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5시간만 일하면서도 기본적인 소득 보장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20년 또는 50년 후 이런 노동 체계가 가능할 것이며, 또한 호주도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완전 고용과 기본소득 보장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오페라하우스의 ‘Antidote festival’서 관련 주제 토론 예정
‘주(week) 15시간만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 반가운 말이지만 그만큼 믿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호주의 경우 많은 이들이 과도한 시간을 업무에 할애하면서도 추가 급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고, 일각에서는 한 주간 열심히 일해야만 간신히 최저 생활비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1930년대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 영국 경제학자)는 ‘2030년경이면 주 근무시간이 15시간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1960년대 중반, 미 상원 위원회보고서 또한 ‘2000년까지 주 근무시간은 14시간이 될 것’을 예측했었다. 이는 연간 최소 7주의 근무 일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네덜란드 작가이자 역사가인 루트게르 브레그만(Rutger Bregman)씨는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언급한 뒤 “7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경제, 사회학자, 철학자들은 인류가 점차 더 적게 일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면서 “하지만 80년대 들어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우리는 더 많은 시간,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브레그만 작가는 오는 9월3일(일), 기후변화 등 우리 사회 전반의 주요 주제를 토론하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Antidote festival’를 통해, 그가 자신의 저서 <Utopia for Realists>에서 다룬 여러 아이디어와 함께 노동 시간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주 일요일(20일) ABC 방송은 이번 ‘Antidote festival’에 참여하는 그를 통해 적은 근무시간과 관련된 문제를 진단, 눈길을 끌었다.
무의미한 근무 시간,
“‘Bullshit jobs’이다”
브레그만 작가는 “많은 근로자들, 특히 고임금의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경우 자신들이 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이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유형의 직업에 대해 인류학자 데이빗 그래버(David Graeber)가 정의한 것처럼 어떤 실질적 가치로서의 진정한 부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bullshit jobs’이라고 설명하면서 “교사나 쓰레기 청소원, 간병 노동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법인 변호사, 컨설턴트, 금융 전문가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레그만 작가는 이어 영국 노동자 대상 조사에서 3분의 1 이상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의미없다’고 답했으며 네달란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0%가 자기 직업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답변으로 집계된 점을 언급하면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지만 생산성과 긴 근무시간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결론은 1930년대 콘플레이크 제조회사인 ‘WK Kellogg’ 사가 1일 6시간의 공장 근무 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정의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스페인의 한 고령자 간병시설에서는 23개월에 걸쳐 하루 6시간의 간병인 근무를 시험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간호 직원들의 건강 및 업무 효율성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용 상승 문제를 제기했다.
웨스턴시드니대학교의 제임스 아바니타키스(James Arvanitakis) 연구교수. 지난 10여년간 금융업계에서 일했던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며 의미 없는(비생산적인) 일처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웨스턴시드니대학교 연구 교수인 제임스 아바니타키스(James Arvanitakis)씨는 대학 근무 이전, 한 금융기관에서 일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한동안 여행을 떠났다가 직장인 금융부서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업무 생산성이 더 높아졌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주 5일 근무하는 것보다 3일간 근무했을 때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이 더 높아졌음을 알았다”는 그는 “이런 식으로 근무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아무도 읽지 않을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현재 이 대학교 ‘문화-사회연구소’(Institute for Culture and Society)에서 근무하는 아바니타키스 교수는 이전 10년간 한 금융기업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 그는 “전에 일하던 회사의 경우 수익성은 좋았지만 여러 면에서 의미 없는 일이 많았다”며 “나 자신이 하는 업무에 큰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적은 근무시간의 이점은...
주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에 대해 브레그만 작가는 남는 시간을 편안한 마사지 의자에 앉아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주 15시간 근무’라는 것은 유급노동 시간을 줄여 실질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봉사활동이든 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이든, ‘업무’(work)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브레그만 작가는 주 근무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이 보장된다면 사람들에게 재정적 보장과 함께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할 자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적은 근무시간이 업무 스트레스는 물론 직장 내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주 근무시간이 적은 국가의 경우 소득 불평등이 적고 양성평등은 더 많이 구현되어 있다.
오는 9월2-3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의 ‘Antidote festival’ 게스트 중 하나인 네덜란드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루트게르 브레그만(Rutger Bregman)씨. <Utopia for Realists> 저자이기도 한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주 근무시간 단축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브레그만 작가는 ‘비용이 들고 또 비현실적’이지만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은 정치적 이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Utopia for Realists>)에서 “단계적으로 주 근무시간을 줄일 수 있고,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며 보다 유연한 은퇴 시스템은 물론 육아휴직과 보육을 위한 보다 나은 제도를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케인즈를 비롯해 미국의 유명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와 같은 뛰어난 사상가들은 ‘(삶의) 지루함이 미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레그만 작가는 저서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므로 지루하지 않다.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은 밀려드는 권태감이 아니라 스트레스의 확산과 싸우고 있다”라고 썼다.
소비하기 위해 더 일한다
시드니대학교(University of Sydney) 정치경제학 박사 과정 중인 트로이 헨더슨(Troy Henderson)씨에 따르면 호주인들의 평균 일주일 노동시간은 정규직의 경우 1985년 여성 36.4시간, 남성 39.5시간에서 현재 각각 38.6시간, 42.3시간으로 증가했다. 반면 전체 평균 노동시간이 다소 줄어든 가운데, 헨더슨씨는 “파트타임(part-time) 근무자들이 늘어난 것이 이유”라고 말했다.
헨더슨씨는 지난 수십 년 사이 근무시간 감소가 더디게 진행된 이유는 70년대 중반의 경기침체, 국가간 무역의 세계화 추세, 실업률 증가, 불안정한 노동 상황 등 여러 요인 때문으로 진단했다. 시장 자유의 기본 원리는 근로자들을 압박하는 고용 윤리 및 고용주 권한을 강화시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사회적 세력으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은 자본주의가 ‘더 많은 여가보다 더 많은 소비’를 부추겨 형태로, 기업들 생산성 향상에만 집중한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주 15시간 근무가 꿈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부유한 국가의 경우 10세 전후의 아이들을 노동 현장으로 내보내지 않으며 주말 휴일을 즐기는 것은 물론 연차 및 공휴일을 꼬박꼬박 갖고 또 고령연금도 받는다”면서 “적게 일하면서 재정적 수입이 보장된 유토피아 같은 변화는 20년 또는 50년 후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짧은 근무 일수와 기본 소득이야말로 ‘유토피아적 실용주의’로의 개혁이라는 것이다.
이어 헨더슨씨는 “호주에서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직업을 갖는 의미에서의) 완전 고용과 주 4일 30시간 근무, 기본소득 보장은 동시에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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