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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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가 넘어 화물이 준비됐다는 문자가 왔다. 천천히 준비하고 타이슨으로 향했다. 처음 오는 곳이지만 절차는 다른 곳과 비슷해 별문제 없었다. 내가 가져갈 트레일러는 마침 내가 빈 트레일러를 내린 옆자리에 있었다.

 

새벽 4시에 타이슨을 출발했다. 종일 달렸다. 오늘의 오디오북은 The Glass Castle 유리성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 회상록이다. 절반 정도 들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랄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부모 밑에서 네 남매가 서로를 도와가며 자립하는 얘기다. 저자는 둘째 딸이다. 위로 언니, 밑으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아빠는 멋지고 자상하며 재주도 좋지만, 직장에서 계속 잘린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사막으로, 산골로 가족을 이끌고 방황한다. 그는 금을 캐서 돈을 벌면 태양열, 풍력, 지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유리집을 짓겠다는 꿈이 있다. 그러나 술만 먹으면 사람이 돌변하며 결국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엄마 역시 어느 날 화가가 되겠다며 미술과 글쓰기에 전념하며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세상 기준으로는 한마디로 철없는 부모다.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아이들은 밖에서 쓰레기통을 뒤진다. 훗날 아이들은 살길을 찾아 뉴욕으로 간다. 나중에 부모도 뉴욕으로 온다. 노숙자로 사는 것도 멋지지 않냐며, 자녀들의 도움을 거부하고 홈리스로 산다. 그러니까 독특한 삶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제 플로리다에서 아이 다섯을 키우는 31세 싱글맘이 체포됐다는 기사가 났다. 아이 책가방에서 바퀴벌레 수백 마리가 나오고, 2학년 여자 아이 몸에는 때가 덕지덕지 끼고 몇 주일째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며 악취를 풍겼다. 교사가 아이 옷을 사줬더니 계속 그 옷만 입고 다녔다. 보다 못한 학교에서 당국에 신고했다. 보안관이 집에 가보니 집안은 온통 바퀴벌레 천국에, 고양이똥 천지고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아이들은 언제 샤워나 목욕을 했는지 기억을 못 했다. 아이들 속옷은 똥과 오줌으로 절어있었다. 엄마 방문을 여니 그곳은 깨끗하고 먹을 것도 있었다. 그녀는 여자 혼자서 아이 다섯을 키우기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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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향하고 있다. 이틀 전 아이들이 지하실에서 처참한 상태에 놓인 꿈을 꿨다. 이게 다 우연인가?

 

앨라배마주 231번 국도변 갓길에 멈췄다. 오늘은 여기서 잔다. 가는 경로상에 약 150마일가량 트럭스탑이 없는 구간이 있는데 하필 거기에 걸렸다. 로컬 트럭스탑 몇 곳을 시도해봤지만 트럭스탑이 귀한 곳이라 그런지 낮에도 자리가 없었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면 못 세울 것도 아니지만 굳이 그러기는 싫었다. 11시간 운전시간을 넘기고도 20분 이상을 운전해 가다 길가에 세울 만한 곳을 발견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 차체가 흔들거린다.

 

50마일을 더 가면 플로리다에 들어선다. 내일도 최대한 가서 트럭스탑이나 휴게소에서 자고 모레 배달 시간에 맞춰 출발할 예정이다. 플로리다에서는 뭘 싣고 나오나? 요즘 캘리포니아로 가면 딸기를 싣고 나온다던데.

 

 

유리성

 

 

새벽에 일어나니 내 뒤로 트럭 몇 대가 주차했다. 어둠 속에 트럭들을 뒤로하고 출발했다.

 

The Glass Castle 후반부를 다 들었다. 무책임한 부모의 행동에 화도 나면서 인간적으로는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정도의 차이지 나도 저자의 부모와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봤다. 저자가 글도 잘 썼고 낭독자의 목소리 연기도 훌륭해서 한 편의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듯했다. 성숙한 인간이라면 부모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도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리석고 이기적인 부모 밑에서도 아이들이 차례차례 탈출구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삶이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접점에서 균형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닐까.

