린이가 딩고에게 물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아자리아 사건의 1차 재판이 시작되면서 린디와 마이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증언은 바로 ‘딩고는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딩고에게 저항할 힘이 없는 어린이들이 연이어 딩고에게 변을 당한 일은 아자리아 사건 정황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이즈음, 딩고가 봉지를 찢어버리지 않고도 봉지 안의 고기를 꺼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법정 실험결과도 보고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자리아 사건은 4차 재판을 갖는다. 사건 심리는 2012년 2월24일 시작됐으며, 최종 판결은 4개월여 뒤인 지난 6월12일, 다윈 치안법원에서 개정됐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스 모리스(Elizabeth Morris) 검시관은 마침내 린다 부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진심을 담아 유감을 표명한다.
병든 아내 돌보며
저술에 전념
채임벌린과 린디씨는 아자리아 사건 10년 후인 1991년 이혼했다. 이후 린디는 미국인 릭 크라이튼(Rick Crighton)과 결혼했으며, 채임벌린씨는 지역사회 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자유당 소속으로 NSW 의회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6월, 네 번째 심리에서 마이클씨가 이혼한 아내 린디(앞줄 가운데)와 나란히 앉아 있다. 당시 심리에서 이들은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3년 뒤인 94년 그는 세 자녀를 둔 이혼녀 잉그리드 버그너(Ingrid Bergner)씨와 재혼했으며 몇 권의 책을 출간하는 한편 뉴카슬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NSW 서부 내륙 브루워리나(Brewarrina) 원주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2006년에서 08년까지는 고스포드 하이스쿨 교사로 재직했다. 그리고 2011년 8월 아내인 버그너가 중증 뇌졸중 진단을 받자 모든 일을 그만 두고 아내를 돌보며 저술에 매달렸으며 이듬해에는 뉴카슬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Heart of Stone>은 지난 2012년 출간됐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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