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진출한 배우 김경수를 보며-

 

 

Newsroh=앤드류 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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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방영되는 TV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어 편리한 세상이다. 한국의 최근 TV드라마들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발전했다. 여전히 진부한 소재와 예측 가능한 플롯으로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들도 상당수지만, 진지한 문제의식이 담긴 메시지를 드러내면서도 대중적인 흥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다른 차원의 드라마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몇년 전이지만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계약직 사원의 대기업 내 생활을 통해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기준 그리고 성공과 정의가 상극에 서 있는 현실을 진지하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터치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원작(웹툰)이 갖는 드라마의 잘 짜여진 구성도 좋았지만 종합상사 내 직원들과 상사들의 익숙한 갈등과 작지만 인간적인 배려 등을 현실감 넘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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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출연진

 

 

최근에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코믹 속에 진지함을 담은 드라마도 많은 화제를 뿌리며 시청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회와 격리(隔離)되어 당연히 문명적인 혜택들로부터도 소외된 수감자들이 폐쇄된 감옥 속에서 나름의 지혜와 생존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내용은 그 자체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아이디어 자체가 성공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고 작가는 개연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상상력을 풍부하게 담아내 전개 상의 성공 또한 이루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감옥에 가게 한 사회적 부조리와 부당함을 역시 너무 무겁거나 비장하지 않게 보여줌으로써, 한편으로는 희생자이기도 한 그들의 비애(pathos)를 웃음 속에 잘 감춰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평할만 하다.

 

구체적으로 시청률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에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역사 드라마가 눈길을 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착상 자체가 기발하다기 보다는 왜 저런 생각을 진작에 하지 못했나 드라마 창작자들은 생각했을 법하다. 개화기 조선시대에 천민으로 태어난 노비의 자식과 천민 중에서도 천민이었던 백정의 자식이 각각 끔찍한 부모의 최후를 목격하고 미국과 일본으로 도망친 후, 한 사람은 미국인 장교로 또 하나는 일본인 무사로 다시 조선 땅을 밟는 내용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 타고난 신분 때문에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아가며 양반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부모를 목격해야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야 했던 그들에게 있어 ‘과연 조국이란 무엇인가’라는 합리적 물음을 작가는 던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조국이 단지 조국이라는 이유로 충성을 바쳐야 할 당위성을 주고 있는가하는 물음이다.

 

이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작가의 착상과 극의 전개 능력이 뛰어나고 TV드라마라는 대중성을 넘어서는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런 장점들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연출의 역량이 훌륭했다는 공통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 세가지 장점보다 어쩌면 더 결정적일 수 있는 성공요인을 다뤄보려 한다.

 

이 세 드라마가 갖는 공통의 성공요인은 바로 출연 배우들의 연기다.

 

‘미생’에서의 이성민(오차장 역), 김대명(김대리 역), 김종수(김부장 역) 등은 요즘말로 역대급의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신 분들이 가장 뚜렷이 기억할 배우는 단연 박호산이리라 여겨진다. 문래동 카이스트라는 인물로 출연해 혀짧은 소리로 코믹함도 선사했지만,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회한(悔恨) 가득한 연기로 단연 돋보이는 역을 만들어 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이어 출연한 ‘나의 아저씨’에서 박호산은 마치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해 내 폭 넓은 연기력을 증명해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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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는 이병헌이나 유연석 같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스타들도 출연하지만 묘미를 살려주는 배우들은 단연 조연급들이다. 그 중에서도 김병철(일식이 역), 이정은(함안댁) 등이 단연 돋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배우들에게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와 상통한다. 소위 ‘연기 잘한다’는 평가를 받은 배우들, 대중적으로 인지도는 높지 않아 시청자들이 ‘저 배우 누구야?’ 했을 법하지만 연기만큼은 기막혔던 이들은, 하나 같이 연극무대에서 이미 이름을 떨쳐 온 배우들이다.

 

이제는 대중적인 스타가 된 이성민은 극단 차이무 등에서 주로 활동하며 연극을 자주 찾는 관객들에게는 잘 알려진 배우였다. 80년대 중반부터 무대에 서 온 그가 TV드라마를 통해 대중에게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던 사실을 보면, 이성민은 20년 넘게 연극 무대에서 연기력을 갈고 닦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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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산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박호산 역시 정통 연극배우 출신이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재학시절(90년대 초)부터 꾸준히 무대에서 서 온 그는 2010년대 중반부터 TV에 얼굴을 보이기 시작해 지금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배우가 됐다. 수십편의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며 그는 이미 수많은 연극 관객들에게 명연기를 보여줘왔다. 연극은 영화나 TV드라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야 하고 출연하는 작품도 고전에서 동시대 작품까지 넓은 범위를 넘나 들어야 한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배우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역을 고르는 영화나 TV와 연극무대는 그 토양부터가 다르다. 이성민이나 박호산은 20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 동안 다양한 연극 작품에서 수많은 인물들을 연기하며 내공을 쌓았고, 그 결과로 요즘 TV와 영화에서 외모 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연기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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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성과 박호산

 

 

독자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잠깐 곁길로 들어서서 한가지만 덧붙이려 한다. 글의 논지와 전혀 무관한 것 같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연극계를 중심으로 미투운동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어느 신문에서 읽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신원호PD가 발굴한 연극계, 성추문으로 스스로 추락’

 

연극배우들의 TV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때에 미투운동이 이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논조로 써내려 간 기사였다. 신원호라는 피디가 연극 배우들을 대거 ‘발굴’해 TV드라마에 출연시키고 그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줘 ‘믿고 보는 연극배우’라는 인식을 심을 즈음 ‘몇몇 배우들과 연출진이 제 살을 깎아 먹었다’는 게 그 기자의 주장이었다. ‘연극계는 성추문으로 얼룩진 곳으로 전락’했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나름 열변을 토한 기사였다.