 

웨스트 팜비치 휴게소에 섰다. 62마일 더 가면 된다. 마이애미 근처는 주차가 더 어려울 것 같아 이곳에 멈췄다. 어차피 시간도 거의 다 썼다. 내가 들어올 때 마침 다른 트럭이 출발해서 자리가 하나 났다. 6시간 이상 주차하거나 철야 주차하면 견인해 간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트럭을 견인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의례적인 경고문에 가깝다. 10시간 휴식을 취해야 하고 오갈 데 없는 트럭들을 어쩌란 말인가?

 

마이애미는 거의 플로리다 최남단이다. 플로리다에 몇 번 배달 왔지만 이번에 가장 남쪽까지 왔다. 페북 프라임 리퍼 그룹에 물어보니 오렌지 주스나 꽃을 받아서 나갈 확률이 높다고 했다. 해산물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화물을 받기 위해 조지아주까지 빈 트럭으로 올라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야 주는 대로 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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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지능

 

 

마이애미 남쪽 홈스테드 꽃 재배단지의 한 화초농장 앞 갓길에서 밤을 난다. 짐을 받는 날짜는 내일인데 아직 약속 시각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나마 주차할 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오전에 배달 마친 후 받은 화물이다. 여기서 화초를 실어 루이지애나 한 곳, 텍사스 두 곳을 들러 콜로라도 러브랜드가 최종 배달지다. 모두 월마트 배달이다. 총 거리가 2,400마일 정도 된다. 단일 배달 건으로 받은 가장 긴 거리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가는 일정이라 일주일 내내 이거 한 건이 전부다. 거리로 따지면 평소 수준이니 괜찮다. 텍사스에서 이틀은 이동 거리가 얼마 안 된다. 이 기간에 네이슨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외 다른 날은 하루 사오백 마일 수준으로 이동하면 된다. 이번에 플로리다에 오면서 보니 시속 58마일로 달려도 오백 마일 이상은 거뜬히 넘길 수 있었다.

 

배달처 이름이 Costa Nursery라 처음에는 뭘 나르나 싶었다. nursery가 유아원이란 뜻만 있는 줄 알았더니 묘목이나 화초를 재배하는 농장에도 쓰인다는 걸 알았다.

 

밤이 되니 일꾼들은 모두 퇴근하고 길에 다니는 차도 없어 조용하다. 습하고 기온이 높아 에어컨을 틀어 놓았다. 이 농장은 60에이커니까 약 7만평 규모다. 밭을 제외한 건물 규모는 작아 닥에 대려면 도로를 막고 들어가야 한다. 나는 유턴해서 반대 방향에서 와야 하는데 2차선 도로라 갓길을 다 이용해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안전하게 다른 농장 몇 개를 돌아서 오는 것이 좋을지도.

 

오늘은 그동안 아꼈던 작전식량을 꺼냈다. 김영주 씨에게 받은 것이다. 발열팩이 펄펄 끓어서 놀랐다. 이 정도로 뜨거워지다니. 세상 좋아졌다. 만주에서 개 타고 독립운동할 때는 이런 것 없었는데.

 

딸아이가 권해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아한 관찰주의자. 원제는 Visual intelligence다. 1장만 읽었는데도 내게 꼭 필요한 책인 걸 알겠다. 망막이 눈이 아니라 뇌 일부분이었다니. 운전하면서 오토파일럿을 할 때가 잦다. 눈은 뜨고 있어도 사실상 보지 않는 것이다. 뇌가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술작품 관찰을 통해 사물과 상황을 명확히 보는 법을 가르친다. 발송처에서 시험해 봤더니 평소에 못 보고 지나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에 한 장씩 읽기로 했다. 11일이면 된다. 오디오북은 없었다. 그림을 봐야 하는 책이라 오디오북을 보는 의미도 없지만.

 

내게 책을 권해준 수영이는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다 왔다. 성주와 달리 한글을 다 깨치고 왔기 때문에 십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어책을 잘 읽고 한국어로 글도 잘 쓴다. 어쩌면 수영이도 나처럼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을 다니다 온 성주는 한글을 떼지 못하고 와서 그런지 한국어책은 거의 보지 않는다. 한국어 어휘도 제한적이고 발음도 어눌하다.

 

내일 짐 싣는 동안 밥테일로 근처 월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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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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