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어제 배달처에 10시에 도착했다. 좁고 까다로운 곳이다. 통행량도 많다. 무슨 사고가 났는지 가뜩이나 좁은 통로에 소방차와 구급차가 막고 있다. 왼쪽은 트레일러가 세워져 있다. 끼다시피 한 공간을 파고들어 지나갔다.
사무실에서 체크인하니 나가서 도로에서 기다리란다. 밖은 일반 도로고 트럭을 세울 만한 곳이 아니다. 다른 트럭은 어디서 기다리는지 안 보인다. 그나마 늦은 밤이니 교통량이 적어 人道(인도)로 붙여 세웠다. 처음에는 좀 떨어진 주택 앞에 세웠다가 리퍼 소음에 시끄러울 것 같아 11시 넘어 발송처 입구 근처에 세웠다.
직원 주차장에는 푸드 트럭이 와서 음식을 팔았다. 야간 근무자를 위한 것인가보다. 6달러 주고 밥과 치킨을 사 먹었다. 발송 닥은 두 개인데 진입로 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 트럭을 돌려 나와서 후진해야 한다. 어떻게 댈까 연구하는데 마침 한 트럭이 발송 도어로 후진했다. 내 생각대로였다. 다시 트럭으로 돌아오니 경찰차가 트럭 옆에 서 있다. 으앗! 서둘러 뛰어갔다. 여기 주차할거냐? 아니다. 지금 닥에 대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면 깜박이라도 켜고 있든지. 알았다. 경찰차는 그냥 떠났다. 다행이다.
자정을 넘겨도 연락이 없다. 새벽 2시 넘어 9번 도어에 대라고 전화가 왔다. 어려운 곳이지만 조심스럽게 후진해 닥에 댔다. 서류 받고 출발한 시각은 새벽 3시가 넘었다.
중간에 Gary에서 주유하고 다시 달렸다. 오전 6시쯤 피곤해서 휴게소에서 1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글렌에게서 문자가 왔다. 요즘 배달 지연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만 6건이 있었단다. 글렌은 내게 밤 10시까지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가능하다고 했다.
오하이오의 한 휴게소에 들렀다. 여기서 8시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도착지가 동부시간이라 1시간 까먹었다. 거기다 오다가 1시간 잤기 때문에 생각만큼 여유시간이 충분하진 않았다. 주유소에 들러 리퍼 연료도 채우고 가야 한다. 글렌이 염려한 이유를 알겠다. 일단 샤워를 하고 잠을 잤다.
오후 7시 30분, 8시간 휴식을 마치고 출발했다. 지금부터는 62마일 전속으로 달린다. 목표 지점 20마일 앞둔 트럭스탑에서도 신속하게 주유만 하고 나왔다.
배달처에 도착하니 9시 45분이다. 제시간 안에 왔다. 전에 와 봤던 곳이다.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바깥에 따로 있는 빈 트레일러 야드로 향했다. 프라임 트레일러는 세 대 있었다. 열어보고 내부가 깨끗한 것으로 연결했다. 따로 청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 생각은 아니었는데, 밤이라 그런지 조용하고 다른 트럭의 통행도 별로 없다. 다음 화물이 들어오기까지 여기 있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내와 통화했다. 아내는 댄스 강습에 다니기 시작했고, 영화 인턴으로 쉐도잉 연습 스터디를 한다고 했다. 쉐도잉 좋지. 나처럼 입이 잘 안 열리는 사람은 할 필요가 있다. 생활영어는 어려운 게 아닌데,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지 잘 몰라 입이 안 떼어진다.
핏스톤 야간 디스패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 9시까지 펜실베이니아로 가는 화물을 리파워할 수 있냐고 묻는다. 거리는 250마일 정도다. 피곤해서 싫다고 했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다. 리파워 자체가 번거롭다. 다른 운전자 만나서 서로 트레일러 교환하고. 낮이면 그나마 생각해봤을 텐데. 거리도 얼마 안 되고, 다시 동부로 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지금 움직이면 내일 낮에 자다가 밤에 다시 일하는 일정이 되는 것도 별로다.
