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제조업 비중이 빠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호주인 80%가 제조업을 활성화해 수입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일부 경제학자들도 제조업을 외면할 경우 장기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오는 10월, 호주 생산을 완전 중단하는 도요타 자동차 공장.
‘페어팩스 미디어’, 응답자 83% ‘지나친 수입품 의존’ 지적
최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닉 제노폰(Nick Xenophon), 폴린 핸슨(Pauline Hanson), 그리고 83%의 호주인이 공통적으로 주창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제조업 활성화다.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가 호주 유권자를 대표하는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수십 가지 뜨거운 쟁점에 대한 의견을 물은 설문조사에서 조사 대상자 대부분이 ‘호주는 국내 제조업을 살려 수입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반응이었다고 지난 일요일(5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보도했다.
설문조사가 진행된 날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자국 내 제조업 부양 정책을 강조했던 날이기도 하다. 이후 폴린 핸슨을 포함, 보호주의를 지향하는 호주 정치인들이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날 조사 대상자의 약 83%가 ‘해외 수입품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답변했으며 나이, 성별, 수입, 지역을 불문하고 국내 제조업 분야의 확장을 지지한다는 반응이었다.
1970년대, 제조업은 전 국민 4명 중 1명이 종사할 정도로 호주의 지배적인 산업이었으나 이후 계속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2008~2015년 사이 20만개가 넘는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현재 13명 중 한 명만이 이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회계연도(2016-16년) 제조업 비중은 시드니 경제 총생산의 6%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금융서비스업은 시드니 전체 경제의 3분의 1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호주 제조업의 해외생산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증거다.
이번 설문조사에 따르면 심지어 고소득층이나 젊은층, 대학교 졸업자들도 국내 생산 제조업 회복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각 계층별로 69~71%에 해당하는 응답자들이 이에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일부 연소득 $91,000 이상인 고소득층(14%), 18-24의 청년(13%), 학사학위 또는 그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12%)들만이 제조업 활성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이었다. 전반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65세 이상),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제조업을 중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역적으로는 도시 외곽 거주민들(90%)이 도심 거주자(79%)보다 제조업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호주연구원(The Australia Institute)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응답자 10명 중 9명이 호주 경제에 있어 제조업이 ‘중요’하거나 ‘매우 중요’하다고 답변했으며, 제조업이 ‘국가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응답도 80%에 달했다.
호주의 저명한 경제학자 사울 이스레이크(Saul Eslake)씨는 “호주인들의 의식에는 분명 제조업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깊이 뿌리박혀 있지만, 자녀들이 생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것을 바라는 부모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호주의 제조업 비중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지난 2016년 10월, 빅토리아(Victoria) 주 포드 자동차 브로드메도우스(Broadmeadows) 공장이 문을 닫던 날, 마지막 근무를 마친 근로자들이 정문을 나서고 있다(사진).
애들레이드 대학교(University of Adelaide) 정치국제학과(Politics and International Studies) 캐롤 존슨(Carol. R Johnson) 교수는 “제조업에 대한 그리움은 새로운 경제에서 느끼는 강력한 박탈감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존슨 교수는 이어 “수년간 여야는 유권자들에게 호주 시장을 개방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첨단기술 산업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기대와는 달리 국민들은 높은 임금을 자랑했던 제조업 분야의 수많은 일자리를 잃었다”면서 “첨단기술 산업이 제조업만큼의 일자리와 수입을 보장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제조업 분야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호주 같은 선진국은 서비스 산업에 더 집중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주연구원 내 ‘미래 일자리 센터’의 짐 스탠포드(Jim Stanford) 경제학자는 “호주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제조업 노동자들의 비중이 낮다”고 추산했다. 그는 제조업 분야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이런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호주는 장기적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페어팩스 미디어가 호주 국립대학교(ANU) 및 네덜란드 기반 정책연구소 ‘Kieskompas’와 협력해 공동 진행한 ‘Political Persona Project’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Political Persona Project’는 각자 가진 생활 방식, 사회적 가치관, 정치적 견해에 근거해 호주인들을 분류하는 가장 포괄적인 연구 중 하나이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