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와의 밀당
안정훈의 나홀로 지구한바퀴 (10)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거부할 수 없는 유혹, 미래를 가불(假拂)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내게 행운의 땅이었다.
어려울 때 마다 고마운 사람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까메오처럼 깜짝 등장해서 길을 알려주고 홀연히 떠나가곤 했었다.
스리랑카의 네곰보의 비치 호텔에 있는 조형물.
갑갑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지구 유랑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았을 것 같다.
걱정과 두려움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해빙기의 황량한 시베리아와 거칠게 생긴 슬라브인들이 오히려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보지 않은 낯선 땅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이 많이 사라졌다.
원래 이상한 땅, 이상한 나라는 없는 법이다. 단지 내가 낯설어 했던 것 뿐 이었다.
어느 정도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아날로그 초보 여행자였지만 세계 일주도 할 수 있지 않을끼? 하는 희망이 솟았다.
하바롭스키에서 부터는 비행기로 이동 한 탓에 러시아 여행이 예상 보다 일찍 끝났다.
여기서 귀국하기엔 많이 아쉬웠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볼리비안 청춘과 손 잡고 날개를 펼쳤다.
볼리비아 입국 시 황열병 예방 접종 증명서가 없어서 비자 때문에 조금 고생 했지만 이런 좋은 만남의 순간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혼자서 쌍트 페테츠부르그의 낡은 호스텔 7층 다락방에서 하루 종일 쳐박혀서 고민에 빠졌다.
계속 전진 할 것 인가 ? 아니면 여기서 멈추고 돌아 갈 것 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쌍트 페테츠부르그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야간 국제 버스를 타면 새벽에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 할 수 있다.
그리고 북유럽 4개국을 버스와 기차와 배로 여행 할 수 있다.
이어서 발트 3개 국과 발칸 반도 12개 국가도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 갈 수가 있다.
한국에서 북유럽을 한번 여행 하려면 비용이 장난 아니게 비싼데 여기서는 버스만 타면 갈 수 있었다.
나에겐 여행 운도 따라 주지 않는가?
거부 할 수 없는 유혹(誘惑)이었다.
지구 상에는 마음만 먹으면 가지 못 할 곳은 없다.
지금도 이정표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마치 빨리 달려 오라고 손짓 하는 것 같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내면의 야누스와 밀당을 시작했다.
" 너의 로망이 뭐지 ? "
" 당근 세계일주지."
" 그럼 하면 되지 왜 망설이는 건데? "
" 저질 체력인데다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경험도 없어서 그렇지."
" 하하 너 정말 소심해 졌구나. 일단 가는데 까지 가보면 될꺼 아니야 ? 시작은 해봐야지."
" 정말 그럴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여행은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 네가 언제 인생을 준비하고 조건을 다 갖추어 가며 살았었니?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그냥 살아온 거였잖아. 여행이나 인생이나 다를게 없어. "
"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네. 그럼 한번 시작이라도 해 볼까?"
" 그래. 네가 완주하지 못한다고 해도 실패하는 건 아니야.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 버려."
" 알았어. 일단 러시아와 붙어 있는 북유럽을 가보고 나서, 더 여행을 계속 할 수 있겠다고 판단 되면 발트 3국과 발칸 반도 나라들까지 가 봐야겠다."
" 잘 생각했어 여행이란 일단 가보는 거야. 살아 보는 거야. 그리고 되돌아 오는 거야. 어려울거 없어 ."
" 그래도 너무 즉흥적이라 미친 여행이 될까봐 걱정 된다."
" 푸하하 .. 너 나랑 지금 코메디 하냐 ? 내가 모를 줄 알아? 미친 여행이 바로 네 스타일 이잖아! 그리고 꿈 꿔왔던 거잖아. 지금까지 감성의 끌림대로 살아 온거 다 아는데 갑자기 왜 그래? "
" 하지만 이젠 나이가 있는데 그렇게 살면 후회하지 않을까?"
" 걱정도 가지가지다. 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할 거라면 해보고 후회한다고 했었잖아. 모르면 물어 보면 되고, 길을 잘못 들면 헤매면서 즐기면 되는거야."
