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29)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9일부터 16일까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웬덴 3개국을 국빈 방문 했다. 이에 대해 "집구석 아궁이를 있는 대로 달궈 놓고 천렵질에 정신 팔린 사람 마냥 나 홀로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난 격"이라며 논평으로 논란이 있었다. 듣는 순간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인 것 같아 그냥 흘려 들었다. 그런데 나의 관심을 확 잡아 끌고 흥미를 느끼게 한 것은 천렵질이라는 약간 낯선 표현이었다.
천렵 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천렵질이라는 단어는 생소 했다. 천렵은 주로 여름철에 남자들이 냇물이나 강가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으며 헤엄도 치고 즐기는 피서 놀이다. 잡은 고기는 솥을 걸어 놓고 매운탕을 끓여서 먹으며 더위를 이겼던 우리 선조들의 풍류가 담긴 세시 풍속이었다. 피라미, 모래 무치, 갈겨니, 불거지, 어름치, 누치, 마자, 메기, 빠가, 산천어 등 생각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 가는 여름 별식의 유혹을 어찌 마다 할 수 있을까? 나도 예전에 지방에서 근무 할 때 여름철에 동료들과 함께 냇가에서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고 물놀이도 하다가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서 소주 한 잔 걸쳤던 흐뭇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낚시와 낚시질, 천렵과 천렵질은 받아들이는 의미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크게 난다. 천렵은 좋은 피서 풍습인데 뒤에다 '질'자를 붙여 천렵질이라고 하면 나쁜 짓, 못된 짓처럼 느껴진다. 낚시도 건전한 여가 활동인데 낚시질이라고 하면 일은 안하고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이 하는 뻘짓거리로 느껴진다. 둘 다 왠지 백수건달들이나 하는 짓거리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오래 전 부터 계집질, 서방질, 도둑질, 오입질, 주먹질, 삿대질, 기생질 등 단어 뒤에 '질' 짜가 붙으면 비속한 뜻으로 쓰였다. 왜 그럴까? 하고 유래를 찾아 보았더니 옛날 우리 선조들이 농사짓는 일과 학문 닦는 일 외에는 천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훈장질, 선생질, 바느질, 낚시질, 목수질, 걸레질 등 좋은 의미의 명사에도 '질'을 붙여 썼다는 것이다. 이는 사농공상의 계급의식에 쩔어 있던 시대에 벼슬하지 않은 선비나 상민들을 낮추어 보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의식이 바뀌었다. 옛날 이라면 고정관념에 따라 '질'을 붙였겠지만 지금은 함부로 '짓'이라는 접미사를 쓰면 안되는 세상이 됐다. 시대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고루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원래의 명사만 사용하는게 맞다. 만약 21세기에 컴퓨터질, 골프질, 헬스질, 벤처질, 연구질, 공부질, 음악질, 미술질, 육아질, 여행질 등의 표현을 쓴다면 화성에서 온 외계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뜬금없이 천렵질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속담처럼 천렵질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딱 나한테 들으라고 한 말 같아서 속으로 뜨끔 했었다. 천렵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면 천렵질이 되듯이 여행도 삐딱하게 보면 여행질이 된다. 2년 동안 천렵질 하듯 여행질 한 것 같아서 찔끔 했던 것이다.
내가 러시아 여행만 하고 오겠다고 출발해서 쌍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국경을 넘어 북유럽 4개국을 시작으로 예정에도 없던 세계 일주를 시작할 때의 상황이 딱 집구석 아궁이 달궈 놓고 천렵질에 정신 팔려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나는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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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덴마크로 갈 때 탔던 FERRY ATLANTIS 호의 내부 모습이다. 말로만 들었던 크루즈 유람선은 호화로웠다. 레스토랑과 나이트 클럽, 카지노와 면세점, 수영장과 오락실, 명품점과 카페, 마술 공연과 화려한 쇼 등 없는 게 없었다. 비록 저녁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짧은 야간항해였지만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즐겼다. 나의 선실은 배의 상부가 아니라 화물칸보다 하부에 있는 2인용 룸이었다. 가격은 상부 선실의 10% 정도로 저렴했다. 물가가 비싼 북유럽에서 처음으로 횡재한 기분을 느꼈다. 어차피 짐만 놔두고 갑판과 위층의 내부 구경으로 시간을 보냈으니 낮은 곳에 있는 좁은 선실은 문제 될 게 없었다. 페리 티켓을 예매하러 갔을 때 창구에 있던 아주머니가 싼 티켓을 찾는 나에게 추천해 주었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고생을 각오했다. 그러나 막상 타서 보니 모든게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다. 나는 시설을 하나도 이용하지 않고 눈요기만 했다. 식사도 미리 준비해 간 햄버거와 물로 해결했다. 다음번에는 아내와 함께 드레스 코트로 우아하게 즐기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부둣가는 아름다웠다. 왠지 포근하고 편해서 떠나기가 싫었다. 북유럽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짠돌이로 지내기로 했다. 어지간한 곳은 걸어서 다녔다. 걷는 것을 싫어했던 나였지만 주변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자전거 도로가 잘 되있는 것을 알고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다녔다. 북유럽 4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걷는 것에 익숙해졌고 아껴서 먹고 자고 마시는 요령을 배웠다. 가난한 여행자로 버티는 법을 터득했다. 햄버거 하나에 10유로인데 중국 식당의 점심 뷔페가 10유로 인 걸 발견하고 너무 기뻤다. 매일 점심 먹으러 멀리서도 찾아가곤 했었다. 이런게 여행의 재미라고 나를 격려했다.
덴마크는 안데르센의 동화로 유명하다. 덴마크에 가면 성지 참배하듯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간다. 실제로 보면 너무 작아서 놀란다. 저렇게 작은 동상을 보러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역시 스토리 텔링의 힘은 위대하다.
발트 3개 나라는 모두 오래된 건물들의 지붕 색깔이 똑같다. 참 예쁘다. 높은 곳에서 바라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다.
발칸 반도의 12개 나라를 다녔다. 가난하지만 자신들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소중하게 지키며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한국은 소득은 높아졌지만 불평불만 가득하고 삶의 질은 낮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트 3국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는 특별히 유명한 볼거리는 없지만 코발트 빛 하늘과 중세시대 건물의 빨간색 지붕과 드넓은 들판에 펼쳐진 유채꽃 풍경이 환상적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싶다면 이름도 생소한 에스토니아로 가는게 좋다.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근교에 있는 캠핑 타운이다. 발칸 국가들은 유럽의 동쪽 끝에 붙어 있어서 자동차로 어디든지 여행 할 수가 있다. 캠핑카를 타고 서유럽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위한 캠핑촌이 제법 많았다. 나는 자동차 여행자는 아니었지만 캠핑촌이 궁금해서 며칠을 묵었다. 시내에서 거리가 먼 것이 흠이었지만 20분 정도 걸어 나가서 현지인들과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나들이 하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나무로 지은 작은 캐빈은 다락방 까지 있어서 아늑하고 좋았다. 샤워장과 세탁장 그리고 취사장은 바로 옆에 따로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절대 느낄수 없는 전혀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영국, 미국, 노르웨이, 터키에서 온 혼배 (나 홀로 배낭 여행자)들을 같은 호스텔에서 만나 2박 3일 동안 함께 다니며 재미있게 보냈다. 기분이 업이 되서 시내 투어 중 마차 조형물에 올라 만세 퍼포먼스를 했다. 외국인들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일행이 된 나를 친구로 스스럼없이 대해 주어서 편했던 것 같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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