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아침 5시 기상, 오늘도 첫 일과는 운동이다. 매일 조금씩 강도가 높아진다. 식사하고 면도 후 집을 나섰다. 오전 7시 15분 약속이다. 같이 갈 줄 알았던 아내는 집 청소를 하겠다며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거의 정시에 도착했다. 건물 입구 검색대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검색대 통과 후 체크인을 했다. 변호사가 없냐고 묻는다. 혼자 왔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대부분 변호사를 통해 시민권 신청을 하고 함께 오는 모양이다.
외국 다녀온 날짜를 물어볼 것에 대비해 N-400 서류를 검토하려고 했다. 언제 며칠간 나갔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한다. 서류를 들여다볼 새도 없이 인터뷰관이 내 이름을 부른다. 지난 번 아내는 오래 기다렸는데.
인터뷰관은 백인 중년 남성이었다. 내 볼록한 배는 귀엽다고 할 정도로 남산만한 거대한 배를 하고 있었다.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몇 가지 질문은 모두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노예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미국 최고 법원은 무엇입니까? 법은 누가 만듭니까? 부통령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수정 헌법은 몇 개입니까? 식민지가 영국에 독립을 선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두 예상 문제지에 있다. 여섯 개만 맞추면 합격이라 더 질문하지 않았다. 읽기와 쓰기도 기초 수준이었다. 다음은 개인신상에 대한 질문이다. 세금을 매해 냈습니까? 연체(延滯) 된 세금이 있습니까? 다른 나라 군에 복무한 적이 있습니까? 국가선거에 투표한 적이 있습니까? 체포된 적이 있습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외국 나간 기록에 대해서는 질문이 없었다. 드디어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이름을 바꾼다고 돼 있는데 맞습니까? 나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 아뇨, 제 이름을 그대로 쓰겠습니다. 사실 이 방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입에서 답이 나와 나 자신도 놀랐다. 몇 가지 서류에 전자 서명을 했다. 인터뷰관은 내게 합격증을 주며 3~4주 후에 선서식이 있을 것이며 날짜 통보가 집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아내보다 내가 먼저 미국 사람이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왕이면 둘이 같은 날짜에 선서식을 하면 좋겠다. 인터뷰 합격이라고 끝난 것이 아니다. 아내는 인터뷰 합격하고 교통 티켓을 받는 바람에 선서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운전이 직업인 나로서는 그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 요기 베라가 말했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몸조심이 최고다.
돌아와서는 도서관에 갔다. 빌린 책 반납하고 새 책을 빌렸다. 이번에는 역사에 대한 책들이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통증홈트 목 어깨편을 빌렸다. 대출신청을 한 삼체도 도착해 있었는데 이미 전자책으로 다 읽은 터라 바로 반납했다.
이웃 사는 지인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막 건강보험 갱신을 하고 오는 길이었는데 보험료가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했다. 그는 월 150달러 냈는데 월 280달러가 됐다고 한다. 나도 건강보험 갱신을 해야 하는데 보험료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 택시 운전하면서는 영세민 수준으로 벌어 무료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다. (혜택이라고 해봐야 보험료를 안 낸다는 것이지 거의 병원에 가지 않았다. 갈 시간도 없고) 트럭 운전한 이후로 수입이 늘었기 때문에 얼마간의 보험료를 내야 할 것이다. 만약 보험료가 많이 나온다면 내년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보험으로 갈아타야 한다. 건강보험료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자거나, 아예 가난하거나. 미국에서 중산층은 고달프다.
저녁에는 아내와 쇼핑을 했다. 나는 트럭에서 먹을 간식거리 중 단백질 보충 위주로 샀다. 아내는 힘들다 하면서도 계속 가게를 다녔다. 들이는 시간에 비하면 벌이는 시원찮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장사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매출도 조금씩 는다고 했다.
집으로 온 우편물을 확인하다 TLC에서 온 편지가 있었다. 지난번 나를 사기 절도혐의로 고소한 재판이 무혐의로 판결나자 TLC 검사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아니 뭐 이런 또라이 같은 X이 다 있어? 조만간 다시 재판정에 서야 할 것 같다.
수영이의 삭발
딸아이가 시한부 불치병을 앓는다.
사춘기라는.
어제 수영이가 삭발(削髮)을 하겠다고 돈을 좀 달랬다. 나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20달러를 줬다. 오늘 집에 들어오는 수영이는 삭발 상태였다. 아침에 학교 가면서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었단다. 반농담인줄 알았는데 진짜로 밀다니.
원래 수영이는 머리가 길었다. 얼마 전 아주 짧은 숏커트로 머리를 잘랐다. 그러더니 오늘은 아예 1부 머리로 밀었다. 수영이가 머리를 민 것은 두세 살 이후로 처음이다. 나는 2002년 이후로 지금껏 삭발한 적이 없다.
수영이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도 아무 일 없단다. 11학년인 수영이는 한국으로 치면 고3이다. 미국은 고등학교가 4년이라 대학은 내후년에 간다. 학교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가?
오늘 낮에 아내가 일하는 가게에 갔다. 아내는 이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급여가 밀리자 그만두고 가게 안에 카페를 열었다. 장소 임대료는 밀린 급여에서 매달 제하기로 했다. 생전 장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아내이니 맨땅에 헤딩이다. 갖은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거듭하며 조금씩 전진하는 중이다. 돈은 안 되지만 자기만의 공간과 책임을 갖는 게 좋은 모양이다. 나도 돈벌이보다는 아내가 여기서 무엇이든 배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까이서 도와주지 못하니 미안할 따름이다.
