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평화이야기 103-104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사막에서도 운이 좋으면 노랑나비를 볼 수 있다. 사막의 야생화 향기가 날아 나비를 유혹(誘惑)한 걸까? 아무도 노랑나비에게 사막의 삭막함은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비는 사막이 벼가 익어가는 황금빛 들녘인지 싶었나보다. 나비는 이곳에 진한 그리움을 찾아 날아들었다. 황량한 사막의 노랑나비가 애처로워 보이지만 외롭고 고된 여행길 길동무가 되어주니 여간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저 노랑나비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건 아주 오래되었다. 아마도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인지도 모른다. 노랑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 아래 꽃들이 만발한 길을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지만 그건 언제나 현실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좌절감만 주었다. 그래도 나는 아침이면 혹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나지 않을까 옆구리를 움찔해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번데기의 시간은 아주 오래 걸렸다. 아마도 내가 찾아가는 우리 할아버지처럼 단명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번데기로 생애를 마쳤을지도 모른다. 번데기처럼 꿈틀거리며 1만 1천여 km를 넘어서 만리장성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오랜 시간 번데기로 존재하면서 나는 날개를 활짝 펼 힘과 용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막에서도 운이 좋으면 나비를 볼 수 있다. 나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향기를 가슴에 품었다. 처음 나의 평화에 대한 그리움은 아주 미미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작은 그리움이 유라시아를 달려오면서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막의 야생화처럼 소박한 꽃도 피우지 못했다. 대나무 밭에서 잘려나간 퉁소가 음으로 대나무 밭을 그리워하듯 내 발길의 사무침이 향기가 되었을 것이다. 세 마리의 나비가 오아시스의 도시,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중간에 있는 장예(張掖)로 날아들었다.
장예라는 지명은 곽거병이 흉노를 몰아낸 후 한무제가 ‘흉노의 팔을 꺾고 중국의 팔을 펼치다.’라고 했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은 감초가 특산물로 감주라고도 불린다. 치렌산(祁連山) 설봉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보이고, 그 아래 사막 한가운데는 장예의 푸른 갈대가 있다. 이 무성한 습지대는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곱 빛깔 무지개의 바위산 단샤(丹霞)와 중국에서 가장 큰 와불이 있다는 대불사는 피곤한 몸으로 구경할 수 없었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도시 중 하나일 것이다.
바람과 비가 저 예술품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정성을 다했을까? 바다 깊은 곳이 땅으로 솟은 단층 지형이 오랜 시간 풍화와 퇴적을 거치며 겹겹이 쌓인 지구의 시간을 색으로 칠해놓았다. 붉은 사암이 노을처럼 빛난다하여 단하지모(丹霞地貌)라 이름 붙였다. 일곱 빛깔 무지개 색을 띤다하여 칠채산(七彩山)이라 부른다. 무지개가 땅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이 신비롭다. 오죽했으면 마르코폴로가 이곳 장예의 장엄한 경관에 반해 1년간 머무르고 갔을까.
원불교의 김선명, 원익선 교무님과 구한이 학생이 먼 곳에서 외로이 달리고 있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려 찾아왔다. 내가 그리도 먹고 싶어 하던 도가니에 김치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도가니탕에 하얀 쌀밥을 말아 김치를 얹어 먹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이 그리웠다. 홀로 오지(奧地)와 같은 유라시아 길을 달린다는 것은 많은 결핍을 강요받는다. 그 중에서도 애정의 결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최초의 의지를 갉아먹는다. 군대 생활할 때 생각이 난다. 난 그때 날 면회와주는 여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었다. 아무도 나를 면회와 준 여자는 없었다.
원불교는 ‘평화의 종교’이다. 세상의 어느 종교도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종교가 없지만 원불교는 그것을 실천으로 보여준다. 김선명 교무님이 이 먼 곳까지 와서 내게 내려준 법어는 “진리는 하나, 세계는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다. 내가 유라시아대륙을 거의 일 년 가까이 달리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니 백 년 전에 우리 선진님은 이미 이 새로운 세상을 갈파하셨으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자칫 방심하면, 앞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는 지금보다 더 불평등하고 더 독재적인 국가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자신들 사리사욕만 채우는 탐욕에 가득한 세력들이 자라기 좋은 토양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천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기반을 굳게 다지고 평화의 길을 다져야 하는 이유이다. ‘평화의 길은 없다. 평화가 바로 길이다.’
원익선 교무님은 눈물을 흘리며 내 노고를 위로해주셨다. 이곳에서 일으킨 나의 작은 날개바람이 평화의 태풍이 되고 있다고 높이 칭찬해주셨다. 나비효과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이런저런 상황을 거치고 거쳐서 태풍까지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한 인생의 작은 변화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기는지 나는 스스로를 통해서 체험하고 있다.
남북 평화통일이 세계통일, 인류공영의 첫 시발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통일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 지구에 아름답고 신비한 태풍으로 온 세상 기본질서를 모두 날려 보내고, 새로운 개벽시대를 펼쳐나가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평화의 향기를 끝없이 퍼뜨리는 꽃이고 싶다. 나는 오늘도 작은 날갯짓으로 42km만큼 평양과 서울에 가까워졌다. 사람들 가슴 속에서 북소리처럼 울리는 그 심장 박동(搏動)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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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내가 가는 길이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덧 7월 말이다. 하루하루 피로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사막의 무더위 속에서 몇 달을 달리다 보니 이제 기력이 많이 쇠해졌음을 느낀다. 눈을 뜨고 길 위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진다. 오늘은 또 어떤 낯선 길에서 이 무더위와 체력의 고갈과 고독을 견디며 앞으로 나갈까? 지금 무위(武威우웨이)를 향해 달리면서 노자의 무위(無爲)를 명상한다.
