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새벽 1시에 예정대로 출발했다. 막판 1시간은 약간 졸렸다. 도착하니 6시 15분이다. 여기도 전에 와 본 곳이다. 그때는 물건을 실으러 왔는데 밤새 기다린 적이 있다. 덕분에 출발이 늦어져 다음 장소에서 화물을 못 실을 뻔 했다. 오늘은 내리는 일이라 그런지 바로 닥을 배정받았다. 이곳도 만만찮은 곳이지만 최근 급상승한 후진 실력으로 잘 처리했다.
자고 있는데 트로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03에 도착했냐고 묻는다. 03이었나? 02인줄 알았다. 여기 오자마자 도착확인 메시지 보냈는데 02로 알고 보냈다. 여기가 03이라면 01과 02에서 짐을 실었다는 얘기다. 내가 어제 리파워로 받은 화물은 아이다호 감자였다. 그쪽으로 눈이 많이 왔었나 보다. 트레일러가 소금 덩어리가 된 것을 보니.
꿈까지 꾸며 자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직원이 서류를 가져왔다. 이제 최종 배달지로 출발할 차례다. 6~7시간 정도면 도착할텐데 약속은 내일 아침이다. 중간에 어디서 쉴까 생각하다 핏스톤 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평일이었으면 알렌타운의 인터내셔널 딜러샵에 가서 체크엔진 불 들어오는 것 점검했을 것이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얼마 전에 나도 사슴을 치었지만 요즘 들어 로드킬 당한 사슴의 사체가 눈에 많이 띈다. 오늘 오전에만 한 20~30마리는 본 것 같다. 더 될 지도 모른다. 최근에 죽은 것부터 죽은 지 몇 주는 돼 보이는 것까지 다양했다. 자는 것처럼 온전한 모습을 한 녀석도 있고 내장이 터져 나온 녀석, 아예 다진 고기처럼 짓이겨진 녀석도 있다. 로드킬 당한 동물은 매일 보지만 대부분 너구리나 여우 크기다. 사슴처럼 큰 동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최근 몇 주는 거꾸로다. 작은 동물은 별로 없고 대부분 사슴이다. 요즘 사슴 짝짓기철인가? 짝짓기에 실패한 사슴들이 집단으로 비관 자살이라도 하는 것인지. 오늘 본 것 중에 최악은 살아 있는 사슴이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갓길에 앉아 고개를 들고 지나가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코피를 흘리며 입은 살짝 벌린 채다. 그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저러다 천천히 죽어가겠지. 누가 돌봐주면 살 수 있을텐데. 차라리 즉사했으면 좋았으리라. 내가 친 두 마리 사슴은 즉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핏스톤 터미널에 도착했다. 드라이브 라인에서 점검하더니 트레일러 바퀴 하나를 교체(交替)했다. 오른쪽 스윙도어를 거는 훅이 없는데 트레일러 샵에 들러 수리를 하고 가라 했다. Wash bay에서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세차했다. 스프링필드는 와쉬베이가 4개가 넘지만 핏스톤은 1개다. 덕분에 히마찰도 다시 말끔해졌다. 트레일러샵에서 훅을 수리하기 위해 49번 베이 입구로 후진을 해야 했다. 역시 잘 된다. 자로 잰 듯 완벽하진 않지만 대강의 방향은 맞다. 어느 정도에서 세팅하고 어느 정도로 수정하는 지 약간은 감이 생겼다. 아직 정확하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핏스톤 터미널은 크기가 작다보니 늘 트레일러 주차할 공간이 부족하다. 빈 공간을 찾아 주차했다. 어느 트럭이 후진 진로 상에 주차해 방해가 됐다. 문을 두드리니 반응이 없다. 그 트럭을 피해 주차하느라 애먹었다. 결국 그 자리에는 못 대고 다른 자리에 댔다. 그러고나니 아까 그 트럭은 사라졌다. 이런 된장할~ 덕분에 후진 연습은 제대로 했다. 거의 실전 상황이라 앞으로 트럭스탑이나 거래처에서 후진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카페테리아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모자란 잠을 잤다. 빨래와 샤워는 어제 휴게소에서 했다. 출발 전에 샤워는 한 번 더 해도 되고.
내일 배달하는 곳은 업스테이트 뉴욕이다. 알바니보다 조금 아래다. 배달 후 집으로 트럭을 몰고 가면 좋지만 주차 티켓을 받는다는 사실을 안 이상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코네티컷이나 뉴저지에 주차하고 가자니 누가 데리러 올 사람이 없다. 아내는 가게 일로 바쁘다. 아니더라도 멀리까지 운전해 오기 힘들다. 천상 주차하고 택시로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로 이동해야 한다.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냥 트럭으로 집 근처에 주차하면 얼마나 편한가. 핏스톤 터미널에 내려 놓을 수 있는 화물이 있으면 달라고 해야겠다.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좀 지불하더라도 뉴욕시 내에서 트럭을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는 게 좋겠다. 트레일러까진 아니더라도 밥테일이면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니 가능할 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체크엔진 불이 꺼졌다. 히마찰도 자기 집에 오니 좋은가보다.
