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 축구대회’는 과연 순수한 축구대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로 90미터, 측면 길이 120미터의 잔디 구장에서 벌어지는 90분간의 ‘축구 전쟁’은 종종 현실에서의 외교적 분쟁으로 나타나곤 한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Dartmouth University) ‘Dickey Centre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이 분석한 ‘민족주의와 갈등 : 국제 스포츠의 교훈’(Nationalism and conflict: lessons from international sport)이라는 연구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사진은 2018 러시아 월드컵 공인구 ‘텔스타’(Telstaa). 사진 : FIFA 홈페이지.
다트머스대학교 ‘Dickey Centre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 분석
호주, 영국과의 크리켓 연례 대회 ‘The Ashes’로 인한 외교적 문제 경험도
‘월드컵 축구대회’가 지구촌 최고의 축구 축제이자 최대 스포츠 이벤트임은 부인할 수 없다. 국가간 대항전으로 ‘월드컵’은 본선에 진출한 국가의 국민적 열망이 가장 많이 담긴 대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경기 결과는 종종 국가간 감정의 앙금을 남기기도 한다. 미국 하노버(Hanover) 소재 다트머스대학교(Dartmouth University) ‘Dickey Centre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의 앤드류 베르톨리(Andrew Bertoli) 박사가 지난 50년간의 월드컵 대회와 이를 전후해 벌어졌던 국가간 분쟁을 조사, 분석한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민족주의와 갈등 : 국제 스포츠의 교훈’(Nationalism and conflict: lessons from international sport)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베르톨리 박사는 ‘Correlates of War’(COW. 과거의 자료를 기반으로 현대의 전쟁과 국제 분쟁과 원인을 보다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연구 프로젝트) 자료를 통해 1958년부터 2010년 사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거나 그러지 못한 국가간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월드컵 예선, 그리고 국가간 문제(갈등)와 연결되어 나타나는 6개의 확연한 차트를 확인했다. 지난호에 이어 이를 알아본다.
3. 본선 진출국이 일으킨 분쟁은 이전보다 3분의 1 이상 많다
월드컵 본선 진출 2년 전, 국가간 발생한 분쟁은 36건에 이른다. 하지만 본선 진출이 확정된 이후 발생한 국가간 도발은 49건으로 늘어났다.
옛 소련은 월드컵 예선 이전 2년 동안 다른 국가들과 8건의 분쟁을 시작했다. 이 가운데 7건은 냉정시기인 1958년 월드컵 이후 일어났다.
이는 차트 2에서 언급한 12건의 분쟁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러 해 동안 이어진 예선 이후 시작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1958년 대회 이전, 이웃인 칠레와 한 차례 분쟁을 일으켰다. 영국은 1974년 예선 이후 두 차례 더 이웃 국가를 도발했다.
월드컵 본선 자격을 얻기 위한 경기를 펼치기 이전, 한 차례의 분쟁도 없었던 카메룬은 1994년 월드컵 예선 이후 인접국가인 나이지리아와 세 차례에 걸쳐 분쟁을 일으켰다.
베르톨리 박사는 “이 수치는 월드컵 출전 자격을 얻었을 때 많은 국가들이 민족주의를 경험한다는 역사적 증거”라고 진단했다.
그런 반면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국가들에 의해 시작된 분쟁은 예선 이전 33건에서 예선 이후 19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 월드컵 본선 진출 전후의 국가간 분쟁
-전 : 36건
-후 : 49건
4.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더 많은 분쟁이 시작되었으며 보다 공격적이었다
COW 자료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이 시작된 이후의 분쟁이 보다 높은 수준의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도발은 첫 단계인 무력사용 위협에서 시작하며 국지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월드컵 2년 후, 다시 시작된 예선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 가운데 강도 높은 분쟁인 ‘점령’(seizure)은 15건에 달했으며, 본선 자격을 얻지 못한 국가의 분쟁 가운데 11건은 국경수비 강화(fortifying the border)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수준 높은 형태로 나타난 분쟁은 물리적 충돌(clash)로 17건에 달했다.