 

기자의 견해에 대해 길게 논하거나 반박할 마음은 없지만 기자의 인식, 아니 자칫 일반적인 인식일지도 모를 한가지는 지적하고 싶어진다.

 

‘발굴’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꺼내들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발굴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찾아내 빛을 보게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마도 무명의 연극배우들에게 신피디라는 분이 기회를 주고 있다는 의미로 쓴 말이려니 여겨진다. 그러나 연극배우들이 발굴의 대상이라는 발상은 어떤 오만방자함에서 비롯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없으면 무명이고 발굴의 대상인가?

 

간단한 예를 들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출연하는 테너가 있다. 클래식계에서 뛰어난 실력과 명성을 얻지 않으면 설 수 없는 곳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다. 이런 테너가 어느 작품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오페라 팬들은 그 공연을 보기 위해 몇달 전부터 티켓을 예약한다.

 

그런데 그 테너가 뉴욕의 길거리에 나가면 장담컨대 그를 알아보는 사람보다 몰라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사를 쓴 기자에게 이 세계적인 테너는 발굴의 대상인가?

 

연극공연을 즐겨 찾는 사람들에게 이성민은, 박호산은 이미 연기 끝내주게 하는 유명배우요, 기자의 표현대로 ‘믿고 보는 배우’였다. 돈을 더 벌기 때문에 연극배우가 영화나 TV로 진출하면 ‘발굴되어 드디어 빛을 보는 셈’이라는 논리라면… 그냥 필자가 진 것으로 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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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주

 

 

사실인 즉, 신원호 피디가 ‘발굴’했다는 연극배우들 훨씬 이전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들은 이미 연극무대를 통해 배출됐다.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배우들의 대부분은 연극무대 출신’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해, 명실공히 세계 정상급 배우의 반열에 오른 손현주도 영화배우이기 이전에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극찬 받는 연극배우였다. 그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던 해에 국립극장 무대에서 연기한 햄릿은 아직까지도 전설처럼 후배 배우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손현주는 이후로도 오랜 시간 연극무대에서 누구에게나 인정 받는 배우였다. 그의 연기는 그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오래 전부터 이미 명연기였다는 것이다.

 

비단 손현주 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명배우들이 어느 한 피디의 발굴이 있기 훨씬 전부터 연극무대를 통해 내공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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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영화를 통해 유명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자주 무대에 서는 배우들 또한 많다. 그들에게 영화나 TV는 그냥 다른 쟝르의 연기를 하는 것이고 직업의 일부요 연장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나 TV에 출연 못해서가 아니라 무대가 좋아 연극을 하다보니 대중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 또한 부지기수다. 그들에게는 연극이든 TV든 영화든 그저 ‘선택’일 뿐이다.

 

최근에는 연극배우들이 더 높은 단계의 연기를 공부하기 위해 또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예도 심심치 않게 본다. 연극무대에서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배우들이다. 뛰어난 연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싶어하는 젊은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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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필자가 뉴욕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보니 이런 배우들을 만나는 행운을 종종 누린다. 최근들어 필자에게 이같은 행운을 안겨준 배우는 단연 김경수다. 뮤지컬 배우로, 연극배우로 대학로를 누비다가 연기 공부를 위해 뉴욕에 건너온 배우 김경수는 뮤지컬 공연과 갈라쇼, 콘서트 등을 통해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연기력은 연극무대가 배출한 최고의 선배 배우들이 그렇듯이 ‘믿고 볼만한’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배우로서의 활동도 주목할만 하지만 노래 실력도 뉴욕의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이미 많은 콘서트나 갈라쇼 등에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최근에는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성악가들과 크로스오버 공연에 출연해 음악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활동영역의 확장(擴張)을 이루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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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병' 김경수

 

 

김경수는 이미 한국에서 여러편의 화제작들에 출연하며 연극 팬들에게는 잘 알려졌다. <보이첵>, <브루클린>,<자살자>,<울산의병>등 여러편의 연극과 뮤지컬에서 주연을 맡아 높은 평가를 받았고, TV드라마에도 출연한 바 있다. 특히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연극 <자살자>는 작품과 연출 그리고 김경수라는 주연배우의 연기가 잘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평론가들에게 호평 받았다. 뿐만 아니라 K-POP 스타들의 공연에도 찬조 출연해 가창력을 검증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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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는 또 뉴욕에 온 후 극단 MAT의 창작 뮤지컬 <아버지의 초상>에서 역시 주인공 지천명 역을 맡아 이 작품의 미국 내 한인극단 최장기 공연(60회) 기록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인 몫을 했다. <아버지의 초상>을 직접 쓰고 연출한 입장에서 ‘뉴욕의 한인 연극계를 김경수 이전과 이후로 나눠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배우’라는 헌사(獻辭)를 굳이 망설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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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스테디셀러로 순항중인 창작뮤지컬 '아버지의 초상'

 

 

김경수는 이외에도 이노비의 자선공연이나 대규모 한인단체들의 갈라쇼, 베네핏 콘서트에도 초청돼 활발한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TV나 영화 등에 출연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은 무대를 즐기고 더 많은 것을 무대에서 배우고 싶다고 한다. 그는, 손현주, 이성민, 박호산 같은 연극무대 출신의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들처럼 이미 ‘명배우로의 험난하지만 옳은 길’에 들어서 있는지 모른다. 한사람의 연극 팬으로서, 김경수가 영화나 TV로부터 ‘발굴’ 당하더라도 오래 오래 연극무대 역시 ‘선택’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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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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