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되새기며
한국 현대 문학계의 거장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여류 문인으로 박완서 씨가 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해 2011년 1월 타계할 때 까지 40년간을 꾸준히 글을 쓰며,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에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입혀 품격 높은 소설들을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한 박완서씨의 작품중에 내가 감명 깊게 읽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평민사, 1977)라는 수필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수필의 화자인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료함을 느끼고 신선한 자극에 목말라 있었는데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라톤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일등 주자의 골인 모습을 보며 환호하고 싶다는 기대감에 일부러 버스에서 내려서 마라톤 경기를 보게 되지만, 일등 주자는 이미 골인을 한 뒤였고 '나'는 뒤쳐져 달리는 주자들을 보게 되어 잠깐 실망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등의 기록에만 관심을 표한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마지막으로 뛰고 있는 꼴찌 선수를 발견하고서 감동을 느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그의 모습은 고통스럽고 외롭게 보였지만 동시에 위대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그 주자에게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나'는 일등이 아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오히려 더 없이 감동적이고 '나'에게 새로운 기쁨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즈음 스포츠는 물론 우리의 일상생횔에서도 승부를 초월해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공정'의 가치가 귀하다. 박완서 씨의 이 수필은 개인 이기주의가 심화되고, 경제논리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며, 당당함과 깨끗함이 사라져가는 현대 자본주의 세태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꼴찌의 아름다움을 응원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지금 호주는 대학입시 기간이다. 7만명이 넘는 호주 수험생들이 HSC 시험을 치루고 있다. 나는 박원서 작가의 이글을 수험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일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일등이 그렇게 중요한가? 공부를 좀 못하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꼴찌의 삶도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좋은 대학을 가든 못 가든 청년들의 삶에 애정과 격려를 보내주는 부모가 되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는 것이 오늘 내가 이 수필을 굳이 꺼내든 이유다.
편집인 이기태 / francislee@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