카메룬이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일으킨 3건의 도발은 이 수준이었으며 분쟁 지역은 석유가 풍부한 바카시 반도 지역(Bakassi peninsula region)을 포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카메룬은 나이지리아 군 주둔지(Nigerian post)을 장악하기도 했으나 후에 나이지리아의 반격을 받아 다시 내준 바 있다.
▲ 월드컵 본선 진출, 또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이후 발생한 국가간 적대감
(1958년에서 2010년 사이)
-캐나다 : recipient
-미국 : recipient & initiator
-쿠바 : recipient
-에쿠아도르 : recipient
-페루 : initiator
-파라과이 : initiator
-아르헨티나 : recipient & initiator
-칠레 : recipient & initiator
-잠비아 : recipient
-앙골라 : recipient
-콩고 : recipient
-카메룬 : initiator
-나이제리아 : recipient & initiator
-라이베리아 : recipient
-차드 : recipient
-세네갈 : recipient & initiator
-모로코 : initiator
-리비아 : recipient
-이집트 : recipient
-튀니지 : recipient & initiator
-포르투갈 : initiator
-스페인 : recipient
-프랑스 : recipient & initiator
-영국 : initiator
-이탈리아 : initiator
-덴마크 : recipient
-스웨덴 : recipient
-노르웨이 : recipient
-체코슬로바키아 : initiator
-유고슬라비아 : initiator
-불가리아 : initiator
-루마니아 : recipient
-터키 : recipient
-이란 : recipient
-소련 : initiator
-대만 : recipient
-한국 : recipient
-일본 : recipient
Source : Bertoli, A. Nationalism and conflict: lessons from international sport(2017)
5. 본선 진출 국가에서 군사적 참여(군사적 행동)가 높아진다
각 월드컵 대회 이전, 분쟁 발생시 군사적 행동이 나타난 평균 비율을 보면 본선 진출을 확정한 국가들(0.847%)과 그렇지 못한 나라들(0.821)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지역 예선 이후, 본선 진출을 확정한 국가의 군사적 행동 비율은 0.910%로 높아졌다. 반면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0.815%로 낮아졌다.
‘민족주의와 갈등 : 국제 스포츠의 교훈’이라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월드컵 본선에서 맞붙은 국가간 분쟁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다. 사진은 러시아 월드컵 본선경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런던의 한 아파트에 걸려있는 응원 깃발들. 사진 : aap
6.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분쟁발생 가능성은 더 높다
이번 분석 자료를 1930년대의 본선경기로 확대해 보면 월드컵을 앞둔 상황에서 서로 상대할 국가들 사이에 발생된 분쟁은 9건이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수년 후, 대회에서 경쟁했던 국가들 사이에는 21건의 분쟁이 발생됐다. 가령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우 1938년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한 건의 분쟁밖에 없었으나 대회 이후에는 3건으로 늘었다. 물론 이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지만.
캐나다와 프랑스는 1986년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분쟁이 없었으나 대회 이후 두 차례 갈등을 빚었다. 또 한국과 스페인은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국가로 갈등 요소가 거의 없었지만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이후 스페인은 세네갈로 향하던 한국 무기수송함을 점거한 바 있다. 이는 국제법상 분명한 불법 행위였다.