먼 길을 돌아가야
산골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오후 5시에 이미 가끔 지나는 자동차 외에는 불빛 하나 없는 암흑천지가 됐다. 예전에 weigh station으로 썼던 모양인 parking area에 홀로 있다. 주차 공간과 피크닉 테이블 몇 개 외에는 시설이 없다.
새벽 1시 핏스톤 터미널을 떠났다. 출발 전 연료는 가득 채웠다. 공휴일이라 월요일 출근길 정체도 없었다.
목적지에서 가까운 Catskill 월마트에 들렀다. 과일, 야채, 빵, 쌀, 우유 등 부식을 보충했다. 캐츠킬은 뉴욕주에서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국도길로 오르락 내리락 12마일을 가니 배달처에 도착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확실히 알리닥 후진의 감을 잡았다. 오늘도 정확한 방향으로 집어 넣었다.
배달을 마치고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에 갔더니 거의 텅 비었다. 시설은 몹시 낙후(落後)했고 바닥은 울퉁불퉁했다. 주차비 10달러를 받는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고 입구에 차단봉이나 지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래 있을 이유는 없어 서류 작업만 마치고 좀 더 북쪽의 휴게소로 이동했다.
알바니 근처다. 알바니는 뉴욕의 주도다. 글렌은 트로피카나에 트레일러 내려 놓고 집으로 가라 했다. 내가 지난 번에 그랬다가 530달러치 티켓 먹은 것을 잊은 모양이다. 나는 핏스톤 터미널에 내려 놓을 수 있는 화물을 달라고 했다. 뉴욕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을 때까지는 터미널에 주차하고 다니겠다고 했다. 불편해도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서너 시간이면 집에 도착할 것을 멀리 돌아가니 시간도 비용도 여간 손해가 아니다.
결국 핏스톤 터미널 근처 월마트 DC에 배달하는 건을 받았다. 재미 있는 것은 발송처도 이 근처 월마트 DC다. 월마트에 배달은 갔어도 물건을 실어 나오는 것은 처음이다.
가는 도중에 알바니에 들러 콸라 와쉬에서 트레일러 세척을 했다. 이곳은 탱크 세척을 주로 한다. 여기도 예전에는 바닥이 콘크리트 포장이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거의 맨땅 수준이다. 곳곳에 웅덩이가 패이고 물이 고여 있다.
Sharon Spring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낡은 시골 동네를 지나친다. 과거에는 빛나고 번성했을 듯한 마을이 쇠락(衰落)한 모습으로 남았다. 곳곳에 쓰러져 가는 빈 건물이 보였다.
월마트 DC에서 트레일러를 바꿔 연결하고 나오니 시간이 20분도 남지 않았다. 새벽 1시에 시작했으니 오후 3시면 14시간이 종료된다. 입구의 경비 아줌마에게 여기서 쉴 수 있냐고 물어봤다. 얼마나 쉴 건데? 30분? 아니 10시간. 그건 안 된다. 이 근처에 쉴데가 있나? 여기서 6마일 떨어진 곳에 길가 쪽으로 공터가 있다. 거기서 쉴 수 있다. Trucker Path 앱에도 나오지 않는 정보였다. 물어보길 잘 했다.
짐이 가득 실렸다는데도 트럭이 가볍다. 무슨 화물인가 봤더니 패션 관련 상품들이다. 아마도 옷일 것이다. 의류니 리퍼를 돌릴 필요가 없는 드라이 화물이다. (식품이 아니어도 화학제품의 경우 일정한 온도 유지가 필요하면 리퍼를 가동한다)
여기서 펜실베이니아주 Tobyhanna까지는 서너 시간 거리다. 집에 가는 거리와 거의 같다. 새벽 1시에 출발하면 5시에는 도착할 것이다. 터미널에 돌아가 주차하고 이런 저런 준비 끝에 출발하면 저녁시간 전에는 집에 도착하겠다.
P.S
뉴욕에 밥테일 트럭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아시는 분 계시면 연락 및 추천 부탁 드립니다. 적절한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습니다.
밥테일 트럭은 트레일러를 끄는 트랙터 부분만을 말합니다. 높이는 높지만 길이는 일반 승용차 2대보다 짧습니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할 뻔
어제 저녁 용변이 보고 싶어졌다. 이곳은 간이 화장실도 없다. 자연에서 온 것을 자연으로 되돌려 줄 밖에. 트럭 밖으로 나가보니 내 뒤로 두 대의 트럭이 더 주차해 있다. 아마 자고 있을 것이다. 깨어 있다 해도 컴컴한 데 보일 리가 없다. 나는 최대한 숲 가까이 갔다. 자연에서 직접 용변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20대에 등산 다닐 때 이후로 처음인가? 날씨도 다행히 풀려서 궁뎅이가 시리지는 않았다. 아득한 옛 사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용변을 봤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자연과 차단된 작은 공간에서 볼 일을 본다. 막대한 물을 소비하며 귀중한 자원을 버린다.
