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28)
모로코에서 한 장면도 촬영않했다고?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옛날 옛날 오랜 옛날부터 나는 카사 블랑카에 꼭 가 보겠노라고 마음 먹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예정 했던 쿠바로 바로 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인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에 있는 모로코로 날아 간 것은 순전히 카사 블랑카에 가기 위해서였다. 순정 남의 상징 험프리 보가트의 片鱗(편린)을 만나 보고 싶어서였다.
중학교 시절 나는 일주일에 영화를 보통 5편 씩 보러 다닐 정도로 광팬 이었다. 학교가 비원 옆이라 수업이 끝나면 종로에서 을지로와 명동 그리고 퇴계로까지 몰려 있는 영화관들을 찾아 다녔다. 단성사, 피카디리, 낙원, 종로, 세기, 국도, 경남, 국제, 명동, 아데네. 명보, 스카라, 대한 극장 등 참 많기도 했었다. 국산 영화는 별로 볼 게 없었던 시절이라 주로 외국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 중에서도 카사 블랑카 라는 흑백 영화에 완전히 꽂혔었다. 남자 주인공 릭으로 나온 험프리 보가트와 여자 주인공 일자로 나온 잉글리드 버그만의 명 연기는 나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특히 겉으로 보기엔 냉소적이고 세속적이고 달아 빠진 듯 하지만 속은 완전 순수 덩어리인 닉이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일자를 바라보는 그 애잔한 눈빛은 오로지 순정 그 자체였다.
영화 카사 블랑카는 전쟁의 공포가 지배했던 1942년에 제작된 로맨틱 장르의 드라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북 아프리카 모로코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 카사 블랑카를 배경으로 삼아 제작 되었다. 통속적인 대중 영화 였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불안한 시대의 암울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낭만적이고 순수한 러브 스토리는 최고의 사이다가 되었다.
이 클래식 흑백 영화의 신화는 20 여 년이 흐른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젊은 영화광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당시 청춘들 사이에 중절모를 눌러 쓰고 트랜치 코트 깃을 세운 채 담배를 입에 문 릭의 모습을 따라 하기가 유행하면서 20세기 대중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명 대사와 카지노 카페에서 흐르던 ‘as time goes by’도 함께 유행 했다.
그 시절에 감수성 철철 넘치는 중학생이었던 나는 카사 블랑카를 보면서 미치도록 빠져 들어 버렸다. 명절 때 마다 텔레비젼에서 추억의 명화로 계속해서 방영 했는데 볼 때 마다 감동이 더해갔다. 그리고 반드시 카사 블랑카에 가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버킷 리스트 1번의 자리를 차지했다.
마침내 50 여 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러 나는 그곳에 갔다. 세계일주를 하면서 처음으로 가장 좋은 호텔과 식당을 예약했다. 가난한 배낭 여행자였지만 카사블랑카에서 만은 최고의 豪奢(호사)를 부려보고 싶었다. 반 세기도 훨씬 전에 나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다는 걸 자축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가 모로코 현지에서는 한 장면도 촬영 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는 모두 할리우드에 있는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의 셋트장에서 찍었다고 한다. 마치 낙타를 타고 목마름을 참으며 황량한 사막을 건너 오아시스를 찾아 갔는데 도착해 보니 신기루인 걸 알게 된 가엾은 隊商(대상)의 꼴이 되고 만 것 같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전혀 실망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이름만 빌린 상징 속의 도시 혹은 환상 속의 도시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내 가슴에는 그 곳에서 펼쳐졌던 릭과 일자의 아름답고 슬픈 로맨스의 기억이 너무도 뚜렷했기에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전쟁과 불안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동경했던 도시 카사 블랑카가 아닌가?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그 곳에 가는 꿈을 꾸지 않았는가? 몸도 마음도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60대의 나이에 감성이 지배하던 10대의 꿈을 쫓아 아프리카 땅에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옛날 나와의 약속, 나와의 다짐을 지킨 것에 만족했다. 깊은 밤 호텔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자니 사막의 밤 바람이 마치 가을 바람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는 꿈을 이룬거야. 이게 바로 소확행 ( 소소 하지만 확실한 행복 ) 아니겠어 ? 하 하 하 !!
