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참여하고 발안하는 직접민주제 시대 도래
제7차 직접민주주의 글로벌 포럼 로마대회 참관 기록
Omnibus Direct Democracy – by everyone, for everyone , with every one
Newsroh=이래경 칼럼니스트
필자가 ‘직접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스위스 국적의 직접민주주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Mr. Bruno Kauffmann이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하여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하는데 국민주권연구원의 상임이사 자격으로 인사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계기를 통해서다. 강연 내용이 상당히 신선하여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의 느낌을 4월 6일자 프레시안에 “직접민주제 – 시민발안과 국민투표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서 소상히 밝힌바 있다. 당시 내용 중 핵심부분 몇 군데를 다시 아래로 옮겨 본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일상의 뉴스를 접하면서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할 입법기구로서 국회의 모습과 정치적 행보가 대단히 실망스럽고 잘못되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현재의 국회는 태반의 의원들이 이명박근혜 9년의 시절에 배태되고 형성되어 온, 달리 말하면 이명박근혜라는 사악하고 무능하고 부패하고 반역사적인 정권들을 묵인해온 공범적인 구조 속에서 구성되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박근혜가 탄핵되고 이명박이 구속되면서 이에 책임을 져야 할 현재의 정치구도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규범적 정당성을 상실한 상태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가능했다면 국회는 당연히 해산을 했어야 하며, 새로이 총선거를 실시하여 시민들의 손에 의해 재승인을 받거나 교체되었어야 할 심판의 대상이어야 한다. (중략).
바람직한 한국정치의 미래 모습은 민주당이 원래 뿌리대로 합리적인 보수정당으로 역할을 자임하면서, 파트너로서 변혁지향적인 진보적 정당이 힘차게 출현하여 자유한국당과 역사적 임무의 교대를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다. 썩은 물은 갈아내고 실패한 기업은 퇴출시켜야 하듯이, 이제 자유한국당이 정치의 장에서 조속히 사라지고, 이를 갈음하는 젊고 미래지향적이며 실험적인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생각한다. 헌정적 약점에 의존하여, 비루하게 버티어 남은 수구적 반시민적 정치세력들이 헌법 개정의 절차상 주체로 작동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모순이고, 자연스레 이들은 다가올 총선에서 반드시 징벌되고 제거되어야 마땅하다. (중략)
현재 한국정치에서 시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출방식은 대의적(representative) 민주제라고 평가 할 수 없다. 유권자의 분포를 비례적으로 반영하는 다원적 기능이 제거된 소선구제의 일인 독식제도에 더하여, 정책 정당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심한 이름뿐인 사적 정치 집단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의 희망과 요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과 이권 그리고 특혜적 지위를 지키는 데 연연하는 것이 대체적인 한국 정치의 모습이다. 더구나 10년을 못 넘기며 예외없이 정당의 이름이 바뀌는 꼬락서니에 더하여, 대의민주제의 전제가 돼야 할 선출직 공직자의 선공후사(先公後私)적 복무의 성실성, 헌신성, 전문성, 책임성, 투명성, 청렴성 그리고 정책 정당의 지향성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한국의 정치제도는 이미 수세기 전에 루소가 지적하였고 서강대 이관후 교수가 다시 상기시켰듯이 선거철에만 유권자에게 굽실 되는 ‘선거용 민주제’, 또는 ‘위임적 민주제’라고 부르는 것이 차라리 솔직하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고 대의적 민주제를 대의민주제답게 만들어 가기 위하여, 시민들이 정치 활동을 일상적으로 개입하며 견제하고 경고하는 장치로서 직접 민주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도입되어 있는 청원제도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위임받은 선출직 공직자가 시민 위에 군림하는 꼴이다. 당연히 청원제도는 이름부터 바꾸어 주권자인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수렴하여 참여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소환제도는 직접 민주제라고 평가하기 보다는 대의적 민주제의 책임성(accountability)을 강화하는 제도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소환과 파면의 제한 조건을 대폭 완화하여야 한다.
