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이계선 칼럼니스트
내가 나가는 미국교회 교인들은 나를 “자동차보다 빨리 걷는 신사”라고 부른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걷는건 고사하고 뛰어서 자동차를 이겨본 사람도 없다. 올림픽에서 9개의 금메달을 따낸 육상황제 칼루이스가 우리집 4기통 고물차와 경주를 벌인다면 이길까? 한나절은 느릴 것이다. 나는 운동신경이 둔해서 한번도 동메달하나를 따 본적이 없다.8명이 뛰는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서 딱 한번 4등을 한게 내생애 최고기록이다.그러나 애석하게도 4등을 하고도 상품을 받지못했다.4등부터는 등수로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자동차보다 빨리 걷는 남자가 된건 순전히 파킨슨 때문이다. 6년전 의사는 공약3장을 발표하듯 말했다.
“목사님은 파킨슨씨병에 걸렸습니다.도파민이 부족하여 빨리 늙어가는 병입니다.완치는 어렵지만 3가지 약속을 실천하면 병의 진행속도를 늦출 수가 있습니다. 첫째 약을 잘먹고 둘째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고 셋째 운동을 열심히 하십시오.”
충격으로 들려왔다.독립운동하듯 신명(身命)을 다하여 공약3장을 실천하자.
공약1장:약을 잘먹자.
매일 꼬박꼬박 약을 먹었다.후러싱의 한인닥터가 처방을 보내주면 동네약국 스마트팔머시의 약사 쥬리안이 내준다.러시아출신의 미녀는 약을 내줄때 마다 초코렛을 끼워준다.고마워 ‘탱큐 마담 초코렛! 하고 살짝 불러주면 40넘은 싱글녀는 사춘기소녀처럼 볼을 붉힌다. 초코렛처럼 약이 달게 마련이니 약효100%성공.
공약2장:밥을 잘 먹자.
5종류가 넘는 야채가 수북히 쌓여있다.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물고기 꽃게 미루과이 조개요리가 번갈아가면서 올라온다.난 채식주의자(菜食主義者)라서 고기를 싫어한다. 그래도 단백질이 많다 하니 먹어두면 보약이겠지?
“여보.이번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밭고기로 만든 몬도가네 대령이오.“
“밭고기-밭에 고기가 있다니?” 아하!밭 흙속에서 자라는 굼뱅이 지렁이 달팽이 애벌레들이 밭고기가 되는구나. 그걸로 만든 요리를 “몬도가네”라 부르고... 난 날 달걀도 못 먹을 정도로 비위가 약하다. 징그러운 굼뱅이 볶음을 새우튀김처럼, 지렁이무침을 잡채처럼 먹을수 있을까? 그런데 닭고기는 꿈틀거리면서 흙속을 기어다니는 굼뱅이들이 아니었다. 검정콩 도라지 더덕 인삼을 아내는 닭고기라고 불렀다. 어떤 고기보다도 영양가가 풍부한 단백질덩어리들이기 때문이다.
쌀기름이 잘잘 흐르는 검정콩밥에 시금치국물,하얀속살이 벌겋케 버무린 도라지무침을 넣고 비벼낸 도라지 비빔밥, 금방 캐낸 더덕을 갈비구이처럼 양념해서 구워내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혹시 냉장고에 먹다 남은 와인이나 콜라가 있으면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쏘냐! 후식으로 홍삼환을 마시니 천하가 태평이다.
난 우리집 식단을 ‘몬도가네밥상’이라 부른다.그런데 몬도가네를 요리하는 재료들은 대부분 소꿉농장에서 키워낸 자작 농산물들이다.30평짜리 에덴농장에는 야채를 가득 심어놔서 봄에서 초겨울까지 뽑아 먹는다. 에덴의 동쪽 10평짜리 아리랑농장에 더덕과 도라지를 심었다. 심은지 4년이 돼서 슬슬 캐먹기 시작한다.물이 빠질때쯤 아내는 바다로 나가 한시간만 어슬렁거리면 미루과이 맛 꽃게 고급조개들을 줍는다.몬도가네식단은 자연산자급자족이다.
병든 남편의 입맛을 맞추다보니 아내의 요리솜씨가 일취월장하여 이제는 대장금이 됐다.
3장:걷는게 운동이다.
“여보,골프를 쳐보세요.노인들에게 골프처럼 좋은 운동이 없대요.”
“엄마가 나가는YMCA 체육관에 나가세요.엄마도 졸라대셨잖아요?”
모녀가 졸라대지만 난 꿈쩍을 안한다.. 난 스포츠는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돈이 들어가는 운동은 스포츠가 아니라 장삿속처럼 보인다. 아내는 매월 50불을 내고 운동하러 다닌다. 골프는 더 들어간다. 무얼할까? 번개처럼 순간을 가르고 떠오르는 계시!
‘걷자 걷자 걷는 운동을 하자.’
걷기는 어린 시절부터 해온 나의 단골 종목이 아닌가? 난 초등학교때 6년동안 왕복6km를 매일 걸어다녔다. 중학교 때는 3년동안 왕복 12km를 걸었다. 30년전 이민 오기전에는 서울에서 성남까지 걸어가 봤다. 이민와서는 하루종일 뉴욕을 걸어 다녔다. 내가 사는 퀸즈를 출발하여 브루클린 맨해튼 브롱스를 돌아 다시 퀸즈로 돌아오니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난 걷는걸 싫어하는 편이다. 어쩔수 없어서 걷는 것이다. 그런데 파킨슨병이후 부터 걷는게 좋아졌다.
걸으면서 봐야 세상 아름다운게 보인다.. 말타고 달려가면서 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는 꽃과 나무 새와 다람쥐를 볼 수 없다. 천천히 걸어야 멀리 간다. 빨리 걸으면 금방 지쳐서 10리도 못간다. 혼자서 걸어라. 그러면 그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난 돌섬 10년을 매일 혼자서 걸었다. 그리워하면서 사색하면서 구상하면서 걷다보니 돌섬통신을 쓰게 됐다. 병든 몸으로 걷는지라 기진맥진 넘어질때도 있지만 걷고 나면 천하를 얻은 기쁨이다. 어느 주일날 아침 아내를 불렀다.
“여보 걸어서 교회를 다녀볼까 하오. 우선 오늘 실험을 해봅시다. 난 걸어서 가고 당신은 차를 운전하면서 가는거요. 누가 이길까?”
“호호호 당신은 거북이, 난 토끼가 되어 경주하자는 거지요. 좋아요. 출발!”
난 예배 한시간 반전에 집을 나섰다. 무겁고 느리고 졸려왔다. 걸을 때보다 쉴때가 많은데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던킨도너츠에 들려 보스턴 크림에 헤즐너트커피를 마시니 힘이 돋는다. 15분을 쉬고 단숨에 걸어 도착하니 교회는 예배시작 10분전이다. 안내자가 주보를 주면서 묻는다.
“굳모닝 미스터리.그런데 당신의 이쁜 아내 쥴리는 안 보이는군요?”
“예 곧 뒤따라올겁니다.오늘 우리부부가 경주를 했어요. 난 걸어가고 아내는 차를 몰고 누가먼저 교회 도착하냐였지요. 그런데 아내가 교회에 와보니 너무 일찍이라서 은행 슈퍼마켓을 들리다가 그만 너무 늦어버려 일등을 놓친 모양입니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그때부터 미국교인들 사이에서는 나를 두고 “자동보다도 빨리 걷는 신사”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꼬마농장에서 캐낸 더덕과 도라지로 몬도가네 요리를 만드는 대장금
글로벌웹진 NEWSRIOH 칼럼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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