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제작된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김시우 감독(사진 위 맨 왼쪽) 장편영화 <Forget Me Not>의 시드니 촬영 장면. 이 영화는 호주 영화계에서 한인 감독 최초로 호주인 배우와 스태프들을 모두 캐스팅하여 화제를 모았다. 촬영 감독 Damien Beebe, 편집 담당자 Marcos Moro, 영화 음악 디렉터 Gerald Mack, 영화의 후반 작업을 담당하는 John Hresc 등 호주 방송 및 영화계 유명 스태프들이 참여했다. (사진: Supplied)
*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드니 스캔들 연재의 7화와 8화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5화에 앞서 나갔던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대사관의 차이> 두 편으로 대체했기에 이번주부터 9화로 이어지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영화를 찍다.
아들이 영화를 해보려고 청춘을 바쳐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게 내가 먼저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내가 애초에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월남전을 소재로 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돈 없이 영화를 만들어 보려고 고생을 하는 김시우 감독을 곁에서 보고만 있기가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이것, 저것을 거들다 보니 그만 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영화의 리허설은 배우들이 모여서 각본 리딩을 하면서 감독과 조율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영화가 85% 영어, 10% 한국어, 5% 가 월남어로 되어 있고 배우도 호주, 한국, 월남, 중국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국적 배우들이 모이다 보니 어떤 배우는 영어를 못해서 문제, 못해야 되는데 너무 잘해서 문제, 한국말을 못해야 되는 역인데 너무 잘해서 문제, 중국인이 한국인 역할을 하니 한국말을 못해서 문제, 한국 사람이 월남 사람 역을 하니 월남어를 못해서 문제, 월남과 중국 배우가 한국말을 해야 하는 문제 등 모두가 말이 문제였다. 바벨탑을 쌓다 헤어진 것이 이해가 될 만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안 만들었으면 우리도 지금까지 그 짓을 했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일에 첫째도, 둘째도 돈이 안 들게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보니 영화 제작 작업은 고행 길 자체였다. 김 감독은 처음에 영화를 시작하면서 시드니에 있는 월남 커뮤니티가 큰 관심을 가지고 도와 줄 것을 기대했었지만 기대와는 정반대의 반응이 나타났다. 월남인 배역이 5 명이나 되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연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협력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가장 애를 먹었던 일 중에 하나가 영화 내용 중에 베트콩 지원병 역할의 배역을 아무도 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지도 않는 것이었다. 20대 배우를 구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기피하는 것이었다. 끝내 배우를 구하지 못해서 할 수 없이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아예 배역을 없애버렸다. 물론 월남 커뮤니티도 둘로 나누어져 있어서 현 공산월남 정권을 지지하는 친공산계도 있지만 한국인인 우리로서는 당시에 적이었던 그들에게 협력을 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한 가지 영화 제작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월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실제로 시드니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월남인들은 보트 피플로 온 사람들이어서 현재의 월남 정권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한국은 자기들을 위해 싸워준 나라임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이 돈 때문에 자기 나라에 왔었고 자기 나라의 전쟁의 덕을 톡톡히 본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평가에 얼렁뚱땅 넘어가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 월남의 친공계와 반공계 양편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장편영화를 찍는데 3개월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라는데 2 주 만에 끝냈다.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이동 시간 없이 한 장소에서 하루 종일 찍었기 때문이다. 10 여명의 스텝과 배우들이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어떤 날은 하루 20 시간 촬영을 하는 강행군을 해도 스텝들이 불평 한 마디 없이 열심히 해주었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촬영 현장은 마치 전쟁터처럼 목표를 위하여 모두가 초긴장으로 집중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스포츠 경기나 사업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그것은 승부나 이익 때문이고 영화는 오직 이해관계가 없는 작품을 위해서 전체가 집중해야 한다. 즉 한 마음 한 뜻으로 철저한 공동체 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촬영현장의 일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또 하나 촬영 현장의 특징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즉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임기응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2주간 현장 생활을 해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해결해 놓고 보아야 하는 것이 딱 내 체질이다. 촬영 현장에서는 순발력, 임기응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주저하지 않고 주변 사람을 귀찮게 하는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이런 일이 바로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발견한 점이 매우 아쉬웠다.
▶ 다음호에 계속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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