사막에서 불어 오는 건조한 바람에 실려 영화 속 여주인공 일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제는 너무 먼 옛 날 이라 기억 할 수 없어요"
"내일은 너무 먼 미래 라서 무어라 얘기 할 수 없어요 "
"오늘 만이 있을 뿐이예요."
불안한 전쟁 속에 던져진 자신의 상황을 은유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한 멋진 대사였다. 그 명대사를 상기하며 혼자서 독백을 했다.
"그래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매달리고, 현명한 사람은 현재에 사는 거야."
"어제는 엔딩 자막과 함께 끝난 영화야." "오늘은 내가 골라 보는 영화지." "내일은 흥행의 성패를 알 수 없는 개봉 박두의 영화일 뿐이야." "맞아,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거야. 지금을 누리자."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사흘 동안 순정의 남자 릭과 함께 카사 블랑카를 온전하게 즐겼다. 가난한 여행자였지만 카사 블랑카에서는 나름의 마음 부자였다.
카사블랑카는 개봉 당시 그저 전쟁의 불안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룬 평범한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일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꾸준히 사랑 받는 고전 명작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험프리 보가드와 잉글리드 버그만 이라는 불멸의 명배우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애잔한 주제곡이 이 영화를 제대로 숙성된 희귀 포도주처럼 품격을 올려 주었다.
나는 포루투갈의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모로코의 마라케쉬로 갔었다. 일단 모로코 남쪽 도시 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올라 가며 에사우이라를 거쳐 카사블랑카로 갔었다. 그 후에는 모로코의 수도인 리바트를 거쳐 블루 시티인 쉐프 샤우엔이라는 산촌에 가서 푹 빠져서 며칠을 보냈다. 거기서 지브롤타 해협에 있는 탕헤르로 가서 배를 타고 스페인의 tarifa로 건너 갔다.
작은 산촌 마을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해 졌는지는 쉐프 샤우엔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마을 전체가 진한 톤의 블루 였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배경 일 뿐 이었다. 거기서 만난 여행자들의 독특한 개성이 나를 빠져 들게 했었다.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 보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날이 밝아오곤 했었다. 모두가 꿈과 불안과 아픔과 좌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솔 했고 좌절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자기의 내면을 펼쳐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서 희망과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어서 행복 했다.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이 많았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한 끼를 구걸하고 있었다. 나는 영어가 되는 시리아 난민 청년을 나의 임시 짐꾼으로 고용하고 밥 값을 주었다. 고마워 하면서도 조금 더 받았으면 하는 아쉬운 표정을 보면서 돌아 서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숙소에서 동명이인의 두 아랍인을 만났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무하메드와 모로코에 사는 숙소 주인장 무하메드는 이미 오래 된 친구였다. 내가 숙소에 가면서 우리는 3명이 친구가 되었다. 이슬람 이면서도 술을 마시고 밤에는 시외에 있는 비밀 고급 나이트 클럽에 가서 놀았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무하메드는 부인과 이혼하고 모로코 신부를 얻으러 왔다고 했다. 낮에는 모로코 무하메드 가족과 해변에 놀러 가기도 했다. 여자들은 모두가 옷을 입은 채 히잡을 쓰고 물놀이를 했다. 이슬람 교도는 완전히 다르고 이상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각과 행동이 개방적 이었다.
모로코 제 2의 도시이며 아프리카 최대의 항구 도시인 카사 블랑카에 있는 대표적 랜드 마크 건축물인 핫산 2세 사원. 한번에 25,000명이 실내에서 기도 할 수 있고 광장에는 80,000명이 들어 설 수 있는 어마무시한 규모다. 마치 바닷가의 등대 처럼 우뚝 세워진 첨탑은 높이가 210 미터로 이슬람 사원의 탑 중에서 가장 높다. 핫산 2세의 재위 기간인 1933년에 대서양을 바라다 보는 바닷가에 세워졌다.
카사블랑카로 가는 버스에서 만났던 스페인 청년을 다음날 시내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함께 일박 이일을 돌아 다녔다. 인연은 하늘이 싹을 만들어 주지만 꽃 피우는 건 사람이 하는 일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도 죽이 잘 맞아서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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