새벽 1시 알람에 일어 났지만 더 자기로 했다. 오늘 중으로만 배달하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눈이 왔다. 밤에 출발 안 하기를 잘 했다. 눈내린 낯선 산길을 밤에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트럭 일 시작한 이후로 최초의 눈길 운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네이슨과 수련 기간 중 약간 눈이 흩날린 적이 있다. 지난 달 메릴랜드 산길에서도 눈이 조금 쌓였다. 둘 다 눈길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트럭이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달렸다. 내린 눈이 따뜻한 날씨 때문에 많이 쌓이지는 않았다. 제설 작업도 돼있다. 타이어 접지력도 생각 보다 좋았다. 빗길 운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국도는 트럭이 많이 안 다니는지 길가로 뻗은 가로수 가지가 트럭과 트레일러 윗부분을 계속 쳤다. 약 16마일 정도를 달린 후에야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이메일이 왔다. 교통이 멈춘 틈을 이용해 확인해보니 지난 번 받은 주차티켓 히어링 결정문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하니 한 장은 디스미스다. 오예! 나머지 한 장은 확인을 못 하고 운전을 계속했다.
월마트에 도착했다. 드랍 앤 훅이다. 여러 월마트 DC를 다녔지만 여기만큼 무질서한 곳은 처음이다. 트레일러가 많아서 그런지 체계가 없다. 빈 트레일러와 짐 실린 트레일러가 마구 섞였다. 내가 끌고간 트레일러는 지정한 장소에 겨우 한 자리를 찾아 내려 놓았다. 빈 트레일러를 찾을 수가 없다. 야드 전체를 돌아다녀 구석진 뒷 편에서 프라임 트레일러 두 대를 찾았지만 도무지 끌고 나올 수 없는 위치다. 지나는 야드자키에게 물었다. 프라임 빈 트레일러가 어디에 있나? 그는 고개를 절래 저었다. 자기도 모른다며 야드를 돌아다녀 보라 했다. 여긴 엉망이야라면서. 글렌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밥테일로 터미널에 주차하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다른 티켓도 확인하니 마찬가지로 dismiss다. 530달러 벌었다. 어제밤 자연의 기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역시 읍소(泣訴) 작전이 통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인정에 호소하면 통한다. 심사관의 배려가 느껴졌다. 티켓 두 장을 모두 무효를 주기 위해 여러 기술을 동원했다. 구체적 방법은 밝힐 수 없지만 실제와 다른 정보를 입력해 한 장을 무효로 만들고 그와 연관해 다른 티켓도 무효가 되도록 논리적 구성을 갖췄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밥테일 트럭은 티켓을 안 받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글렌에게 집으로 트럭을 갖고 가겠다고 했다. 두 장의 티켓 결정문을 자세히 읽어본 후 차량 정보 및 결정 사유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작정하고 편의를 봐 줬구나. 하마트면 호의를 권리로 착각할 뻔 했다.
밥테일로 터미널에 가 주차하고 제시 익스프레스에 전화했다. 5시 차가 있었다. 회사 근처 맥도날드에서 4시 30분에 타기로 했다. 4시간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 식사를 만들어 먹고 샤워와 면도도 했다. 걸어가도 20분이 걸리지 않지만 회사 셔틀 버스가 왔길래 탔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데 “맥!도날드 간다”고 했더니 못 알아 듣는다. 몇 번을 얘기해도 그렇다. 당황스럽다. 제시 익스프레스 탄다고 얘기하니 그제서야 “맥~도!날드” 한다. 미국 11년 살아도 무소용이다. 맥도날드의 굴욕(屈辱)이다. 나는 맥에 강세를 줬는데 맥은 작고 길게 발음하며 도에 강세를 줘야 했다. 이건 글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맥도날드가 저소득층이 주로 가는 곳으로 이미지가 추락했지만 이곳은 카페처럼 인테리어를 했다. 손님도 우량하다. 맥도날드가 이미지 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이다.
밴 승합차는 4시 19분에 도착했다. 운전사는 남미인이었다. 구글맵에서 안내 메시지가 스페인어로 나왔다. 몇 곳을 돌며 집앞까지 찾아가 손님을 태웠다. 대부분 흑인이었다. 요금이 20달러이니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비보다도 싸다. 나를 포함해 승객은 8명이었다. 160달러 받고 뉴욕까지 가는데 연료비, 톨비 빼면 별로 남는 게 없을 듯 하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기존 타고 다니던 버스 요금의 절반도 안 되니 나도 앞으로 애용할 생각이다.
차는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건너 포트 워싱턴 175가 A 트레인 역 앞에 섰다. A 트레인 익스프레스를 타니 42가까지 얼마 안 걸렸다. 타임스퀘어에서 7번 전철로 갈아타고 플러싱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9시 정도다. 아내는 아직 가게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배고프다고 했더니 아들 녀석이 볶음 너구리면을 끓여준다. 맛 있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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