중국은 신 실크로드의 전략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일환으로 이곳 신장, 간쑤 성 일대의 도로를 선진국 수준으로 잘 포장해놓았다. 도로는 선진국 수준인데 자동차문화가 오래지 않아 운전자들의 수준은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내가 달리고 있는 312번 국도는 상하이까지 5300km나 뻗어있는 중국의 척추와 같은 도로이다. 그 옆으로 고속도로도 잘 깔려있다. 그런데 고속도로 요금이 비싸니 중국의 화물차들이 거의 이 도로를 이용한다. 중국의 화물차는 그 어느 나라에서 본 화물차보다도 길고 큰 공룡 같다.
이 국도는 아직도 건설 중이어서 중간 중간에 비포장도로로 연결되는데 이런 차들이 그런 길을 한번 지나가면 먼지구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버섯구름보다도 더 고약하게 일어난다. 내가 이곳에서 뒤집어쓰고 들이마신 먼지는 그 이전에 것을 모두 합해도 모자를 것이다. 중국에는 전기 자전거와 전기오토바이가 많이 보급되어 웬만한 서민들은 이것을 이용한다. 고속도로를 달려야할 화물트럭이 국도의 마을을 지나면서 울려대는 경적소리는 저승사자의 노랫소리보다도 치가 떨릴 지경이다.
달리면서 길 위에서 우주의 원기(元氣)를 받아들여 그 기를 보존하고 신령한 기와 일체가 되도록 하는 정신수양과 몸의 수련을 쌓아 내 스스로 이제는 반 도인이 다되었다고 자부를 하는데도 저 화물트럭과 버스의 경적소리에 치를 떠는 걸 보면 난 도통하기는 애초에 싹수가 노란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일상에 아무 표정이 없는 중국인들이 다 도인(道人)들 같다. 아마도 이들에게 노자와 장자를 비롯한 훌륭한 스승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생각한다. 이런 길 아무데나 트럭을 세워놓고 웃통을 벗고 트럭 밑에 들어가 낮잠을 즐기는 모습은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바로 저런 거구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창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고, 방패는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모순(矛盾)으로 가득한 나라 중국을 달리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급속하게 자본주의의 길을 난폭운전하며 달리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 길 어디에나 마을 어디에나 사회주의적인 구호가 어지럽게 난무한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단어는 그곳에 다 붙어있지만 나그네에게는 영혼이 없는 해골처럼 으스스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이곳엔 서구에 대한 열망과 함께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우월감이 기묘하게 공존을 하고 있다.
중국의 길을 달리며 노자의 평화의 길을 생각한다.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노자는 끊임없이 우리가 가는 길이 길이 아니고, 우리가 아는 그 이름이 옳은 이름이 아니라고 말한다. ‘거기가 길이 아니다’ 내가 달리는 이 길이란 본래 허허벌판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 말이 달리고 낙타가 지나다니고 언제부터인가 아스팔트 도로를 깔았을 뿐이다. 사물을 이름으로 한정해버리면 더 이상 본래의 그것이 아니다. 본래의 무한한 그것을 한정시켜버리게 된다.
길이 아니라 하니 가는 길을 되돌릴 수 없어도 자꾸 되돌아 생각하게 된다. 더 좋은 길은 없을까? 이 기나긴 여행 중에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배울지, 무슨 생각을 할지, 이 여행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또 어떤 사랑을 할지,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소년으로 돌아간다. 네가 가는 이 길이 실크로드라 하지말자! 피스로드(Peace road)라고도 하지 말자! 이 길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미래의 소통의 길이 될 것이며, 최고의 여행 노선이 될 것이며, 모험과 사랑을 담아내는 길이 될 것이다.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해 한발 한발 내딛는 일 그것만 하자!
도교와 유교는 중국의 사상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갈래의 물줄기이다. 도교가 카오스(chaos)적이라면 유교는 코스모스(cosmos)적이다. 도교가 예술적인 자유에 관심을 두었다면 유교는 엄격한 사회적 예절과 도덕에 관심을 두었다. 도교가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여성적이라면, 유교는 완고하고 강하며 남성적이다. 하나가 민초들의 생각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배계층의 논리를 대변한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전쟁 없이 평화롭게 잘 살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노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였다. 노자가 그리던 평화나 중국 민중들이 염원하던 평화는 임금이 누구인지, 마을 원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아무 간섭 없이 농사를 짓고 가족과 함께 등 따뜻하게 먹고 마시며 격양가를 부르는 ‘무위의 평화 상태’이다. 이러한 ‘무위의 평화 상태’를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실현하면 ‘무위의 평화 공동체’가 이룩되며, 이게 잘사는 것의 요체이다.
노자가 바라는 이상 국가는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알고 살 수 있는 작은 나라이다. 지방분권이 잘 된 지구촌공동체를 의미한다. 노자의 평화는 오로지 백성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도록 위정자들이 백성들을 위한다는 면목으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일을 벌이고 전쟁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노자가 꿈꾸던 이상적인 공동체국가는 학식이 중요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 살 것이라는 의식주 여건이 좋아지고 그래서 문화와 풍속이 좋은 평화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것이다.
노자의 평화사상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생태 위기, 자원 고갈, 인종갈등, 사회 분쟁, 정신적 불안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깨달음을 주고 있다. 달리면서 나는 끊임없이 이 길이 아닌데, 아닌데 끝없이 번뇌하며 평화의 길을 모색한다.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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