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도 했지만 얻은게 더 많았다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 한바퀴 (19)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다음 날 숙소에서 만나 친해진 한국인 부부랑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데 아는 현지 한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교민 단톡방에 내 여권 사진이 올라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여권을 잃어 버린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 식품점에서 일 하는 현지인 직원이 내 여권을 주워서 주인에게 맡겼다고 했다.
여권 주인의 연락처를 모르니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한인 단톡방에 올렸던 것이다.
앗 뜨거라 ! 바로 백구촌 다미원 이라는 식품점을 찾아 갔다.
월요일은 쉬는 날이라서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자기 일처럼 나서서 알아 봐 주었다.
근처에 있는 다미원 식품점 사장님 집 앞 까지 데려다 주었다.
한참을 두드리니 철대문이 열렸다.
여권을 돌려 받고 감사를 표하고 돌아오는데 그 때서야 맥이 탁 풀렸다.
조상님이 보우하사 십년감수 한 느낌 이었다.
어행 하면서 여권, 노트북, 배낭, 핸드폰 등을 분실하고 나서 내게 치매 증세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의심이 들었다.
방금 전에 썼던 물건도 어디에다 두었는지 몰라서 헤매는 일이 茶飯事(다반사)였다.
이렇게 기억력 ,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혼자 세계 일주를 하는건 무리가 아닐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증세가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 지지는 않을 꺼라고
혼자 진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자주 깜빡 깜빡 하긴 하지만 그나마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지금 가는데 까지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꽃 시절이니까.
사실 난 젊었을 때도 사람 얼굴이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실수와 실례를 자주 범했었다.
길치 인데다가 전화 번호나 노래 가사 같은 건 아예 외울 엄두 조차 내지 못했었다.
대신 나는 메모광 이었다.
특히 업무에 관해서는 회의, 전화 통화, 아이디어, 일정 계획 등을 모두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기억력이 부족해도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 메모 덕분에 치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메모를 전혀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언제 어디에 갔었는지 ?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는지? 등 메모 쪼가리가 하나도 없다.
기억을 되살리느라 애를 먹고 있다.
정리 보면 최근에 갑자기 정신줄을 놓친게 아니었다.
옛날에도 나는 암기력과 기억력이 꽝 이었다.
샤프 하지도 않았었다. 그냥 이거다 싶으면 열심히 했을 뿐 이었다.
예전에는 스스로의 핸디캡을 잘 알기에 메모를 열심히 해서 커버 했었다.
지금은 게을러져서 메모도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왕년에도 별로 좋았던 머리가 아니었다.
최근에 갑자기 나빠진 게 아닌게 분명했다. 흐흐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구만 .....
여권을 잃어버린 상황을 곱씹어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장거리 이동, 야간열차나 비행기를 타고 새벽이나 밤 늦게 도착, 몸이 피곤한 상태,
도착 첫 날 등의 상황에서 여권 분실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충분한 휴식, 주간 이동, 컨디션 관리 철저, 도착 첫날의 체크 리스트 작성 및
확인 등을 하면 될 것 아닌가?
문제점을 찾아서 정리 해보니 어느 정도 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오케이 그냥 계속 가보자. 어렵게 생각 할 것도 없다.
여행하면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는데 땅굴 파고 나온다고 놀랄 것도 없다.
인생은 塞翁之馬(새옹지마)다. 여행도 새옹지마다.
새옹지마란 세상만사가 변화무쌍해서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로 변할 수도 있으니
재앙에 슬퍼하지 말고 복도 마냥 기뻐만 할게 아니라는 고사성어다
여권을 3번 씩이나 잃어버린 바보라서 남 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내가 얼마나 하잘 것 없고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고생도 했지만 얻은게 더 많았다.
<계속>
세고비아의 대수로는 너무 유명하다. 그 옛날에 도로 처럼 상수도로를 건설해서 물을 끌어다 썼다고 한다. 스페인 여행하고 온 사람들의 사진에 빠지지 않는다. 대수로의 아치형 돌 다리 사이로 바라 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렀다.
프랑스 셍장에서부터 800키로를 걸어온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디 콤포스텔라의 대성당~~ 긴 여정을 마친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리를 쉬면서 감격을 되새겼다. 여기서도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 땐 도전 할 엄두도 나지 않아서 부럽기만 했었다. 그러나 네팔에서 히말라야 등정을 마치고 나서는 나도 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기다려라 산티아고 순례길아.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랫만에 보는 삼겹살 식당 ~ 백구촌이라 식당 이름도 백구였다. 왠지 깔끔하지 않고 촌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정감이 갔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이길래 여기가 백구촌 인가? 하고 내렸다. 그 곳은 백구촌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장로 교회였다. 백구촌 식당과 마켓이 어디냐?고 물으니 식사 않했으면 여기서 하고 가라고 잡아 끈다. 일요일이 마침 목사님 생일이라 미역국, 떡, 불고기 등 등 푸짐했다. 일부러 장로 한 분이 내 앞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칠 때 까지 말 벗을 해주었다. 우리 동포들 살아가는 얘기, 백구촌에 관해 여러가지 새로운 얘기를 많이 들었다. 고마운 분들이었다.
백구촌 입구 - 한국 분위기 물씬 풍기는 태극 문양 장식을 한 대로상의 대문이 있어 찾기 쉬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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