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어학원 김성수 원장)
홍콩의 거리나 지하철역 근처, 큰 쇼핑몰 안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입점해 있다. 홍콩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가정식을 즐겨 먹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식사 시간이 되면 홍콩의 식당들은 대부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붐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홍콩의 비싼 지대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손님이 꽤 드는 식당이라고 여겨졌던 곳들도 어느 순간에는 그 자리를 다른 식당이나 업종에 내어 주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토록 지대가 비싼 홍콩의 거리에서 굉장히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당군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면요리 전문점이다.
이러한 식당 분포는 홍콩 사람들이 얼마나 면 요리를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홍콩 사람들이 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홍콩에서는 지하철역 근처에 면요리 전문점을 열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홍콩 사람들의 면 사랑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오늘의 알쓸홍잡은 이러한 홍콩 사람들의 면 사랑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중국 동한(東漢) 시대의 역사서에 보면 면 요리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중국 면 요리의 역사는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에서 면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12세기에 등장하니까, 이 기록대로라면 면 요리의 선구자는 중국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7세기의 당나라 시대에는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며, 송나라 시대에는 이미 10여 가지의 면 종류를 판매했다고 한다. 명나라 때는 지금의 라면과 비슷한 면을 만들어 먹었다고도 하고, 이때부터 칼국수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또한 청나라 시대에는 튀긴 면 요리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중국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다양한 면 요리를 즐겨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4,0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는 1,000여 가지가 넘는 면 요리가 존재한다고 한다.
홍콩에서는 이러한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면을 요리에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가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면 종류는 다음과 같다.
[쌍민](生麵 saang1 min6)은 뽑아서 바로 먹는 면을 말한다. 고소한 밀가루의 향이 잘 유지되지만, 따로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끓여야 먹을 수 있고, 빨리 먹지 않으면 면이 붇는 단점이 있다. 보존기간 또한 하루밖에 안 되기 때문에 빨리 소비해야 한다.
[쏙민](熟麵 suk6 min6 -익힌 면 종류)에는 튀기거나 말리거나 찐 상태로 보관하는 면을 말한다. 완전히 익힌 후 말려서 포장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으며, 요리 시간이 짧기 때문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깐쏘이민](鹼水麵 gan2 söü2 min6)도 [쌍민]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는데, 밀가루, 소금, 알칼리수로 만든 면을 말한다. 알칼리수를 면발에 넣으면 밀가루 안에 있는 단백질과 알칼리 성분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면발을 더 쫄깃쫄깃하고 윤기 있게 만들어 준다. 이 과정을 거치면 면발은 노란색으로 변하고 밀가루의 향에 알칼리 향이 더해져 이 면발만의 독특한 향을 갖게 된다. 이 면발의 제조 방법은 청나라 목종 때, 호남성(湖南省) 사람이 광주(廣州)에서 처음 사용해 본 뒤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제조 방법이 꾸준히 개선되어 왔으며,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면 종류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완탕면(雲吞麵 wan4 tan1 min6) 전문점에 가서 면 교체 없이 완탕면을 주문하면 나오는 면이 바로 이 [깐쏘이민]이다.
[마이판](米粉 mai5 fan2)은 면 종류 중 제일 얇은 면이다. 홍콩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동남아 지역에서 널리 소비되는 면의 종류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태국식 면도 이 면의 변형이라고 한다.
[마이씬](米線 mai5 sin3)도 쌀로 만든 면이지만 [마이판]보다 두꺼우며, 원산지는 중국 운남성(雲南省)이다. 현지인이 먹는 특별한 방법이 전하는데, 이름하여 [꿔키우마이씬-다리 건넌 쌀국수](過橋米線 gwo3 kiu4 mai5 sin3)라고 하며, 그 조리법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한 선비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산 속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였다. 아내가 매일 점심으로 국수를 가져다 줬는데 집과 산까지의 거리가 멀어 국수가 항상 식어버렸다고 한다. 남편에게 따뜻한 국수를 먹이고 싶었던 아내는 국물 위에 볶은 고추기름을 올려 국물이 식는 것을 최소화하였고, 산에 도착해서 면과 함께 여러 가지 재료를 추가하여 따뜻하면서도 맛있는 국수를 먹였다고 한다. 아내의 정성이 가득 담긴 국수를 먹으면서 공부한 남편은 결국 과거에 합격하여 출세하였고, 이 조리법도 유명해졌다고 한다. 한편 아내가 남편이 있는 산에 가기 위해 항상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이 요리의 이름이 [過橋米線]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통 운남식 국수에 기름을 줄이고 다양한 재료를 얹어 새롭게 만든 홍콩식 [마이씬] 요리는 최근 수년간 홍콩에서 대세가 되어 홍콩 사람들의 일상 메뉴가 되었다고 한다.
알쓸홍잡을 연재하면서 처음으로 다음 편에 대한 예고를 하는 것 같은데, 다음 편에서는 이번에 못다 한 홍콩의 유명한 면 요리와, 또 그 요리들로 유명한 맛집들을 소개할까 한다. 이 글을 읽고 면 요리 먹으러 식당을 찾아 나서려던 분들은 한 주만 기다렸다가 좀 더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식당으로 향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광동어 한마디
A 唔該,一碗雲吞麵呀。여기요, 완탕면 한 그릇 주세요.
m4 goi1, yat1 wun2 wan4 tan1 min6 a1. [음꺼이, 얏운완탄민아]
B 唔好意思呀,冇曬鹼水麵啦。미안한데요, 깐쏘이민이 다 떨어졌어요.
m4 hou2 yi3 si1 a3, mou5 saai3 gaan2 so:u:2 min6 la3. [음호우이씨아, 모우싸이깐쏘이민아]
A 咁,我要雲吞河呀。그럼, 완탕호(넓은 면) 주세요.
gam2, ngo5 yiu3 wan4 tan1 ho2 a1. [깜, 어이우완탄호아]
B 好呀,多謝。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ou2 a3, do1 zhe6. [호우아, 또제]
ⓒ 위클리 홍콩(http://www.weeklyh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