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일본의 경제도발과 동북아 정세
▲ 겨레하나 회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에 대한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아베 규탄과 '친일적폐'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
(LA=코리아위클리) 박문규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대학 학장·정치학)
배경
1990년 대에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됨으로 이차 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했던 냉전체제는 와해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미래의 적이라고 간주하여 동북아 뿐 만 아니라 태평양 일대의 국가들을 묶어서 대 중국 견제 세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는 일본의 재무장을 허락하여 중국 견제의 견인차로 삼고 남한을 그 전초 기지로 삼겠다는 그림을 오래 전부터 그려왔다. 다시 말해 미국, 일본, 대한민국을 동맹군으로 하여 새로운 냉전체제를 동북아에서 수립하고자 하고 있다.
2차 대전 직후에 형성된 제일차 냉전의 출발지점이 되어 한국 전쟁이란 동족상쟁의 비극까지 겪었던 한반도가 이제 다시 시작되는 미중 냉전의 전초기지가 된다는 것은 한민족의 운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고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 상당한 고통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단코 피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새 냉전 구도 속에서 일본은 미국의 패권 아래에서 일본보다 국력이 약한 대한민국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고자 하는 야망을 갖게 되리 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과는 지정학적으로 인접해 있어서 국토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엄청나게 많이 얽혀 있고 특히 한민족은 일본과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의 문제가 남아있어 감정적인 앙금도 쉽게 없어지기 힘든 상태에 놓여있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을 단순히 국력만 가지고 종속화시키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이번에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자들의 배상권을 인정한 판결을 보고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한국이 일본에 종속되어 있는 나라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경제력 시위를 한 것임이 명백하지만 그 후에 전개되는 사건들은 한일 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주고 있다.
1965년 체제와 한일 갈등
1965년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 정부와 일본의 사토 에이사구(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 총리 정부 사이에 맺은 한일 기본조약은 4개 협정(청구권, 재일 동포 법적 지위, 문화재, 어업)으로 되어 있는데 이번에 문제된 것은 청구권 협정이다. 이 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 전에 일본과 대한 제국 사이에 맺은 모든 조약과 협정은 이미 무효라고 규정하였다. 이것을 일본은 일본의 식민 지배는 합법적이었지만 지금은 무효라고 해석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는 원래부터 불법이기 때문에 원천적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청구권의 문제는 이 조약으로 다 해결된 것이라는 조항이 있는데, 일본은 이것이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보상,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측의 보상까지 포함하고 있어 일본의 국가나 기업이 한국인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그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킨 민간 기업에게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뿐만 아니라 한일 간의 가장 큰 이슈인 독도 문제는 1965년 조약에서 제외해 버려서 훗날의 논란 거리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한일 기본 조약은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 문제, 청구권 자금의 성격의 문제 그리고 독도 등 영토의 문제까지 미결로 놓아 둔 불안정 조약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개발을 위한 뭉치 돈이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서두를 수 밖에 없었고 냉전 체제 속에서 일본과 한국을 하나의 지역 공동체 안으로 흡수시키려는 미국의 압력 또한 적지 않아서 서로 해석이 다른 회색 지대를 남겨놓은 채 조약이 맺어 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인권 운동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 국제적 문제로 부각시켰고 일본도 이로 인해 국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자 어떻게 해서라도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가고자 박근혜 정권 시절 위안부 문제 합의를 양국 국회의 비준도 받지 않고 또 피해자 여성들의 동의도 얻지 않고 공표해 버렸으며 다시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양국간의 약속까지 발표해 버렸다.
징용 피해자 문제는 미쯔비시 전기 등 일본기업들을 상대로 일제하 징용자로 끌려가 그 회사에서 강제 노동을 했던 근로자들이 일본 회사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 해 표면화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박근혜 정권 시절 일본 회사들과 그들의 변호사들이 한국 정부를 향해 끊질긴 로비를 해 왔고, 한국측은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 외무장관 등이 대법원의 수뇌를 불러 재판을 일본측에 유리하게 유도하고 한일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압력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위안부에 관한 협정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고 징용 희생자 배상 문제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새 대법원장의 리더십 아래 과거의 판결이 뒤집히자 아베 일본 총리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라는 경제적 카드로 한국에게 불이익을 주고 한국 행정부와 법원의 일본에 불리한 결정을 번복할 것을 요구하고 나온 것이다.
▲ "지소미아 종료 환영" 광화문광장서 아베규탄 촛불문화제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6차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환영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남소연 |
한국의 일본에 대한 경제적 의존
한국의 경제개발은 상당한 부분 일본 경제에 대한 의존을 바탕으로 이루어 졌다. 1960년과 1970년대에 한국 경제가 노동 집약적 경공업에 치중해 있을 때 싸고 질 좋은 노동력의 확보를 노린 일본 자본들이 한국 경제 성장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 경제가 기술 의존적 중화학 공업 위주로 전환하자 한국 경제는 기술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에 상당히 의존해 오고 있다.
특별히 한국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의 소재 부품은 일본 제품에 많이 의존해 왔다. 이번에 일본 정부는 이런 한국의 핵심 기업 제품에 대한 기술 의존이라는 산업구조의 취약점을 잘 파악하고 도발해 온 것이다.