"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맘이 편해지네. 어차피 내 인생의 로망이 죽기 전에 세계 일주 하는거 였는데 가불해서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 잘 생각 했어. 과거를 소환 하는 것 보다는 미래를 소환하는게 더 현명한 거야. 네가 좋아했던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 대사 생각나지? '내일은 너무 먼 미래라 말 할 수 없어요' 라는 잉그릿드 버그만 환상적인 멘트 말이야. 사람 사는게 오늘 밤에 잠 들었다가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날 수도 있는거 아니겠어? 오늘 하고 싶은거 있으면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하고 살아라.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흘려 보내는게 인생의 가장 큰 실수야, 생각하지 말고 시작부터 해버려 "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국립공원의 폭포 앞에 누워서 나의 갈증을 달래 보았다.
간절히 원하면 찾아 떠나는게 맞다는 걸 다시 느꼈다.
" 지금까지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 운이 따라 주었지만 앞으로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아 걱정이야."
" 너 참 많이 약해 졌구나. 고난 속으로 뛰어 들어야만 성취를 이룰수 있다면서 팔 걷어 붙이고 달려 들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거야? 호랑이가 나이 들었다고 고양이 되는 건 아니야. 용기를 내서 도전해봐. "
" 글쎄 그래도 ......"
" 여행은 적금 타서 떠나는게 아니라 적금 깨서 떠나는 거야. 다리 떨릴 때 떠나지 말고 가슴 떨릴 때 떠나야해. 지금이 너의 남아 있는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야. 지금 떠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꺼야."
" 그래,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몰라도 퇴사 할 때의 건강 상태가 어떨지는 자신 할 수 없지. 지금이 적금 깨야 할 순간인 것 같다."
" 오케이! 주사위는 던져 졌다. 루비콘 강을 건너기로 했다."
야누스의 달콤한 꼬드김이 아니더라도 솔직히 내 마음은 이미 국경을 넘어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가족이나 회사나 주변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가족이야 당근 박수 치며 응원 해 줄거고, 회사는 사표 받아 주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무어라 말 할지?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하고 나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나한테 진짜 관심 있는 건 가족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남들은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마디 씩 툭 던질 뿐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갈지 말지 고민한게 아니라 가야 할 이유와 명분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맸던 것이었다.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가야만 하는 이유와 갈수 밖에 없는 당위성(當爲性)이 5G의 빠른 속도로 떠올랐다.
" 낯선 곳을 향해 도전하지 않고 익숙한 일상에 빠져서 산다는건 나답지 못하다.
도전해야 할 때 피하는 건 내 삶의 방식이 아니다.
도전을 피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쉴 때 내 몸은 어김없이 고장이 나서 아프곤 했었다.
내 삶의 원동력은 도전이 아니었던가 ?
바쁘게 몰두 할 때 내 몸과 마음은 생기가 넘쳤었다.
꿈을 가슴에 품고만 살면 짐이 될 뿐이다. 이제는 꿈이랑 동행이 되어 떠나야 한다."
네팔 포카라 메르디 히말 4200m 베이스 캠프 (MBC)에 올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두번의 고산증을 겪으며 남들 보다 더 힘들게 오랜 시간이 걸려 올라갔기에 감동은 더 했다.
청계산도 힘들게 올라가던 저질 체력이 히말라야에 올랐으니 눈물이 날 만도 했다.
방 구석에 있었으면 감동은커녕, 감기약이나 숙취 해소제를 먹으면서 골골 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름 멋지고 그럴듯한 수사(修辭)를 총동원 해 나의 결심에 물개 박수를 보냈다.
호스텔 7층 다락방 지붕에 붙어 있는 유리 창문을 잠망경 해치처럼 올려서 열고 몸을 내밀어 별들이 총총히 빛나는 새벽 하늘을 향해 내가 이제 본격적인 지구 유랑을 떠난다고 엄숙하게 선언을 했다.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 하늘을 향해 양광모 시인의 ‘멈추지 마라’를 읊었다.
비가 와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새는 하늘을 날고 /
눈이 쌓여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사슴은 산을 오른다 /
길이 멀어도 가야 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멈추지 않고 /
길이 막혀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연어는 물결을 거슬러 오른다 /
인생이란 작은 배, 그대, 가야 할 곳이 있다면 태풍이 불어도 거친 바다로 나아가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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