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언론 무엇으로 사는가
오늘날 우리는 어느때보다도 상호의존성을 특징으로 하는 운명공동체적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국가와 국가, 사회와 사회의 상호의존성은 더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가, 민족, 조국, 모국 등의 의미는 엷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 체제인 국가의 의미가 엷어졌다고 해서 문화적 공동체의 긴밀한 연대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모국과의 문화적 연대가 심화하면서 무분별하게 뒤섞이는 멜팅팟 공동체가 아닌,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다문화적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750만 재외동포들은 모국의 문화적 정체성 유지를 위한 자산이며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외언론은 100여년 이상 동안 두 문화권 속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들에게 전통문화 계승을 통한 정체성 유지에 앞장서 왔습니다. 최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케이 컬쳐(k-culture) 파워도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외언론이 동포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것은 이뿐 아닙니다. 차별이나 부당 대우 등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재외동포 참정권, 이중국적 문제, 동포청 설립 등과 같은 정책적 이슈가 있을 때, 모국의 재난을 돕거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우주적 재난에 대처하는데에도 의제설정을 주도해 왔습니다.
재외언론은 동포들의 주류사회 정착에도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이질적인 타 문화권에 새 구성원들이 들어왔을 때 겪게될 문화적 충격과 괴리감을 해소시켜서 무리없이 안착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정보를 제공해 왔습니다. 재외언론은 이 같은 역할들을 통해 동포사회의 결속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재외인론은 새로운 언론환경에서 도전적인 과제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은 본토인이 생각하지 못하고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에서 열려 있습니다. 통제되고 길러진 주류사고를 벗어나서 언론 본연의 자세로 뉴스를 제공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것은 재외언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면서 창조성과 독립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현재 한국의 주류 미디어를 포함한 기존 언론은 자기인식과 정체성의 회복이 절실하게 요청될 정도로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실의 왜곡은 물론이고 진실을 찾기 위한 몸부림은 가뭇없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재외언론이 갈 길은 자명합니다.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는 일, 재외언론이 나서야 합니다. 진실추구의 주체로서 재외언론은 아예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답을 얻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별다른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실의 문은 질문하는 자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진실추구가 언론의 '통시대적(通時代的)' 역할이라면, '지금, 여기서'의 시대적 부름에 응답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도 있습니다. 고착화된 어떤 흐름 속에서 다수 대중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불의와 부정의와 불합리가 수십 년 동안 우리땅에서 횡행해 왔다면, 이에 항의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언론이 마땅히 해야할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재외언론은 지난 세월 나름의 소명의식을 갖고 우리민족의 불행 앞에서 몸을 던져 일해온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극한 환경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조국이 엄혹한 독재체제 아래 있을 때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지금 재외언론의 시대적 사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조국의 평화통일에 관련된 일일 것입니다. 민족화해와 분단극복이야말로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하늘이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내린 과제이자 재외언론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풀어내야 할 최대 현안이라 하겠습니다.
재외언론은 해온 일, 하고 있는 일, 하려고 하는 일에 비해 인정도 격려도 지원도 없지만 꿈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실추된 언론인의 정체성 회복, 분단극복의 마중물이 되는 꿈을 꾸어 봅시다. 지금이야 망망대해에 투망던지기 같은 일일 것이지만, 역사는 꿈꾸는 자들에 의해 진보한다고 믿습니다.
- 세계한인언론인협회 -
회장 김명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