직접민주제의 핵심이자 절정은 영문으로 이니셔티브(initiatives)라고 표현되는 '시민발안제도(市民發案制度)'에 있다 할 것이다. 표현 그대로 시민이 주권자로서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발안제도의 요지는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선출된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이 만들어 내는 정책과 법률에 문제가 있거나 시민사회에서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는 경우, 일정 요건과 절차를 거쳐 이를 거부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장치를 통하여 행정과 입법 권력의 행위를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감독하고 견제하면서 이들 행위의 품격과 질적인 내용을 향상 시킨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예컨대 '대리인'들이 국민의 현실적 내용과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을 하는 경우, 시민들은 발안권을 통하여 이들의 결정을 거부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결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행정과 입법권력들은 다가오는 대선과 총선에서의 패배가 확실해지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시민적 의사와 현실을 반영하고 검토하여 실수가 없도록 일을 추진하게 된다. 시민은 자동적으로 그들을 견제하고 유도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둘째는 발안적 행위를 통하여 시민들 자신이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참여하고 민주적 행위를 실천하면서 교육과 경험의 장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민주제는 주권자로서의 시민들이 제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과 경험과 참여와 대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더욱 성숙해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초중등 교육를 기반으로 기초주민단위로부터 출발하여 광역의 단위와 국가의 규모까지 다양한 경험과 참여를 보장하고 일상적으로 실천할 때만이 민주제는 제대로 기능과 역할을 다하게 된다.
시민발안제의 성공 여부는 이를 연동하는 국민투표를 실제적이며 효과적으로 설계하여 시행하는데 달려 있다. 국민투표의 성격은 사안과 과정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헌법의 제개정 사안과 주요한 국제기구의 가입 여부 그리고 국가에 큰 영향을 주는 대외적 조약 체결 등 반드시 국민투표에 부치는 의무적(mandatory referendum, top-down) 방식은 전세계 대부분의 민주제 국가들이 시행하는 제도이다. 선출된 행정 및 입법권력이 결정한 주요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에 대한 신임여부를 통해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신임가부제(plebiscites)적 방식이 있으나 이 제도는 주로 독재적 정권이나 권위주의적 국가에서 빈번히 시행되는 것이 실정이다.
가장 중요한 국민투표제는 시민들이 직접 제기하는 발안과 연동하여 시행하는 직접민주제적(direct democracy, bottom-up)방식에 있다고 할 것이다. 직접민주적 발안제도는 선출권력이 결정한 정책과 제도를 반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네거티브적 경우와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도를 제안하는 포지티브적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또한 사안의 경중에 따라 요건과 절차를 달리 설계할 수 있다.
직접 민주제가 가장 발달한 스위스의 경우를 들어보면, 일상적인 정책과 법규에 대해 유권자의 1.0%에 해당하는 5만 명이 100일 안에 서명하면 국민투표로 넘어가며, 헌법 제개정과 같은 중대 사안은 숙려와 논쟁의 기간을 감안하여 18개월 안에 2.0%에 해당하는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요건으로 진행하고 있다. 향후 20년간 매년 4차례 실시하는 국민투표일을 미리 선정하여 공포하고, 매 분기마다 다음 국민투표일에 처리해야 할 사안들을 우편물 등을 통하여 상세히 홍보하고 고지한다. 또한 투표의 참여 방식도 자신의 생활 여건에 맞추어 직접 투표소를 방문하거나, 투표용지를 우편물로 발송할 수도 있고, 최근 들어서는 온라인 방식도 도입하여 젊은 층들에게 투표의 참여를 제고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발안 제도와 국민투표의 연계적 직접 민주제에 대하여 반대하는 여러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대체로 1) 대의적 의회민주제를 무력화시킨다 2) 직접 민주제는 규모가 적은 국가에서는 적합하지만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는 시행이 어렵다 3) 절차의 복잡성과 비효율적인 과정으로 국력의 낭비가 심하다 4) 전문성이 결여되어 포플리즘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직접 민주제는 위선적 선거민주제를 무력화 시킬 뿐, 대의민주제의 내용과 책임성을 한껏 높이는 장치로서 대의민주제와 상호보완과 경쟁적 방식으로 작동한다. 직접민주제의 필요성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초 지자체 또는 소규모의 국가보다는 일상적인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광역 단위와 대규모의 국가에 시민적 주권을 반드시 행사하기 위하여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미 유권자가 수 억 인구에 이르는 EU에서 점진적인 도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국 역시 연방 단위는 아니더라도 캘리포니아를 위시하여 여러 주 단위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다양한 IT 기술과 SNS 환경이 도입된 현대 사회에서는 시민적 의사의 확인과 참여적 절차는 일상적인 사안이 되었다. 