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반갑지 않는 새 해
시드니 하버의 송구영신 불꽃놀이가 유명하다. 금년에는 산불난리 마당에 꼭 불꽃놀이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있었지만 연말 대목을 놓칠 수가 없어서 그냥 진행했다.
한 해 불꽃놀이를 위해서 600만 불 이상의 돈을 쓰지만 백만 명 이상이 모이는 하버브릿지의 웅장하고 요란한 새해맞이 불꽃놀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시드니 전체가 이 날만은 불꽃놀이의 해방구가 되기 때문에 하버브릿지가 있는 시내와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도 자체적으로 불꽃놀이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변두리 주택가에서도 폭죽소리가 요란해서 조용하게 자정을 지낼 수가 없다.
불꽃놀이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조금은 희망과 기대를 하는 마음을 갖는 법이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는 별로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죽음이 한 걸음 더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7학년에 들어서면 새 해를 맞는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거시기하게 느껴진다.
나는 더욱이 폭죽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불꽃놀이를 좋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월남전의 경험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게릴라전인 월남전에서는 대포를 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포병 부대는 미군으로부터 지급받은 포탄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밤마다 건너 편 산에 일정한 목표 지점을 설정해 놓고 30분 포격을 하는 화집점 사격을 했다. 포 사격이 끝나야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드니 하버의 요란한 폭죽 소리가 나에게는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노처녀와 백수만 거시기한 일이 아니다. 모든 성인들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노인들에게는 저승사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영접하러 오는 샘이어서 새해가 되면 기분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찜찜한 기분이 든다.
나이가 들면 공연히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고, 세상 일이 다 그저 그런 것 같은 시건방진 생각이 슬며시 찾아 들기 쉽다. 이런 현상은 마치 군대에서 말년 병장이 되면 공연히 아래 것들이 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는 심리와 비슷한 것일 게다.
나이 들면 젊은 사람들을 상대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슷한 연배의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늙으면 몸이 굳는 것은 선택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생각이 굳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할 탓이다.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흔한 증상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에서 판단’하는 경향이다. 객관적 자료 보다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 의해서 판단하다 보면 “확신형 무지(confident ignorance)”에 빠지기 쉽다. 이런 증세가 보이면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학벌에 관계가 없이 무식하다는 것이다.
무지한 사람이 제멋대로 하는 언행(言行)을 무지막지스럽다고 한다. 행동이 무지막지스러운 사람도 무섭지만 말이 무지막지스러운 사람은 더 무섭다. 무지막지한 사람이 떠들면 주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기 쉽다. 잘못하다가 그가 던지는 말의 유탄에 맞으면 사망 아니면 최소한 중상이다.
알다시피 독선, 아집, 편견, 집착 중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 단어 들은 각기 독립된 단어들이 아니라 종합 세트로 함께 붙어 다닌다. 즉 어떤 사람이 독선적이면 그는 아집과 편견과 집착을 골고루 균형 있게 갖춘 인간이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지식과 교양으로 꾸미면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식한 사람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만 적당한 지식과 교양으로 치장되어 속 안에 있는 추함이 잘 들어나지 않으면, 가까이 있거나 오래 사귀어 보지 않는 한 잘 알아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선, 아집, 편견, 집착은 단순히 그의 단점이 아니라 남을 괴롭히는 무서운 정신적인 폭력이 된다. 더욱 불행한 것은 독선, 아집, 편견, 집착은 인체에 퍼지는 암세포처럼 자라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본인은 잘 모르고 남들이 먼저 안다. 자기는 고고한 체 하지만 남들이 먼저 알고서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제가 잘난 줄 알고 살다가 가는 수가 있다. 끔찍하지 않는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한 번씩 크게 앓는 것은 크느라고 그런다지만 나이 먹은 사람이 한 번씩 크게 앓는 것은 폭삭 늙기 위해서이다. 나이 든 사람이 병이 들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금 더 철이 든 사람이라면 죽음을 자연스럽게 오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대신, 병이 들어 오래 혹은 심하게 아프다가 죽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도 언제부터인가 나이 먹은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면 그것처럼 다행한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