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강연 특강’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차세대들에게 인지시켜 주고, 대한민국의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끌어낸 것은 의미있는 일로 평가된다.
헌법 제 68조에 명시된 평화통일 정책자문기관으로서 1980년에 범국민적 통일기구로 설립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국민의 통일의지와 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하는 시대적 상황과 국민적 여망으로, 특히 다변화하는 주변국의 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통일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초당적, 범국민적 차원에서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는데 필요한 자문기구의 역할을 하고있다.
2015년 7월에 출범한 17기 자문회의 위원으로서, 지난 차세대PT대회에 참가한 차세대 젊은이들의 또렷하고 곧은 사고의 발표를 들으면서 한인들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차세대들을 위한 특강을 통해, 세계에서 한국과 한국인들(Korea and Koreans)의 위치를 먼저 살펴보고, 간단하게 한국의 역사에 대하여 살펴본 뒤에, 왜 우리는 분단국가가 되었으며, 통일을 논할 때, 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많은 지리책이나 역사책에서 “한국 Korea” 라는 지도를 찾으면, 남한만의 지도를 만들어 보여주는 곳은 없다. 그렇게 생긴 지도를 보면 대한민국 출신 한인들은 지도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한국 지도는 한반도라고 하는 동아시아 북쪽에 자리잡은 반도로서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 제 1장 3조에 따라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포함하여, 남한과 북한을 모두 포함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르면, 북한정부는 대한민국의 영토의 일부를 무력으로 점유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Korea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K-Pop을 위시한 한류 문화의 나라, 휴대폰, 자동차 등 첨단 산업의 수출국,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 지금 이 가을에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단풍의 금수강산과 문화유적지들의 나라 한국.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 한국은 아직도 한반도의 반쪽인 남한에 불과하다.
한국 사람들은 남한에 5000만명, 북한에 2500만명 인구를 포함하여, 중국에 250만명, 미국에 200만명, 일본에 90만명 등을 위시하여, 프랑스의 1만4천여명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약 700만 여명의 해외거주 한인들이 살고 있으며, 총 8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한국인의 언어를 사용하고, 한국문화를 공유하며,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살고 있다.
이러한 한국인들이 단군조선(고조선) 에서 시작하여, 삼국시대, 남북국시대(발해와 신라), 후삼국시대를 거쳐 918년 고려로 통일이 되었고, 1392년 조선 건국까지 474년, 그리고 1897년 대한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505년, 일제 강점기의 1910년까지 대한제국의 13년 등, 고려시대 이후로도 1000여년의 세월을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살아왔다.
그러나,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잠시,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것과는 별개로, 동아시아의 요충지역인 한국은 전쟁을 일으키고 패망한 일본 대신에 미국과 소련의 군정을 시작으로 남북으로 갈리어, 급기야는 1948년 서로 별도의 정부를 설립하였고, 1950년 6월 25일 동아시아 30년 전쟁의 연장선에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한 일이지만, 동아시아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또 그만큼 부각되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국전쟁의 초기에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갈고 닦은 전쟁 경험을 내세운 북한군은 전쟁 시작에서 불과 3개월도 안되어 부산 일부지역을 남기고는 거의 전 한반도를 점령하였지만, 이어진 1950년 9월 15일 UN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의 결과, 11월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바라보는 지역으로 전선이 북상하여 연합군에 의한 남북통일이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공산화된 중국이 북한군에 추가로 약 50만 여명의 군대를 투입, 인해전술이라는 이름을 남기며 전쟁의 역사를 바꾸었다. 1950년 말, UN 연합군은 중국/북한 합동군에 밀려 후퇴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이 다시 북한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로부터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하여, 연합군과 북한/중국 군의 뺏고 빼앗기는 지진한 고지점령 전투들이 무수히 이어져 엄청나게 많은 사상자들을 만들게 되었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에 북한군과 중국군 그리고 이에 대치하여 UN 연합군의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을 한 이후, 한국은 남북간의 전쟁이 잠시 휴전된 상태로 60년이 넘는 기간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듯,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1970년대 초까지, 남북한은 모두 아프리카의 잠비아, 짐바브웨, 가봉 등의 나라보다도 못사는 나라로 남아있었으나, 70년대 산업화를 계기로, 남한은 획기적인 경제발전을 시작했다.
이후, 40여년간의 경제발전의 결과, 남한은 5천만의 인구에 연간 국민소득이 25000불이 넘는 국가가 되었고, 평균수명도 80세까지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다만, 공산진영의 붕괴와 함께 경제발전의 기회를 상실하고, 대내적으로는 1인독재권력의 상속을 위하여 국민들의 자유를 심하게 구속한 북한은 1970년대 이후 경제의 규모로나 인구증가 또는 평균수명의 증가율이 모두 남한에 한참 뒤처지게 되는 심각한 남북간의 불균형을 초래하였고, 급기야, 2014년 통계에 의하면, 연간 국민소득이 남한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독재국가의 인권유린 상황을 겪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북한을 탈출하여 외국으로 망명하는 정치적, 경제적 피난민들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통계청에 의하면 2009년까지 총 18000여명의 북한인들이 피난민으로 북한을 탈출하였다고 한다.
2015년의 오늘, 남북으로 분단이 된 한반도와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에게 과연 통일이란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일까? 이곳, 유럽, 특히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한국의 남북한 통일은 어떠한 결과를 갖고 오는 것일까?
우선, 앞서 간단한 역사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한국은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나의 나라에서 살며 하나의 문화와 언어, 습관들을 만들어온 민족이다. 단순히 60여년 간 떨어져 살았다고, 우리의 언어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바뀐 것이 아니며, 여전히 함께 밥과 김치와 매운 한국음식을 먹으며, 한국무용을 감상하고, 한국의 음악을 즐기는 공통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을 것이다.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같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하나의 사회인 것을, 이를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분단선은 치워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합쳐진 하나의 대한민국은 만주벌판과 시베리아 평원을 넘어 멀리 유럽까지 육로를 통하여 유럽과 아라비아 반도까지 갈 수 있는 드넓은 한국인들의 활동무대를 만들 것이다. 그래서, 남한이 더 이상 하나의 작은 섬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도약의 국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전쟁 이후로 6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떨어져서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생이별의 시간을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나가 된 한국은 단순히 가족들이 함께 모인 행복한 국가를 넘어서서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인권이 신장되어 더욱 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에는 전쟁의 위협이 없어지면서, 전쟁준비와 물자에 투자되던 자원들이 복지사회의 구성을 위하여 재투자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평화로운 목적의 일자리들이 또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하나로 통일된 사회, 그곳에서 현재 남한의 기술과 자본이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이 합쳐질 때 한국은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이면서, 또 한번 세계인들이 놀라는 도약의 국가로 발전할 것이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인으로서, 우리 모두 한국의 통일을 위하여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주변에 프랑스인 친구들을 설득하고 한국의 통일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주지시켜, 한국이 통일논의를 할 때에 든든한 우방국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통일 사례를 공부하고, 이러한 통일관련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그리고, 다시 평화로운 세계의 진정한 세계인으로 더욱 더 발전해가는 프랑스 한인사회를 기대해본다.
-최경일 박사(평통17기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