민주적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 부패와 비리 그리고 왜곡과 방관을 배제할 수 있으며, 정책에 대한 공감과 참여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사회경제적 성과가 다른 제도에 비해 현격히 높아진다는 조사 보고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전문성과 복잡한 결정을 요하는 사안은 당연히 공론화 위원회와 시민의회라는 숙의적 심의와 토론의 과정을 연계하면서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한마디로 4월 시민혁명과 6월 민주화 그리고 2017년 촛불혁명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시민들이 민주주주의 꽃인 직접민주제를 실천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IT강국인 한국에 현실적 장애도 없다. 시민발안 제도와 이를 실제적으로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국민투표제를 도입함으로써, 대의적 민주제의 역할과 품격을 높이고 다양한 시민사회 세력간의 논쟁과 대화를 통하여 합의의 내용에 참여를 높이고, 결정된 정책적 시행의 효과를 제고하며, 이를 통하여 모든 시민들 개개인 자신이 국가의 주권자적 주인됨을 자각하고 체험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위에 인용한 내용에도 언급하였지만, 한국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하여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며 민간정부로 출범하는데 성공하였고 2016/7년 간의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탈법적이며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단죄하고 문재인정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세계인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았으나, 정작 이후 전개될 미래정치의 로드맵은 실종되었고,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구태의연한 과거식 정치형태가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우리의 정치판이 도로묵으로 회귀하는 형국이다.
이에 대하여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하며 헌법개정과 선거법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 한국 정치판의 구성과 상황, 헌정 제도의 결함과 시정잡배 수준의 정당구성원 자질 등 여러 문제로 실질적 진전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의회와 정당구조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 중의 최우선이라는 공론이 형성되면서 현하 한국사회의 가장 주요한 개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기실 현 시점에서 한국사회 내 선진적 시민사회 그룹의 주도로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 개선을 논의하고 있지만, 정작 정당명부식 비례민주제 시행의 모범국가로 알려진 독일에서는 오히려 대의적 정당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집권여당인 기민기사연합당은 차치하고라고 160년 역사를 지닌 사민당조차 냉대 속에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한다. 로마 현지에서 만난 독일 활동가들의 독일의 정당중심 정치에 대한 반응은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상’ 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의 주변부라고 칭할 수 있는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그리고 급기야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즉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어 급기야 중앙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국내 언론의 보도와 학계 대부분의 평가는 이를 부패하고 무능력한 남유럽의 정치문화에 국한된 일과성 내지는 대안을 찾지 못해 표출하는 포플리즘으로 치부하면서 오로지 책임질 수 있는 대의적 정당정치로의 복귀가 정답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편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 시민들이 직접 책임지고 결정한다’ 포데모스 정당운동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미래구상에 대한 갈증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직접참여의 생생한 정치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볼 욕심으로 추석 다음날 일찍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제 7차 글로벌포럼이 영원한 도시(Eternal City)로 불리는 로마에서 열렸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상징적이었다. 로마시의 배려로 2000여 년 전 인류역사에서 매우 소중했던 민회 중심의 공화정이 실행된 장소인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청건물(Palazzo Senatorio)에서 진행되어 역사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였고, 유럽의 21세기형 시민혁명이라고 평가받는 오성운동 운동의 출신으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로마시장에 당선된 Ms. Verginia Raggi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별했으며, 60여 개국에서 500여명이 참석할 만큼 이젠 직접민주주의 운동이 국제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열기 속에서 열렸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회의 일정은 25일 저녁 등록과 함께 개회선언과 로마시장의 저녁초대로 시작하여, 26-27일 양일간의 오전의 공동주제 발제와 오후의 각론적 워크샵으로 진행되었고, 28일은 전체회의를 평가하고 2019년 대회 주최 예정국인 대만 타이중(臺中)시의 구상 발표에 이어 마그나 카르다 제정작업의 착수를 선언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매우 인상적인 것은 전세계 7개 주요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례발표를 한 것으로 로마는 시장이 직접 발표를 하였고 다른 도시들은 모두 부시장들이 참여하여 발제를 하였는데 서울과 마드리드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압권(壓卷)은 Raggi 로마시장의 사례발표였다.
