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을미년을 비추던 한 해도 뉘엿뉘엿 에펠탑 너머로 저물어 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떠올리는 다사다난이란 말이 올해처럼 실감나는 한 해도 없을 것 같다. 년초부터 파리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발생해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더니, 지난 11월 13일의 금요일에는 파리 도심 한복판에서 전무후무한 동시 다발 테러로 130명이 사망하고, 350여 명이 부상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파를 안겨줬다.
올랑드 정부는 파리테러 직후, 즉각적으로 IS공습을 단행하고, 해외령을 포함한 프랑스 전 국토에 긴급비상사태를 선포, 강력하게 대처해 나가고 있지만, 이에 따른 추가 테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고, 프랑스를 찾는 관광객 수도 대폭 줄어,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에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주변 사정도 썩 좋지 않다. 유럽 내에서는 밀려드는 난민 사태로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1년부터 5년째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으로 25만명이 숨졌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던 시리아인들은 수천 km를 걸어서, 혹은 차디찬 바다위에서 고무보트에 실낱같은 목숨을 맡긴 채 국경을 넘고 있다. 난민은 시리아 뿐만 아니라 리비아·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28만명에 이어 올해 들어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만 34만명이다. 더욱이 이들 가운데 테러리스트들이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난민사태는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한-불 양국은 수교 130주년을 맞아 활발한 교류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1886년 6월 4일, 수교를 시작한 이래 올해로 130주년을 맞은 한국과 프랑스는 2015~2016년까지 양국간 우호 및 이해 증진을 위해 양국 정상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불 상호교류의 해로 지정했다.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해’로,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해’로 지정, 교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지속적인 협력을 위해 국가뿐 아니라 공공, 민간 영역에서의 협력을 심화하고 지역 간 교류를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지난 9월 18일 오프닝 세레모니를 시작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미술, 음악, 공연, 문학, 영화, 스포츠, 패션, 음식 등 다양한 분야의 행사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다. 지난 ‘한-불 수교 120주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행사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는 점인데, 그동안 프랑스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더 많은 프랑스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 한식 등이 대중과 친숙해지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한국의 언어, 역사, 사회, 경제 더 나아가 연구와 교육 분야까지도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가 이를 뒷받침한다.
올 한해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프랑스한인회를 중심으로 한인사회 내에서 일고 있는 혁신의 분위기다. 1월에 출범한 33대 한인회는 임원단을 30~40대 젊은 피로 수혈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 한인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년초 ‘재불단체장들과 함께하는 신년하례식’을 시작으로 ‘이상무 호’의 힘찬 닻을 올린 한인회는 각 단체 및 협회간의 공동주최 행사 마련을 위한 협조 사항을 요청하는 한편, 올 한해 힘과 열정을 다해 일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통해 한인단체들의 협력을 이끌어 냈다.
68년 창립 초부터 50년 가까이 사용해온 ‘재불한인회’라는 명칭을 과감하게 버리고 ‘프랑스한인회’로 개칭하면서 좀더 젊고 신선한 이미지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6월에는 ‘프랑스 한인 차세대 발대식’을 통해 한인사회의 미래를 짊어져 나갈 1.5세, 2세들이 서로의 네트웍을 형성하고 지속성을 갖는 모임으로 출발시켜, 한인사회의 세대교체를 이뤄낼 준비를 갖췄다. 한인회 홈페이지도 새로 개편하는 한편 한인회관도 20여년만에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롭게 단장해 개방하는 등 교민들과 소통하고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삼일절 행사, 한인체육대회, 한가위축제, 송년회에 이르기까지 기존에 해오던 행사들은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좀 더 흥미롭고 실속있게 치러냈고, 교민들을 위한 파리 문화 예술산책 ‘꽃보다 파리', 한인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기메미술관 한국관 탐방 프로그램’ 등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상무 한인회장은 회장 선거에서 약속한 공약들을 대부분 이행했고,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을 구상하고 추진해, 젊은 리더로서 혁신과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3일, 한인회 송년회에서 “올 해는 워밍업 기간이었으며, 내년에는 실질적인 변화와 진화된 모습을 프랑스한인회에서 보여 줄 것”이라고 밝히며, 더 많은 일들을 추진해 해 나갈 것을 시사했다.
프랑스한인회의 내년이 더 기대되는 것은 한인회장을 중심으로 임원들이 하나가 되어 재미있게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간다는 점이다. 특히 출범당시 함께 한 임원들 중 한 사람의 이탈이나 교체없이 팀웍을 이뤄 온 것은 전례로 보아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다져놓은 사업들을 토대로 내년에는 더 큰 성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외적인 성과에만 너무 급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능률과 성과만을 따지다보면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다시없는 소중한 교훈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이 많았든 부끄러운 일이 많았든 이제 묵은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남은 시간은 불과 며칠 뿐이다. 이 짧은 시간을 앞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잘못된 일이 있다면 솔직히 시인하고, 참회할 일이 있으면 나아가 참회해야 한다. 이웃과 지인들에게 화해할 일이 있으면 화해하고, 용서할 일이 있으면 용서해야 한다.
유유히 흐르는 세느강의 물줄기에 모든 앙금을 씻어버리고, 깨끗하고 순백한 마음으로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한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