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밖에 없는 사진, 매년 CD에 충실하게 복사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집에 불이 나면 여러분은 뭐를 제일 먼저 들고 집밖으로 뛰어 나가겠습니까? 대부분의 미국시민들은 가족사진첩을 들고 뛰어나가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아마도 동포들께서도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가족들의 희로애락을 가장 생생하게 담은 기록은 사진첩일 것입니다. 엄마아빠의 데이트 사진을 비롯해서 태어나는 자녀들의 순간 순간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족사진보다 더 귀중한 소장품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부모님의 가족 사진첩을 간직하지 못한 아쉬움과 서러움을 저는 평생 안고 살았습니다. 6.25 전쟁이 터지자 북쪽의 동조자들이 시골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던 저의 집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기 때문에 모든 가족 사진도 다 함께 타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모습을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아쉬음이 항상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 친척집에서 소중한 사진 한장을 제 누이 동생이 찾아 얻어 왔습니다. 그 사진은 제가 한살 되었을 때 어머님이 저를 무릎에 안고 외삼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은 퇴색하여 누렇게 변했지만 저는 분명히 어머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만 여섯살 때 어머님께서 별세하셨지만 그 인자하신 모습을 저는 80평생 머리와 가슴에 지니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저보다 세살 아래인 누이동생은 어머님의 모습을 어렴픗이 기억하겠지만 돌 지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제 아우는 어머님의 모습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어머님의 모습을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던 저는 아우에게 어머님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없는 것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비록 퇴색은 되었지만 그런 소중한 어머님의 모습을 입수한 기쁨과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시로 전문가에게 맡겨서 크게 확대하여 여러 사본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동부에 살고 있는 아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님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던 어우에게 어머님의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말했을 때 아마도 아우보다 제가 더 감격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소중한 사진을 아우에게 우송을 했는데 그 사진을 받아보고 아우는 어떤 반응을 할지 사뭇 궁금합니다. 어머님의 무릎에 안긴 한살 배기 아기가 바로 저라니요. 83년 전의 사진인 것입니다. 어머님의 체온을 새롭게 느끼는듯한 착각에 그 동안 마음속에 남아있던 이쉬움과 그리움이 어느정도 가라 앉는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가족 사진을 보관하기가 용이해졌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나 인화된 사진을 스캔해가지고 한 개의 CD에 수백장을 저장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가족 사진을 간직하지 못했던 일종의 허무감을 보완히게 위해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모든 사진을 CD에 저장을 합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도 다 CD에 저장을 했습니다. 제가 생을 마감한 후에도 제 자녀들과 손자녀들이 영원히 가족의 전통과 기억을 이어나갈 자료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와 같이 CD에 사진을 저장하시는 분들께서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만 한 가지 권고를 해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년 CD를 새롭게 복사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CD에 저장된 사진은 1년 이상 지나면 스스로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CD에 저장된 사진들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동영상도 DVD로 저장할 수가 있지만 그 영상의 존속기간에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지만 가끔 망중한을 이용하여 사진이나 동영상이 저장된 CD나 DVD를 재생하면서 즐거웠고 낭만적인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그러면 이 생을 주신 하나님과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