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슈 부각 없이 '문화전쟁'에 몰두, 지나친 자만도 패인
<올랜도센티널>의 칼럼니스트 스콧 맥스웰은 디샌티스의 극적 사퇴 직후 "이 붕괴가 얼마나 서사적이었는지를 과장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썼다. 일반 미국인들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과 그에 따른 퇴조 과정을 적나라 하게 목격하고 있었다는 표현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론 디샌티스는 차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월스트리트는 그를 적극 지지했고, 공화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초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는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도널드 트럼프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불과 8개월 전만 해도 디샌티스의 선거 자금은 트럼프의 두 배에 달했다. 하지만 론 디샌티스에게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당원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는 엉뚱하고 자격지심이 많았으며 화를 잘 냈다. 사실 분노는 일부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갈망하는 자질이다. 대중을 격동시키고 현안을 드러내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샌티스는 "디즈니 월드와 같은 이상한 것"에 화를 냈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자 혐오 정책을 꼬집은 디즈니에 즉각 반격하고, 디즈니가 계약을 맺어 수십 년 동안 자치 통제를 해온 올랜도의 리디크릭 지구를 주정부 관리 시스탬으로 돌려놓는 보복을 감행했다. 플로리다는 물론 전국의 여론은 디샌티스의 오기를 좋게 여기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경제를 놓고 다투는 동안 디샌티스는 워크니즘(wokeism)에 대해 외치고 있었다. 워크니즘은 그가 주도한 '스톱 워크(WOKE)법'과 궤를 같이 한다. 스톱 워크법은 학교와 직장에서 성·인종·종교·출신국에 따른 구조적 차별의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학생 등이 죄책감을 갖도록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 졌다. 디샌티스는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구조적이 아닌 개별 사안으로 보았다. 드랙퀸(drag queen)에 대한 그의 부정적 태도도 마찬가지다. 드랙퀸은 엔터테인먼트를 목적으로 여성 성별 기호와 성 역할을 모방하고 종종 과장하는 드랙 의상과 화장을 하는 사람이다. 현재의 드랙퀸은 동성애자 남성과 동성애자 문화와 관련이 깊지만 어떠한 젠더나 성별 정체성도 드랙퀸이 될 수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좋아할 정도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그는 이같은 엔터테인 문화를 '불온한' 것으로 비난했다. 디샌티스의 선거 운동 팀은 이 모든 것들이 보수층을 겨냥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의 공화당원들은 그의 말썽 많은 '문화전쟁'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스콧 맥스웰은 "디샌티스의 이같은 전략은 플로리다에서 통했고, 그는 주류 언론으로부터 숨어 주로 웹사이트를 가진 친 디샌티스 의원들과 치어리더로 가득한 거품 속에서 존재할 수 있었다"라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대통령 후보가 가끔씩 긴 바지를 입고 심각한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정작 국민들의 실생활에 관련된 정책 이슈보다는 이미지 메이킹을 겨냥하여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디샌티스를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대한 정책 사안 관련, 언론 기피한 디샌티스 디샌티스는 주요 정책 사안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는 진지한 기자들을 피해 숨어 다녔다는 평을 듣는다. 워싱턴의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디샌티스는 모든 것을 공개했어야 했다"라며 "그는 뒤늦게 반언론 전략을 후회하고 있다"라고 디샌티스의 대 언론전략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디샌티스가 후보 사퇴 발표를 하면서 트럼프를 지지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장래가 그리 밝지 않을 것으로 점친다. 맥스웰은 "많은 정치인이 당선을 기대하지 않고 첫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시작한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다음 선거를 위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한다. 하지만 디샌티스는 시작보다 더 나쁜 성적으로 선거를 마쳤다"라며 이번 선거과정에서 디샌티스의 정치적 자산이 크게 훼손됐음을 지적했다. 2년 전만 해도 디샌티스의 기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고, 1년 전까지 그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다. 디샌티스가 그동안 플로리다 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모두가 놀라고 있었다. 1년 전 그의 선거대책위원회는 48%의 득표율로 선두주자라고 주장했으나,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그의 지지율이 8% 미만으로 떨어졌다.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 것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디샌티스의 인기가 급전직하로 떨어진 연유는 무엇일까. 우선 드샌티스의 지나친 자만이 인기하락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정치 평론가들은 디샌티스가 이상해지고 있는 조짐을 보인 것은 지난 주지사 재선 때부터였다고 믿고 있다. 디샌티스는 자신이 무적이라고, 거의 신과 같다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디샌티스와 그의 아내는 2022년 11월에 신이 주지사 선거의 승리를 가져다 주기 위해 디샌티스를 지상에 내려놓았다고 믿는다는 내용의 2분짜리 동영상을 띄웠다. "신이 투사를 만들었다(God made a fighter)"는 기괴한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뒤이어 트위터 스페이스(Twitter Space) 캠페인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디샌티스는 친분이 두터운 트위터의 회장인 일론 머스크를 동원하여 트위터로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을 극적으로 만들려다 기술적 문제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망신을 자초했다. "미국을 플로리다로"?... 검열과 통제로 일관한 디샌티스 그 후 디샌티스는 "미국을 플로리다로 만들기(Make America Florida)" 전략을 시도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선샤인 스테이트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답은 '아니오'였다. 트럼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플로리다 보험료를 거론하며 "누가 그걸 원하겠나?"라고 디샌티스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이후 보험 정책은 물론 주요 현안에 대해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마디로 플로리다의 주요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미국을 다스리겠느냐는 것이다.
플로리다 각 카운티 교육구들이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치우고, 주 정부가 직원 교육부터 소셜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민간 기업의 사업 운영 방식으로 처리하려 든다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기본적으로 검열과 정부의 강력한 통제는 보수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디샌티스는 놓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중요한 패인이 또 있다. 디샌티스는 원래 '혼란에 반대하는 후보'로 출마했다. 특히 종잡을 수 없고 돌발적인 성격의 '허리케인 트럼프'에 지쳐 안정을 갈망하는 월스트리트 임원들에게 디샌티스는 꽤 괜찮은 대항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플로리다를 바라볼수록 '허리케인 론'(디샌티스)도 '허리케인 돈'(트럼프)만큼이나 혼란을 가져오는 후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선거 자금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디샌티스는 마지막 절망적인 단계에서 자신을 인기 정치인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 주제를 끄집어 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면서 앤서니 파우치와 맞대응한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마스크 문화'가 도입된 상황에서 그의 '공적'은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디샌티스는 플로리다 유력자들의 지지조차 얻지 못했다. 디샌티스가 사퇴를 발표하기 직전 마르코 루비오와 릭 스콧 연방 상원의원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발표하자 그의 사퇴는 기정사실화 되고 말았다. <올랜도센티널>의 스콧 맥스웰은 '출발은 장대했으나 끝은 미약한' 디샌티스의 대권 도전을 이렇게 표현했다. "현실이 분명해졌다: 디샌티스 2024 캠페인의 최고의 순간은 시작도 하기 전이었다(And the reality became evident: The best moments of the DeSantis 2024 campaign were before it ever beg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