S원장님의 아들 Amos가 지난 이틀간 가게를 봐줬다. 알바비를 주려니 기어코 안 받는다. 처음 만났을 때 청소년이었는데 이젠 어엿한 청년이 됐다.
수영이와 성주 두 아이를 데리고 교정치과에 갔다. 원래 성주는 지난주 약속인데 못 갔고, 수영이는 다음 주 약속인데 미리 가는 것이다.
저녁에는 S원장님 가족과 우리 가족이 중국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두 집의 식구 전부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오랜만이다. S원장님은 내가 처음 미국에 오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이고 지금까지도 각별한 인연이 이어진다.
건강보험 갱신은 인터넷에서 직접 해보려다 역부족으로 포기했다. 4인 가족의 건강보험료는 싼 것이 월 1,200달러 정도였다. 대학 선배이신 송정훈 회장의 사모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선뜻 맡아주셨다. 내년 수입 예상치를 말씀드리니 보험료가 저렴한 커뮤니티 플랜 기준에 든다고 하셨다. 내 주변엔 고마운 분들이 많다.
재정비
기상 후 첫 일과는 운동이다. 학교에 가는 딸아이와 작별인사를 했다. 삼사 주 뒤에 보자고 했더니 딸아이가 포옹(抱擁)으로 답했다. 시민권 선서하는 날이 집에 가는 날이다.
짐을 꾸렸다. 이번에 와서 산 것을 작은 캐리어 가방에 다 담을 수 없었다. 몇 가지는 다음에 가져가기로 했다. 가게에 갔던 아내가 마사지샵에 예약을 해뒀다고 데리러 오겠단다.
노던 162가에 위치한 마사지 가게에 갔다. 전신 마사지 1시간에 30달러다. 예전에 택시 처음 시작했을 때 정말 마사지 잘하는 사람에게 받은 적이 있다. 그는 한 번의 시술로 오랫동안 아프던 내 어깨를 고쳤다. 고문을 당하는 듯 아팠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 이후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받을 때만 시원했다. 오늘도 그랬다. 운동이나 스트레칭으로 푸는 게 더 낫다.
마사지 요금은 주인이 가지고 시술자는 팁이 수입인 모양이었다. 마침 지갑에 현금이 없어 팁을 15달러밖에 못 줬다. 전신 마사지를 잘하는 곳은 드물다. 앞으로는 가끔 발 마사지나 받아야겠다.
나를 내려주고 가게에 갔던 아내가 김밥을 갖고 왔다. 지하철역까지 나를 태워주고 돌아갔다. 제시 익스프레스는 오후 7시, 9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너무 늦다. 그레이하운드를 검색하니 2시 출발이다. 그런데 요금이 비싸졌다. 예약은 싸지만, 오늘 출발하는 버스는 요금을 더 받았다. 마르츠 버스는 3시 출발이다. 요금은 49달러로 항상 같다. 매번 막차만 타고 다니다 낮 버스를 타니 손님이 많았다. 대부분 좌석이 찼다.
6시에 스크랜튼에 도착했다. 셔틀 기사에게 전화하니 한참 걸린다고 했다. 그냥 Lyft를 불렀다.
터미널에 도착해 트랙터샵으로 갔다. 수리는 이미 끝났다. 열쇠를 받아 가이암이 주차된 곳으로 갔다. 앞뒤 에어백 네 개가 모두 빵빵하다. 체크엔진 불도 꺼졌다. 체크엔진 라이트는 리셋만 했을 가능성이 크다. 히마찰 때도 그랬다. 며칠 타고 다니면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딜러샵에 가야 제대로 수리한다.
구내식당은 이미 문을 닫았다. 배가 고파 감자라도 쪄 먹으려고 전자레인지를 돌리는데 APU가 작동하지 않았다. 안전 커버가 열렸다는 에러 메시지가 떴다. 샵에서 수리하면서 APU를 멈추려고 그랬을 것이다. APU가 돌아가면 시끄럽고 매연도 나온다. 뚜껑을 닫았는데도 APU는 동작하지 않았다. 크랭크가 몇 번 돌아가다 말았다. APU가 작동해야 전열기구를 쓸 수 있고 뭐라도 데워 먹을 수 있다. 트랙터샵에 다시 예약을 잡았다. 베이글에 크림치즈와 터키햄으로 차가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트랙터샵에서 수리하러 오라고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으니 APU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트랙터샵에 가서 수리 신청을 취소했다.
돌아와서는 트럭 내부를 정리했다. 빨래하러 가려니 비가 내렸다. 그래도 가서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다. 돌아와서 다시 정리. 다시 가서 빨래 건조. 돌아와 다시 정리. 이제 좀 사람 사는(?) 트럭 같아졌다.
가민 GPS 업데이트도 했다. 운영 소프트웨어와 지도 데이터 둘 다 새 버전이 나왔다. 지도 데이터는 용량이 6G가 넘었다. 주차장에서도 회사 와이파이가 연결돼 몇 시간 만에 업데이트를 마쳤다.
출발 준비는 됐다. 다음 화물은 언제 들어오려나.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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