그녀는 우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해마다 떨어지는 것은 기존 정치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체계와 참여방식의 일대 혁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아고라 광장의 원칙과 개념에 따라 모든 의제는 공개와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현대적인 통신기법인 on-line과 기존의 off-line 방식을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밝힌다.
소셜 미디어와 정보의 수단을 활용하여 시민들로부터 직접 제기된 안건에 대하여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내용을 공개하면서 모든 시민들에게 제공된 정보의 접근권을 보장하며, 회합과 토론을 통한 숙의 그리고 결론에 이르는 일련의 종합적인 과정에 치밀한 시민참여와 시민발의라는 민주적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예시로 로마시는 여론조사와 시민제안을 통하여 핵심 프로젝트로 지속가능한 공간이동권(sustainable mobility in Rome)으로 선정하고, 이를 시민의 공론과 참여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영화제작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참여의 경로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뒤를 잇는 다양한 발표내용은 상기의 시나리오에 준하여 각자 도시들이 안고 있는 나름대로의 현안과 조건에 상응하는 여러 사례들을 발표하였는데, 추가로 몇 가지 사항을 보태어 설명하자면, 투명성(Transparancy)과 책임성(accounterbility)을 유난히 강조하였고, 발안와 숙의의 과정뿐만 아니라 실제의 집행과장에도 발안을 주도한 시민그룹들이 반드시 참여하여 모니터링하는 경로를 마련하여 땅에 떨어진 정치와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민발안을 처리하는 경로의 설계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사항으로 적정한 예산배정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과 일정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가 입을 모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가능한 모두가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숙의하고 결론을 도출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참여 여부도 강압이나 규정이 아니라 관심과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현재 국가단위에서 시민발안제를 포함한 직접민주제도를 채택한 나라에는 스위스와 우루과이 그리고 놀랍게도 이웃나라인 대만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방자치단위 수준에서 참여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주요 남유럽국가들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대부분 주정부 그리고 미국의 선진적 주정부(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오리건 등)에서도 시민발안제도가 채택되고 시행중인 듯하다. 우루과이라는 나라가 언급되자 농민출신으로 대통령으로 봉직하다가 건강문제로 사직하고 다시 농민으로 돌아간,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의 이야기가 필자에겐 직접민주제도와 함께 연상으로 겹쳐지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대만의 경우에도 국가의 중대한 사안은 아닐지라도 생활의 현안문제를 시민적 발안을 통해서 국민투표를 시행한 수 차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타이중시의 사례발표에는 초등학교부지의 선정과 학교이름을 작명하는 과정을 시민 발의와 투표과정으로 진행한 사례가 재미있게 소개되었다.
또 하나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발표는 스페인의 경우, 포데모스 운동이 격하게 진행되기 전인 2011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은 특별한 이슈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real democracy)를 외치면서 기존의 정치제도를 다시 생각하고(rethinking), 다시 정의하고(redefine) 다시 설계(redesign)할 것을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통해서 요구하였으나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들의 요구에 등을 돌리면서 포데모스 정당운동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시민들이 직접 책임지고 결정한다(we, people, are to make decision in responsibility’)라는 구호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아직 전국단위의 직접민주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중앙정부에 직접민주제 책임장관을 임명하여 이를 준비하고 있으며, 대부분 지방정부에는 시민참여부서를 국장급단위로 직접 운용하고 있다. 직업정치 영역과 일반시민간의 간격을 줄여가기 위한 전자시스템의 구축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시민들은 이미 직접민주제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반하여 정작 정치인들은 이의 시행에 꼬리를 빼고 있다고 고백한다.
