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이 감당이 안 된다. 아침에 운동장 일곱 바퀴를 걷기로 했다. 차 한잔을 마시고 다른 생각이 파고들기 전에 동네 운동장으로 나간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운동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 날씨와 상관없이 무조건 걷는다. 그런데 오늘따라 날씨가 요망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다. 구름 사 이로 햇빛이 찬란하게 비친다. 그 사이로 비가 부슬부슬 온다. 바람까지 쌀쌀해 재킷의 지퍼를 턱 밑까지 올린다. 저 멀리 무지개가 보인다.
엄청나게 큰 무지개를 보니 나도 모르게 ‘빨주노초파남보’하고 일곱 색깔을 찾아낸다. 문득 어제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른다. 무지개가 몇 가지 색깔일까? 일곱 가지 색. 초등학교에 가기 전부터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무지개 색깔을 다르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오색 무지개라고 했다. 멕시코의 원주민 마야인은 무지개를 검은색, 하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다섯 가지 색깔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두세 가지 색깔로 무지개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흥미로워 조금 더 찾아보았다. 무지개가 여러 가지 색으로 되어 있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이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바로 그 사람이다.
뉴턴은 빛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다. 어느 날,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가느다란 빛줄기를 프리즘에 통과시키고 그 빛이 여러 가지 색깔로 나누어진 것을 보았다. 뉴턴은 무지개의 색깔을 일곱 가지로 정했다. 그 배경에는 당시 7을 신성시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숫자로 여겼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뉴턴도 사실 ‘남색’을 따로 구분할지 말지를 고민한 흔적이 있다.
무지개란 빛이 물방울을 통해서 꺾이는 과정에서 파장마다 굴절률이 달라 우리 눈에 빛이 파장별로 분리되어 보이는 현상이다. 현재 과학은 무지개의 색깔을 207색까지 구분한다. 나는 항상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일곱 가지만 보였다. 내가 간사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다 시 207색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일곱 색 사이에 여러 가지 색상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도 믿어 의심한 적 없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살면서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을까 곱씹어 본다. 만약, 내가 어제 책을 읽기 전에 우연히 아프리카 사람이 무지개의 색을 두세 가지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개하다고 무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목에 핏 대가 서도록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가르쳤을 것이다. 그 아프리카 사람이 의견을 내면 나는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른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아 화를 돋운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만 옳다. 나와 다르면 틀리다. 참 거만하다. 그 무모한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사고 구조는 이민을 와서 내가 태어나지 않은 곳에서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그 뿌리는 깊어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 잔뿌리는 나의 모든 생각과 활 동에 닿아있다. 내 의견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만 있어도 내 삶의 여유가 더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날씨는 거짓말처럼 활짝 개었다. 다리는 뻐근하고 등은 땀으로 촉촉해졌다. 벌써 운동장 일곱 바퀴를 다 돌았다. 집으로 향한다. 우리 집 앞에는 유치원이 있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저 아이들이 무지개 색은 몇 가지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혼자 답을 만들어 본다.
“무지개색은 일곱 가지야. 그런데 네가 크면 커가는 만큼 더 많은 색을 무지개 안에서 볼 수 있을 거야.”
(김희연-새움터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