Thank you, Ohio
아침에 누가 문을 두드렸다. 다른 프라임 드라이버였다. 내 옆자리에 트레일러를 주차하려는데 공간이 좁다는 것이다. 이해한다. 정말 좁은 곳이고, 나도 처음 왔을 때 엄청 고생했다. 다른 트럭이 있으면 후진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얼른 짐을 챙겨 트럭을 빼주었다. 아직 10시간 리셋은 끝나지 않았고 다음 화물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10마일 떨어진 고속도로 휴게소로 이동했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배달지가 펜실베이니아다. 결국은 그쪽으로 갈 운명이구나. 샘스 클럽끼리 이동하는 화물이다.
라이브 로드인 줄 알고 갔더니 드랍 앤 훅이다. 여직원이 가져갈 트레일러 번호를 묻는다. 프라임앱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데? 직원이 휴대폰에서 메시지 메뉴를 열란다. 거기에 발송처 메시지를 보란다. 과연 거기에 트레일러 번호가 있었다. 어떻게 나보다 더 잘 아냐?
냉방기 가동이 필요 없는 드라이 로드다. 발송처에 저울이 있어 무게를 달아보니 허용치 안에 있었다.
I-76을 타고 가는 코스다. 오하이오주 마지막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I-80에만 있는 줄 알았던 트럭커 라운지가 여기도 있었다. 고맙다. 오하이오주야. 덕분에 오늘도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오후 6시 30분, 배달지까지 약 50마일 남긴 Cumberland Valley Service Plaza에 도착했다. 여기서 자고 갈 예정이다.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니 이곳은 가능한 한 빨리 배달하기를 원한단다. 내일 오전 약속이지만 오늘 배달해도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오버 나이트 파킹도 가능하단다. 하지만 내일 가기로 했다. 두통 때문이다. 빠른 게 능사는 아니다. 무리할 필요 없다.
저녁으로 예전에 김영주 씨에게 받은 즉석 비빔밥을 먹었다. 그동안 아껴뒀던 비장의 메뉴다. 맛은 괜찮은데 양이 적어 아쉽다. 결국, 컵라면 하나를 더 깠다.
판타지랜드를 읽기 시작했다.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커트 앤더슨의 2017년작이다.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세상이 된 미국을 저자는 500년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재미있을 것 같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3분의 1은 성경의 천지창조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며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고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절반은 인격신이 지배하는 천국이 존재한다고 완전히 확신한다. 다른 나라에도 그런 사람은 있지만, 미국이 압도적이다. 미국인 3분의 1만이 창세기 창조 이야기가 사실을 글자 그대로 설명한 게 아니라 생각한다.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미국 사회를 바라본 저자의 시각이 흥미롭다.
독립기념일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밤새 무슨 꿈을 꿨는데 기억이 안 난다. 4시 30분에 알람을 맞췄는데? 전화기를 확인하니 오후 4시 30분으로 설정돼있다. 오전 중으로 도착하면 되니까 상관은 없다. 몸에 필요한 만큼 잤겠지.
월마트와 샘스 클럽은 같은 계열사로 알고 있다. 월마트에는 항상 DC(Distribution Center)에 배달한다. 오늘 간 샘스 클럽은 개별 매장이었다. 트럭 출입구는 건물을 지나서 있는데, 처음이라 모르고 승용차 출입구로 들어갔다. 휴일 오전이라 주차장은 한산했고 닥으로도 연결됐다. 오전 9시부터 배달 접수한다고 문에 쓰여 있다. 기다려야 하나? 손잡이를 돌리니 열렸다. 들어가니 사람이 있었다. 통화 중이라 기다리란다. 통화 끝나고 서류를 받더니 바로 사인해서 준다. 닥에 대고 다시 올 필요 없단다. 내가 배달한 화물은 고양이 사료였다.