디지털 디바이드, 시민 연령의 고령화 및 25개의 지방정부간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그리고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투명성 부재가 직접 민주제를 당장 시행하지 못하는 현실적 장애라고 지적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시민간 자질의 격차와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전문가들의 안내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치적 고려와 기술적 사항 그리고 제도적 정착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시민발안 확정 이후 실제로 시행된 국민투표에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했던 잦은 경험도 지적되었다.
촛불혁명 한국시민들 ‘직접민주제’ 못할 이유 없다
시민발안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직접민주제도가 비경제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바젤 대학의 교수출신이 마이크를 잡아채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절대로 반대의 경우라고 외치면서 스위스 경험에 비추면 직접민주제를 통한 결정이 대의민주제의 과정보다 직접 비용이 20% 정도 절감되며 사회갈등으로 발생되는 간접비용까지 감안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직접민주제도가 시민들에게 만족감을 제공하는데 훨씬 경제적이며 효과적이라고 단언한다. 아이슬랜드의 사례로 금융위기로 국가부도상태에서 이를 극복한 것은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해결책을 찾고 모두가 하나되어 실천한 덕분이라는 발언도 있었다.
제도로 정치를 분류하자면 리바이던의 저자 홉스식으로 권력자에게 모든 것이 위임된 통치(統治)에서 시작하여 루소의 시민적 일반의지에 따른 사회계약론과 칸트의 보편적 법정주의에 따른 법치(法治)가 변형되어 공직사회가 시민을 통제하는 관치(官治)를 거쳐 시민들이 참여하여 진행하는 다양한 협치(協治)의 형태로 발전해 온 셈이다. 법치의 다른 형태로 근대적 민주사회로 들어오면서 합의된 선거의 규칙을 통해 시민의 선택을 받은 정당들이 책임지고 국정을 운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현재 인류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2007년 이후 미국 발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정당중심 정치세력이 매우 무기력하고 무능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실은 금융위기 이전에도 영국의 블레어 노동당 정권이나 독일 슈뢰더 총리주도의 사민녹색 연합정부 등이 제시했던 제 3의 길 또는 중도의 정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가열찬 공세에 진보라는 명분만 포장하여 결국은 타협하고 굴복한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경제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하였다고 알려진 독일조차도 워킹-푸어가 금융위기 이전의 5% 수준에서 2017년 기준 12-3%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양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80년 집권의 역사를 지닌 스웨덴의 사민당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 3당의 위치로 전락(轉落)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배경을 뒤로 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들고 나선 일군의 유럽 시민들은 기존 정당중심의 정치는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민주주의는 반드시 시민참여 bottom-up 방식의 민치(民治)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여 년 삼권분립과 대의적 정당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정치구조에 일대의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인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출발점으로 인식되면서 로마대회에서 제 2의 마그나 카르타를 준비하게 되는 배경과 근거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포플리즘에 기반한 동부유럽과 터어키 등에서 마초적 독재권력이 탄생하고 장기 집권체제로 넘어가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패권국인 미국 등이 군사적 금융적 위협을 가하는 것에 대한 자기방어적 성격에 따른 것이고, 북아프리카 등에서 유입되는 이민문제로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조차 편협한 민족주의가 일시 득세를 하는 것 역시 직접민주제의 문제가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가 저지른 역사적 패착에서 발생한 자업자득적 성격이 강하다.