일본의 경제 산업성은 지난 7월 초 반도체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애칭가스, 포토 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절차를 강화하였고 8월 2일에는 수출 심사 우대국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켜 버렸다. 이어서 추가규제 품목을 크게 확대할 것이란 일각의 예상도 있었지만 기존의 반도체 3개 소재를 제외한 나머지 전략물자 854개 일본 수출기업에는 3년짜리 ‘특별일반포괄허가를 신청할 수 있게 여지를 열어놨다. 그리고 8월 7일에는 앞의 세 품목 중 포토 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허가를 내 주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언제든지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상태다. 그래서 수출 규제를 받는 품목들이 한국 기업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한국 산업의 중요 부분은 생산라인의 감축 까지도 염려해야 한다고 한다.
반도체 소재 부품 국산화는 오래 전부터 언급되어 왔던 문제이다.. 반도체 국산화율은 2017년 기준 소재부품은 50.3%, 장비는 18.2%에 그친다. 하지만 부품의 상당한 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현실을 위험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국제 분업의 형태로 단기적인 경제 비용의 절감으로만 이해했던 기업과 정부의 안목과 준비의 한계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 뿐만 아니라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정부 및 기업들이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장기적이고 선구적인 계획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일 군사 정보 협정
일본 정부가 경제 도발을 해 오자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일본이 한국 정부를 이렇게 불신하여 비경제적 문제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적 위해를 가한다면 대한민국도 한일 군사보호협정(GSOMIA)의 연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입장을 여러 경로로 표시하였다. 일본 정부는 이 협정이 연장되기를 바라고 있고 미국 역시 절실하게 원하고 있음을 알기에 우선은 일본에 대해서 으름짱을 놓고 다음에 미국을 향해 뒷짐만 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협정은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밀실에서 추진하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된 후 2016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이 알려져 정국이 혼란스럽던 시기에 졸속으로 체결된 일본과의 최초 군사협정이다. 이 협정은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과 주한 미군 사드 배치와 함께 미일 MD 편입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당시 시민사회와 야당은 협정 체결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 협정은 일본 자위대를 군사 협력의 파트너로 전제하고 있고 이를 통한 한미일 삼각협력은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 대국화를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사 요시위데 일본 관방 장관 역시 한일 군사 정보 협정이야 말로 한일의 군사적 협조의 시작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 협정이야 말로 한미일의 군사동맹을 위한 기초 작업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새롭게 형성되는 동북아에서의 냉전에 우리가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특히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과는 어떠한 군사 조약도 맺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의 가능성을 내 비치자 미국은 즉시 그 폐기의 부당함에 대해 공개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이 외교적 타협점을 찾지 못해 문재인 정부는 8월 22일 한일 군사 정보 보호협정이 3개월 후인 올해 11월에 종료될 것임을 선언하였다.
한일, 한미 관계를 생각할 때 문재인 정부는 큰 모험을 한 셈인데 대한민국의 군사주권 확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보 전진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공개적인 압력하에서 한일간의 군사공조체제로부터 대한민국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는 두고 볼 일이다.
▲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15 74주년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및 정의평화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사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동북아에서의 세력 갈등
한일 갈등에 미국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고 한국 정부는 한일군사정보 협정의 종료 가능성을 언급하는 용기를 보였는데 이것은 결국 한국과 일본과의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미국은 세계 제패의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하는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경제적으로는 관세 전쟁, 환율 전쟁 등을 통해서 견제하고 군사적으로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아시아의 어느 곳인가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뿐 아니라 일본을 재 무장 시키고 호주, 뉴질랜드, 인디아, 미얀마 까지 동원하여 대중국 포위작전을 쓰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교역량이 미국이나 일본과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 북한 정책에 중국의 협력이 결정적으로 필요하기에 미국의 대 중국 견제 정책을 일방적으로 돕기는 힘든 처지에 놓여있다.
이미 한국은 사드 설치 때 중국으로부터 많은 불이익을 당하였다. 이제 중국은 미군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설치하면 대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도울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6월 김정은-트럼프의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는 어떻게 해서라도 관계를 개선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하여 미국의 대 북한 군사위협을 없애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미군과 한국이 한반도에서 합동군사 훈련을 통해 유사시의 북한을 침공할 수 있는 군사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반대해 왔다.
그리고 2019년 여름 미군과 한국군이 “한미 군사 연합 연습” 등 제반 훈련을 재개한다는 것을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위반이라고 이해하고 초 강경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전략으로 북한은 미국 본토에는 도달하지 않고 남한을 초토화 시키기에는 충분한 방사포를 여러 차례 발사해 왔다. 한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채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미국과의 대화는 계속하겠다는 고도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일차적으로는 북한을 긴장 완화의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세우고 미국에게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한일 갈등을 계기로 일본과의 군사협정에서 벗어나고 미국이 형성하려는 대 중국 냉전체제에서 자유로워 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모두가 지금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겠지만 꾸준히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고 군사적 외교적 그리고 경제적 주권과 자주성을 확보하는 교과서적인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제 동북아의 정세가 새로운 구도로 바뀌는 때에 일시적인 고통을 두려워 하지 말고 당당하고 자주적인 주권 국가의 확립이라는 푯대를 향해 전 국민이 전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