닥에는 프라임 트레일러가 있었다. 그 옆에 대고 빈 프라임 트레일러를 연결했다. 내부가 지저분했다. 반드시 청소가 필요하다. 휴일이라 블루비콘 말고는 문 연 곳이 없다. 검색하니 25마일 거리에 블루비콘이 있다. 아침에 지나온 코스다. 여기서 그쪽으로 가는 코스는 달랐다. 경험상 트레일러 와쉬아웃은 미리 해두는 것이 좋다. 설령 반대 방향으로 다음 화물이 들어오더라도 오늘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 거리를 국도로 갔다. 평균 제한 속도가 45마일이다. 55마일 구간은 짧았다. 마을을 지날 때는 제한 속도가 35마일로 떨어졌다. 시골 언덕길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우왓! 탄성이 절로 나왔다. 블루비콘에 도착하니 오프듀티 드라이브를 57분을 썼다. 국도로 오느라 속도를 못낸 탓이다. 오프듀티 드라이브는 하루에 1시간까지 쓸 수 있다. 1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운전으로 전환된다.
트레일러 세척을 마치고 근처 플라잉 제이로 갔다. 길 건너 작은 주유소에 인도 식당이 있었다. 독립기념일이니 성찬을 먹어야지. 치킨 티카 마살라에 갈릭 난, 망고 랏시를 시켰다. 가격은 18달러. 내용물에 비해 싸지는 않다. 맛은 괜찮았지만, 일회용 그릇에 나왔고 인도 식당에 흔히 있는 다른 반찬도 없었다. 손님이 나뿐인 이유를 알겠군. 이 주유소는 유지가 되나? 길 바로 건너에 250대 규모의 대형 주유소가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 플라잉 제이에서 샤워를 했다. 요즘 매일 샤워하는군. 샤워를 마치니 다음 화물이 들어와 있다. 내일 아침에 받아서 오후에 뉴저지로 배달이다. 거리는 얼마 안 된다. 화물이 없긴 없나 보다. 발송처에서 오버나이트파킹이 된다니 오늘 가기로 했다. 샤워도 했고 트럭스탑에 더 머물 이유가 없다.
발송처에 도착하니 트레일러 내려놓고 기다리란다. 내 화물이 준비되면 연락해준다고. 이곳은 버섯 농장이다. 직원 주차장에 차가 가득한 것을 보니 휴일인데도 정상근무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시간 안 지나 화물이 준비됐다고 서류에 사인하러 오란다. 트레일러 연결을 하니 내 근무시간이 2시간 30분 남았다. 갈 거리는 120마일. 시간이 빡빡하다.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 배달이니까.
저녁이 되니 모두 퇴근하고 밤새는 트럭은 나뿐이다. 불꽃놀이 소음이 간간이 들렸다. 숲 너머로 불꽃이 조금 보였다. 숲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아내 덕분에 영어 공부 빡시게 하게 생겼다. 아내가 하는 쉐도잉 훈련은 노가다 수준으로 지겹고 힘들어서 그렇지 효과는 확실하다. 안 들리던 미국인의 발음이 들리고 비슷하게 흉내도 낼 수 있다. 나보고도 하란다. 아내는 몇몇 사람과 이미 스터디를 하고 있다. 영화 대사를 따라한 자기 목소리도 녹음해서 보냈다. 아내는 단단히 작심했나 보다. 미국 처음 왔을 때 이런 식으로 공부했으면 아내는 학교도 수월하게 다녔을 것이고 제대로 된 직장도 구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 나도 지금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원어민 수준으로 듣고 말할 수 있다면 훨씬 많은 기회가 열린다. 일상에서 미국인들이 어려운 영어를 쓰지 않는다. 쉬운 말인데도 그 특유의 연음과 끊어 읽기에 익숙하지 않아 잘 안 들린다. 그 고비만 넘으면 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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