▲ 월드컵 대회 이전 및 이후, 대회 상대국간의 분쟁
(국가-연도 : 대회 이후 / 이전)
-프랑스 vs 캐나다(1986년) : 2 / 0
-유고슬라비아 vs 미국(1998년) : 1 / 1
-이란 vs 미국(1998년) : 0 / 1
-브라질 : 소련(1958년) : 1 / 0
-브라질 vs 아르헨티나(1982년) : 1 / 0
-한국 vs 스페인(2002년) : 1 / 0
-네덜란드 vs 유고슬라비아(1938년) : 1 / 0
-스위스 vs 독일(1938년) : 2 / 0
-덕일 vs 벨기에(1934년) : 1 / 0
-이탈리아 vs 프랑스(1938년) : 3 /1
-독일 : 유고슬라비아(1998년) : 2 / 1
-체코슬로바키아 vs 독일(1934년) : 1 / 0
-루마니아 vs 체코슬로바키아(1970년) : 1 / 0
-이탈리아 vs 노르웨이(1934년) : 1 / 0
-소련 vs 영국(1958년) : 2 / 1
-이탈리아 vs 노르웨이(1938년) : 1 / 1
-독일 vs 소련(1966년) : 0 / 1
-스웨덴 vs 러시아(1994년) : 0 / 1
-일본 vs 러시아(12002년) : 0 / 1
*월드컵 이후 21건, 이전 9건
Source : Bertoli, A. Nationalism and conflict: lessons from international sport(2017)
호주, 월드컵 관련 분쟁 없지만
크리켓 경기로 영국과 관계 악화 경험
그렇다면 ‘월드컵’으로 인한 다른 상대 국가들과의 분쟁에서 호주는 어떤 상황일까? 이 부분에서 호주는 축구로 인해 다른 나라와 갈등을 빚거나 분쟁의 대상이 된 흔적은 없다.
사실 베르톨리 박사의 분석에서, 1958년-2010년 사이 호주는 이번 연구를 위한 샘플에서 2점에 미치지 못해 조사 대상에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월드컵 본선을 치르는 과정 또는 그 이전이나 이후 대양주 국가들 사이에서 갈등을 빚은 사건은 보이지 않는다 (오세아니아 대륙에 속해 있던 호주는 2006년 아시아 축구연맹에 가입했다).
그렇다고 하여 국가간 스포츠에서 비롯된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가 호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즉 다른 국가간 경기를 통해 호주에서의 이런 ‘스포츠 민족주의’가 나타났던 사례가 있다.
‘The Ashes’(영국과 호주간 유명한 크리켓 국가대항전으로 1882년 영국이 호주와의 첫 테스트 매치에서 무기력하게 패하자 영국 스포츠 신문인 The Spoting Times가 “영국 크리켓은 죽었다. 이를 불태워 그 재(ash)를 호주에 보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기사를 내보낸 뒤 이 시리즈는 ‘The Ashes’로 불리기 시작했다)에서 호주의 크리켓 실력을 의식한 영국은 심한 견제를 일삼았는데, 1930년대 호주의 크리켓 전설 돈 브래드먼(Don Bradman)이 등장하면서 영국의 위험한 플레이는 더욱 심해졌다.
당시만 해도 크리켓 경기에서 선수들은 머리 보호를 위해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는데, 영국은 호주의 타자를 위협하기 위해 빠른 볼을 던져 호주 타자들을 고의적으로 위협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공에 맞은 호주 선수 여럿이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국가간 긴장과 함께 외교적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베르톨리 박사는 작은 규모의 지역간 경쟁으로서의 스포츠 이벤트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런 방식은 이웃 국가를 적이 아닌 동맹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베르톨리 박사는 “이는 경쟁 지역간 적대감을 높일 수 있지만 이웃 국가간 대립을 최소화함으로써 부정적 정치 여파를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긴장을 가진 국가간 경기는 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최고 지도자들이 공격적 대외 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민족주의 정서를 이용하는 경향을 보이는 국가들의 주요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를 막는 방안도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에 대한 침략 등으로 국제적 비난에 처한 푸틴 대통령이 국내 여론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2018 월드컵 개최를 허용한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베르톨리 박사의 의견이다.
하지만 스포츠 이벤트가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자리잡은 오늘날, 국가간 펼쳐지는 빅 이벤트로 인한 분쟁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이를 막기에는 너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압도적이다. 사실 월드컵 대회 하나만으로 창출되는 경제적 효과는 수십 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를 주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기업 스폰서, 중계료 등으로 엄청난 수입을 챙기며 개최국은 개최국대로 관광객 수입, 지역경제 활성화(올림픽은 한 ‘도시’ 이름으로 개최되는 반면 ‘국가’ 이름이 붙어 해당 국가 전역에서 열린다), 게다가 국가 이미지 등 엄청난 플러스 알파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이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