대회 이틀째인 로마대회의 직접민주주의 토론은 정치의 영역을 훌쩍 뛰어 넘어간다. 각론으로 넘어간 오후의 워크샵에서는 수많은 주제들이 다루어져 필자가 모두 참석할 수는 없었으나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구체적 경험과 내용을 담아내는 사회 경제 그리고 철학의 주제로 이루어 졌다. 필자가 선택하여 들어간 두 군데의 워크샵 주제는 ‘민주주의는 예술이자 타자와의 대화이다’ 와 ‘창의적 공유재와 민주제도–혁신’이였다. 불행히도 주제강연과 토론이 독일어와 이태리어로 이루어졌고 어설픈 통역으로 깊고 세밀한 내용을 필자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첫째의 주제는 일정에 없던 것으로 저명한 독일 철학교수가 참여하면서 급조되어 이루진 워크샵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제도로만 보지 말고 자신의 삶에 채워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음악의 여신인 뮤즈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뮤즈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타자와 대화를 통해서 더욱 성숙된 내용으로 정진하면서 일상적인 실천으로 나가게 된다고 가르치면서, 삶의 주인인 자신과 타자인 우주와 세계 및 사회간의 관계적 연결 매체로서 직접민주제도가 반드시 요청된다는 요지이다. 직접민주제는 개인의 각성과 성찰 그리고 관계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용이 어려워 필자가 이해했는지는 불명하여 그가 강의 중에 칠판에 그려낸 한 폭의 예술적 강의기록을 찍은 사진을 아래에 게재하면서 이를 보완하고자 한다.
두 번째 주제의 발제와 패널은 그야말로 로마시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자리였다. 로마시당국의 시민참여국장, 로마시의 유럽대학 학장, 지방장관연합회 의장, 디지털이태리 대표 등이 참석하여 주로 직접민주제를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이해했다. 직접민주제를 효과적으로 실시하는 데는 정보와 데이터가 매우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이를 사기업이 소유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는데 비용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현실적인 장벽을 극복하고 일반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적 내용을 다각도에서 검토하였다. 한걸음 더 나가서 기업과 경제활동의 영역에 이해관계자 중심 또는 사회적 공유라는 개념을 직접민주제와 결합시켜 적용하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탈리아는 진즉 15세기부터 시민경제적 영역의 상호성과 사회적 관계라는 주제를 깊이 체험해 온 것으로 보이며 어떤 경우라도 모두를 위한 혁신과 창의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자리였다.
전문학자가 아닌 입장에서 3-4 일간의 짧은 기간에 직접민주주의를 참관 체험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한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에 해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강하게 받은 느낌은 인류의 정치사적 흐름이 물리적 강제력에 의존했던 과거의 군주제적 통치방식(以君治國)에서 벗어나고, 18세기 이후 합리적인 이성에 기초하여 성립된 삼권분립과 법치적 강제력에 기반하고 현실적 생활조건을 배경으로 하였던 정당중심의 대의적 민주제(以黨治國)가 퇴조하면서, 현대적 통신기술과 IT 산업의 발달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발안하고 결정하며 개입하는 직접민주제(以民治國)의 시대가 눈앞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과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보다 섬세하고 심층적인 전문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촛불혁명을 거친 2018년 한국사회는 이제 강압적 up-bottom 통치시대를 끝내고 관치를 넘어서 협치를 지향하는 시점에 있기는 하나, 민본과 민생과는 거리가 먼, 표만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show-up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실제적 권한이 위임되지 않고 합의적 절차가 결여된 형식적인 참여민주제로 포장한 ‘유사민주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정당이라는 이름은 있으되 정당이 추구해야 할 강령과 정책의 실천의지가 실종된 사이비 정당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성숙한 대의적 민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의 개혁이 매우 바람직하며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정당다운 정당이 없는 한국정치의 현실에서는 내용이 텅빈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당이 정당답게 변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확립을 위해서도 비례적 선거제도와 함께 풀뿌리 bottom-up 방식의 시민발안제 도입이 절실하다는 것이 로마에 참여한 지인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자 한국사회에 던지는 조언이기도 하다. 비례적이고 균형적인 대의제도와 시민발안을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제의 쌍(双)도입이 2018년 이후 한국정치의 주요한 과제상황이 되는 셈이다.
다만 시행적 실수를 줄이기 위하여 우리사회가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시민발안제를 우선적으로 광역자치 단위에서 사전적인 경험을 위해 시민적 교육과 함께 실시해본 이후, 그 성과를 기반으로 국가단위의 적용이라는 절차적 과정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이래경의 다른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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