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의 혼자서 지구 한바퀴 (17)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방에 짐을 놔두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거리 구경을 하며 한블록 정도를 걸어서 올라갔다. 10시가 다 된 시간인데도 거리는 노점상들과 거지, 관광객과 호객꾼들로 북적댔다. 너무 멀리 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 내려 오다가 현지인 식당으로 가서 에그커리를 주문해서 먹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주인이 카운터 옆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는 다음 날 시내를 돌아 볼 계획인데 어디를 어떻게 가는 게 좋은 지를 물어 봤고 그는 자세하게 설명을 잘 해주었다.
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풀어 정리 하면서 여권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지? 이미 쿠바에서 여권을 분실한 경험이 있었는데도 완전 처음 겪는 일처럼 맨붕이 왔다. 이런 걸 자메뷰 (JAMAIS VU)라고 하는 건가 보다. 이미 경험 했던 일인데도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는 현상 이었다. 머리 속이 텅 비어 버렸다.
마음을 진정 시키고 체크인 할 때 부터 저녁 식사하고 돌아 와 내 방에 들어 올 때까지의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애를 써 봤다. 카운터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돌려받은 것 같지가 않았다. 내려가서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쿠바의 까사 주인과 판박이처럼 똑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내가 식당에서 자켓을 벗어 의자에 걸고 식사를 했다고 하니 거기서 도난을 당 한 거라고 단정 했다. 호텔 사장과 둘이서 내가 갔던 거리와 식당을 뒤졌다.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 왔다.
이미 쿠바에서 한 번 잃어 버려서 재발급 받은 경험이 있는지라 마음의 정리와 수습이 빨리 되었다. 이틀 동안 기다리려 보다가 포기하기로 했다. 다행히 인도는 경찰서에 직접 가지 않고 온 라인으로 분실 신고를 하니 전자 서명이 된 FIR ( First Information Report ) 이라고 부르는 확인서를 하루 만에 보내 주었다. 호텔에서 확인서를 출력해서 재발급 서류에 첨부하고 한 부는 임시 신분증으로 소지하고 다녔다.
대사관에 찾아 가서 분실 재발급 신청을 하고 DHL 요금을 결재 한 후 일주일 만에 새 여권을 受領(수령) 했다. 새 여권과 서류를 준비해서 인도 외국인 등록 사무소 ( FRRO)에 가서 다시 비자를 받아야 했다. 2018년 2월부터 E-FRRO가 시행되고 있어서 염려했던 것 보다 수월하게 처리 할 수 있었다.
신청은 인터넷으로 하고 수령은 직접 방문해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분실 경험자들이 아주 상세하게 재발급 절차와 준비 서류 등을 올려 놔서 많은 도움이 됐다.
새로 비자를 받으면 2주일 내에 인도에서 출국해야 하는 제한 사항이 있었다. 원래 60일을 생각하고 짠 여행 계획을 대폭 수정 해야만 했다. 인도 여행 기간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영혼의 고향이라는 바라나시와 서양인들의 낙원인 아람볼 비치를 메인 여행지로 정했다. 자이푸르, 아그라, 조드푸르, 타지마할 궁전 등은 그냥 관광 하듯이 둘러 보고 말았다. 원래 가보려고 했던 다람 살라, 함피, 뱅갈루루, 뭄바이, 콜카타는 다음에 한 번 더 와서 가자고 미루었다.
델리의 호텔에서 열흘 정도 묵으면서 주인인 라마와 친해졌다. 그는 언제나 친절했고 무엇이든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불과 23살의 나이에 임대 호텔 이지만 사장이라니 놀라웠다. 네팔 국경 근처의 산촌에서 가난한 집의 7 형제중 넷 째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다고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가출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호텔의 손님들은 주로 서양인들이었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가 독학으로 공부한 능숙한 영어로 응대를 아주 잘 했다. 부킹 닷컴의 고객 평점이 8,0이 넘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었다. 내가 무료 할 까봐 올드 델리의 숨겨진 로칼 맛집을 같이 가 주기도 하고, 혼자 배낭 여행 중인 스위스 청년과 나를 조인 시켜서 투어 할 수 있게 다리를 놔주기도 했다. 기차표와 버스표를 예매 해주고 지하철 패스를 貸與(대여) 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늦은 밤 까지 옥상 카페에서 속내를 털어 놓고 서로의 고민과 가족 이야기까지 나누는 절친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왓츠앱( WhatsApp ) 을 통해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있다.
잃는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여권을 잃어 버리는 바람에 인도 여행 일정의 반이 줄어 들었지만 언제 다시 가더라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
여권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잃어 버리고 나니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무엇을 해야 하나 ? 어디로 가야 하나 ? 이제 그만 귀국해야 하나 ?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고 모든 게 막막 하기만 했었다. 의욕이 상실 되어 한 동안 무기력 상태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신기 하게도 나 만의 진짜 여행은 바로 그 때부터 시작 되었다.
<17편 계속>
인도의 델리에 있는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지의 호텔 사장 라마와 스위스인 배낭 여행자 그리고 나 , 여권을 잃어 버린 덕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올드 타운의 로칼 맛집을 찾아 갔다. 라마의 안내를 받아 어두운 올드 타운의 밤 거리를 구석구석 구경하고 다녔다. 라마는 지금도 나와 연락하고 지낸다.
영혼의 젖줄기 갠지스 강에서 소 님 께서 목욕 중 이시다.
여권과 비자 재발급 신청 서류들 . 나 보다 먼저 정신줄 놓쳐서 여권을 분실했던 경험자들이 많아서 우선 위안이 됐다.그들의 자세한 설명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 와 있어서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도 경찰서에 직접 가지 않고 호텔에서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하룻 만에 온 라인으로 받은 분실 확인서 . 전자 서명이 든 확인서를 출력해서 대사관에 제출 했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갠지스 강 북쪽에 있는 화장터다. 밤에도 시체를 태운다. 관광객들은 화장하는 걸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배를 타고 몰려 온다. 여기 화장터는 항상 대기 하는 줄이 길다. 남쪽에 전기 화장터가 있다. 전기 화장터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시설도 깔끔 했지만 인도인들은 모두가 장작에 태워지고 싶어 했다. 여기서 화장하면 죽어서 다시 환생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설명을 듣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다시 환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서 이 곳에서 화장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생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펐 으면 다시 태어 나지 않기를 바랄까? 여기서 3-4시간 화장하고 나면 시체는 재가 되지만 그래도 타지 않고 남는게 있다고 한다. 남자의 가슴뼈와 여자의 골반 뼈다. 의미와 상징성이 크다. 가슴 뼈와 골반 뼈는 부수지 않고 재와 함께 그대로 갠지스 강에 뿌린다고 했다.
인도에 가서야 왜 간디의 표정이 저렇게 수심이 가득하고 오묘하고 복잡한지 이해 할 수가 있었다.
인도 서남쪽 고아 주에 있는 아람볼 비치. 여기는 인도가 아닌듯 했다. 예전에 포루투칼이 지배해서 인지 성당도 제법 많았다. 장기 체류하는 서양인들이 넘쳤다. 그들에게 아람볼은 파라다이스 였다 .호텔과 레스토랑의 시설과 분위기 그리고 음식의 퀄리티는 좋았고 요금은 쌌다. 나도 떠나기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